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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서리 - 소산 문 재학

Joyfule 2012. 5. 10. 09:22

 

수박 서리 -  소산 문 재학

 

 

50년대와 60년대 초만 하여도 시골에는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대가족으로 이루면서 살았다.

필자의 마을은 100여 가구 비교적 큰 마을 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도시에도, 일부는 임산연료를 사용하였고, 시골은 전부 임산 연료를 이용하니 산은 대부분 헐벗어 비가 많이 오면 홍수로 범람하고 날이 가물면 旱害로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거기다 비료도 없으니 춘궁기는 연중행사처럼 맞이해야 했다.

그런데 가난한집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든가

서로 어려워도 이웃집과 먹 거리를 잘 나누어 먹었다.

 

배고픈 시절이라 먹 거리 서리를 가끔 하는데 대개는 웃음으로 넘기던 시절 이였다.

심지어는 자기 집에 1~2마리 키우는 닭을 서리해 먹어도 용인이 되었다.

50년대 말 여름방학 때 객지로 간 친구들과 함께 정자나무 아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배도 출출하니 수박서리를 해 먹자고 제의(사전답사한 사람의 설명을 듣고)하여 모두 동의를 하였다.

 

필자의 부락은 땅이 척박한지, 수박재배 기술이 없는지, 수박농사를 짖는 농가가 없었다.

그 당시 수박은 황강 변 백사장에 집단적으로 재배 하였기에 우리 부락에서 가까운 부락을 가기로 선택했다.

 

모두 10명이 자정(시계가 없으니 눈썹달이 기우는 것을 보고 짐작으로)이 되어 출발했다.

필자의 부락에서 500m 하류 개울(폭6~7m) 둑의 수풀에 모두 옷을 벗어 숨겨놓고 논길 100여m를 통과 하는데 차가 한 대 지나가니 누군가 “엎드려" 하면서 알몸 등을 때리니 “철석” 소리에,

 또 다른 사람이 “조용히 해 들킨다.” 하면서 모두 엎드렸다.

 

벼가 30~40cm 정도 자라고 있어 은폐는 용이 했다.

그리고 비포장도로를 횡단하여 강가 제방 공사하는 곳에 도달했다.

그 당시 손 수레도 없을 정도로 모든 작업은 지게에 의존하는 인력작업이었다.

수박은 강 건너 뚝 안에 재배 하고 있었다.

 

사전에 답사한 바로는 원두막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원두막 마다 사람이 자면서 지키는데, 무기는 인민군 따발총 끝에 사용하던 길이 60cm(?)정도 되는 끝이 뾰족한 쇠로된

창(槍)을 비치해 놓고 있었다.

 

수박밭을 가기 위해서는 폭70~80m 재방공사 작업장 울퉁불퉁 (흙을 판 구덩이 대문임)한곳을 지나 강 폭 120~150m 의 강(수십은 무릎 아래로 비교적 얕음)을 건너야 하고, 강을 건너면 또 폭100m내외 백사장을 통과해야 했다.

 

강을 건너서 백사장에서 한 시간 정도 자정이 지나도록 기다렸다.

모래 표면은 식었지만 모래 속은 열기가 남아있어 따뜻하였다.

달빛은 너무 약해 별빛만 초롱초롱한 밤이었다.

 

강변에 큰 부락 뒷산 6부 능선쯤에 도깨비 불 같은 것이 수십 미터를 순식간에 왔다 갔다 했다.

공동묘지에 사람의 뼈 인(燐)에서 발광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險峻한 산에 불이 빨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니 怯도 났지만 여럿이 모여 있고

수 백 미터 떨어져있어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수박 밭 침투 시간이다.

3개 조로 나누어 침투하기로 하고 가운데 조는 4명, 좌우에는 수 십 미터 떨어져서 각각 3명씩이다.   

필자는 가운데 조였다.

 

백사장이라 큰 소리는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를 반시간 정도 흘러 재방 20여 미터 남았을 때

갑자기 제방위에 키가 엄청나게 큰 몇 사람이 나타났다.

모두 깜짝 놀랐다. 마치 우리가 올 줄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것이다.

 

모두 기겁을 하고 魂飛魄散 줄행랑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달렸다

백사장을 뛰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모래에 발이 빠지기 때문에 엄청나게 힘들다.

그래도 따라오는 수박밭 주인도 같을 것이므로 쉽게 잡히지는 앉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렸다.

 

그런데 집요하게 따라온다. 강물에도 달렸다. 왜냐하면 계속 따라 오니까. 물에 뛰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수면 마찰로 인한 통증도 있다. 폭100m가 넘는 강을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뛰었다.

 

그리고 재방공사 한창인 작업장을 통과 하는데 어두워서 지형이 잘 보이지 않고 급하니까 구덩이 있는 것도 모르고 앞에 사람이 구덩이에 넘어지면 다음 사람이 그 위에 넘어지니 밑에 깔리는 사람은 “나죽는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것도 순간적이다.

 

아픈 것은 뒷전이고 다시 일어나 달린다. 드디어 공사 중인 재방 둑에 도달 했다.

그래도 수박주인은 따라 오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수박은 맛도 못 보았는데 이렇게 악착같이 따라오니 이것은 악질 중에 악질이다. 모두 돌멩이를 주워라 ”(사실은 돌멩이가 하나도 없는 곳임)

 

그때야 따라오던 사람이 拍掌大笑다. 따라온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일행이었다.

약간 어둡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뛰다 보니 우리 일행이 몇 사람이 뛰어왔는지 확인 할 시간도 없는 숨 가쁜 시간이다.

 

우리 일행 중 부산에서 온 키가 큰 친구 하나가 머리도 좋고, 장난을 좋아해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 몸을 씻고 허기진 배를 안고 돌아오니 새벽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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