말가웃지기
석현수
스무 해가 넘어 찾아본 논은 정글이 되어 있었다. 오직 문서 하나만 쥐고 있다가 퇴직 후 내 땅이라며 들여다보는 곳이니 논의 경계선조차도 가물가물하다. 가뜩이나 좁은 다랑논을 인접한 이들이 산소를 넓힌다고 떼어가고, 경운기가 다니게 길을 넓힌다며 잘라 먹었으니 작은 땅이 더 작아졌다. 긴 세월 주인 없이 방치된 곳이니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처지다. 부모님은 이 논을 말가웃지기라고 불러왔다. 나는 이 말의 뜻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늦었지만 내가 말가웃지기를 억지로라도 추론해 봐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논의 내력은커녕 순수 우리말조차도 고어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말가웃'이란 말이 남부지방에서는 한 말 반의 볍씨를 뿌릴 정도의 넓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면적의 단위라고 하니 그 뒤에다 논을 세는 마지기의 '지기'가 붙어 말가웃지기가 되었으리라. 한 마지기에 한 말 분량의 볍씨를 뿌린다니, 말대로라면 말가웃지기는 한 마지기 반인 셈이다. 등기부상으로는 확인해 본 결과도 300평 남짓한 면적으로 나타나 있으니 다행히 근접한 해석이 되었다.
말가웃지기 논은 우리 집안에 내림하는 조상 답이다. 부모님 생전에는 문전옥답까지는 못되어도 쌀섬 깨나 거두었다. 장남도 아니고 농사꾼도 아닌 주제에 객지로 떠돌며 공무원 생활을 하던 내가 하필이면 이 땅의 주인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을에 가까운 전답은 이재理財에 밝은 형제들이 다투어 선호하였고, 반면에 집에서 뚝 떨어져 산비탈에 있는 몇 뼘이나 될까 말까한 이 땅은 아무도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게다가 조상답이라서 제사 의무까지 지닌다니 누가 냉큼 자원하겠는가. 시세로 따져보아도 말단 공무원 한 달 월급 액에도 못 미치는 액수니 그냥 가져가래도 논 뒤에 숨은 제사 무서워서도 못 가져갔으리라. 이런 때 부모님 선택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사는 자식 쪽이셨다. "조상답은 네 앞으로 해 놓았다." 결국, 늘 예스맨으로 통했던 둘째인 내가 등기부상 주인으로 올랐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던 윗대의 각오가 서린 땅, 살아서 배고프던 삶 죽어서라도 제삿날 굶지 않겠다며 밥 한 그릇 떠 놓으라며 남겨주시는 땅뙈기가 조상답이다. 가장 경제관념이 부실했던 자식에게 이 막중한 책무를 넘겼으니 그 기대는 이듬해부터 곧바로 빗나갔다. 농사를 짓지 못하면 도지賭地라도 놓아야 하는건데, 요령이 모자라는 위인은 논문서만 받아놓고 세월이 이만치 흘러가 버렸다.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다 묻어두었던 성경 속의 미련한 종이나 다름없었다. 설상가상 예수 믿는다며 제사조차 지내지 않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기일에는 제사 대신 미사로 대신하고 있으니 저승 계실 조상님들 혹여 배가 고프시지나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농사는 못 짓는다손 치더라도 자식농사는 잘 지어야지. 그러나 이것 역시 드릴 말씀이 궁해진다. 말가웃지기와 나는 추억이라도 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아무래도 연관을 지워볼 길이 없다. 논 두렁콩을 심거나 메뚜기를 잡거나 가을 볏단을 져 내리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조상답이 나의 가족사가 될 수 있겠지만,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커버린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말가웃지기는 로렐라이 전설보다 더 현실감이 없다. 이것이 내 재산 목록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른다. 당장 금광이라도 발견되거나 온천수가 펑펑 쏟아져 올라온다면 이들이 관심을 둘지 모르겠지. 나는 아버지께서 가지셨던 강압도, 카리스마도 없어 자식 셋 중 누구에게도 이 땅을 대물림시킬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사정이 이러하나 부모님 기준으로라면 자식농사도 제대로 점수를 받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말가웃지기가 기념비적인 존재로 남지 못하게 됨을 아버지는 애석해하실 것이다. 그나마 위안 삼는다면 내가 아직도 공맹孔孟의 그늘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세대여서 바통을 떨어뜨린 마지막 주자로서의 염치를 알아 괴로워한다는 점이다. 웃자란 잡목들은 못된 양심의 털이 되어 뻣뻣하고 억세게 자라나고 있다. 가꾸지 못할 조상답은 자연으로 되돌려주기로 마음먹는다. 이미 산기슭이 성큼 내 논으로 내려와 야트막한 너덜을 이루고 있으니 다른 조처를 해 볼 방법도 없다. 집안의 기념비로서 말가웃지기는 남쪽 바다의 이어도처럼 형체도 없는 이야기가 되어 장롱 속의 종이 한 장으로만 남을 것이다.
-석현수 에세이집 (꽃보다 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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