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인생 - 정 영
신문을 보니 명품 때문에 백화점 앞에서 장사진을 친다고 한다.
명품을 세일하니 여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하기야 명품의 위력이 대단하다. 이 명품 때문에 생긴 것이 짝퉁이다.
우리 손솜씨로는 진짜 명품보다 더 깜쪽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니,
기능올림픽 최다승인 대국의 면모를 과시한다.
요즈음 접두사로 ‘명품’자가 붙지 않으면 행세를 못하는 세대가 도래하였다.
명품 옷, 명품 시계 등은당연하고 명품 도시, 명품 아파트, 명품 학교, 명품 신랑,
거기다가 ‘억’ 소리 나는 명품 결혼 등.명품이 아니면 행세 못하는 사회 풍조는 졸부의 행진을 보는 것만 같다.
상류 사회, 특히 여성 사회, 심지어는 그들을 보고 닮은 젊은 사회, 학생 사회까지 명품 열기는 휘몰아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끼리는 명품계가 생길 정도이다.
그러니 명품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나 같은서민들은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속담에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고,
옷이 날개라고도 했으니 쪽팔리고 왕따 당하고 하니,
아버지가 아들 명품 점퍼를 사 주려고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죽는 기막힌 사연도 생기고,
수억 회사 돈을 횡령하여 명품으로 휘감았다고 하니…….
이즈음 오르내리는 노스페이스 계급,
VIP 카드를 넘어서 VVIP 카드까지 생겼다고 하니, 명품족이 얼마나 좋은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명품족, 명품계, 명품 개목거리 등 명품 세상은 학생 사회까지 깊숙이 물들여
소위 그들이 말하는 명품을 걸치지 못하면 그들 사회에 진입 못하는 계급이 형성되고 왕따를 당한다.
유명한 아웃도어가 제2의 교복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거기다가 그 명품 옷을 벗겨가는 신종 사업도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 어떤 학생이 비싼 N점퍼를 입었다가 옷은 물론 모자, 신발까지 몽땅 벗기고 내복만 남겨 놓더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복은 명품이 아니라서 불행 중 다행이다.
만약 내복까지 명품이면 벌거숭이 임금이 되었을 것이 아닌지.
그래서 명품 점퍼 같은 것은 뺏길 걸. 각오하고 입어야 한다고 한다.
걸맞게 살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압축되어 왔다.
나물 먹고 물 마시기에는 너무 빠르게 왔다.
명품 심리는 일종의 과시적 소비인 백로효과(白鷺?果)라서 까마귀 노는데
백로는 가지 말라고 조상들이 신신당부했건만 어디 스마트 및 SNS 사회 앞에선 어불성설이다.
이 땅의 혼혈아들이 겪었던 한국의 순혈주의와 정체성이 일종의 명품 심리가 되어
들에겐 치명적인 멍을 들게 하였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명품은 일종의 자기의 사회적 지위나 품격을 나타내고 있다.
즉 비언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근자에 대통령 손녀가 입은 점퍼가 명품이니, 얼마짜리니 하면서 SNS가 입방아를 찐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는 끼리끼리 놀게 마련이다.
명품족은 명품족끼리, 서민족은 서민족끼리, 노인은 노인끼리…….
그러나 신분상승의 심리는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고도의 정제된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국회의원이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재선되려고 하는 이유도
그들은 국회의원만 갖는 명품 대접에 맛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 명품 권력이 아닐까.
하긴 그 명품 취급 때문에 국회의장이 결국 오물 뒤집어쓰게 된다.
과연 명품 인생은 무엇인가?
수천만 짜리 시계를 차고, 수십만 원 가는 팬티를 입고, 개목걸이까지 명품인 것이 명품 인생인가.
자본주의 사회는 명품으로 진화하여 1% 대 99%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짜 명품으로 산 사람들은 죽어서도
인류에게 회자(膾炙)되지만 가짜 명품 인생은 죽으면 벗어서 그만이다.
하기야 명품 얼굴 만들려고 온갖 성형을 하다보면
그들이 죽으면 먼저 간 부모들이 못 알아볼까봐 걱정이다.
저 세상에도 성형이 있을까마는 천당·극락이 최고의 명품좌(名品座)이다.
호주의 어느 간호사가 말기환자들을 간호하면서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는 책을 썼다.
첫째가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솔직한 인생을 살자 못했다.’ 라는 것이다.
세속적인 명품은 위장된 것이다. 일종의 변검술이다.
수박이 껍질까지 빨개질 수 없지 않은가.
하기야 인생 자체가 일종의 연극이긴 하다.
故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황혼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명품은 일종의 눈치다.
이제 이 나이에 눈치 볼 필요가 있겠는가.
어려서는 부모 눈치,
학생일 때는 선생님 눈치,
젊어서는 상사 눈치,
늙어서는 마누라 눈치인가.
남는 것은 눈치코치뿐이런가!
‘그래, 이 나이에 여기까지 왔는데 진솔하게 나대로 살자!’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소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있다.”
했지만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이 몇이나 될는지.......
모든 게 가격으로 멕여지는 사회인데.그래도 이젠 내 명품 인생을 찾아보자.
나도 명품 하나쯤은 갖고 싶다. 뽀대 나니깐.
과연 대한민국은 진정한 명품 대통령, 명품 국회의장, 명품 대학총장, 명품 CEO 등은 가질 수 없는 것인가?
그들은 짝퉁으로 끝나는 것인가.
하기야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미국과의 FTA
지금 와서 자기들이 반대하는 자가당착에 악을 바락 써도 명품 국회의원이라고 얼굴을 화들짝 든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짝퉁 때문에 진짜 명품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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