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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을 중심으로 - 崔元賢

Joyfule 2012. 4. 14. 10:31

    

 

 목성균의 수필세계

* 수필문학가 최원현 님이 목성균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에세이 문학 2003년 가을호에 올린 글을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인간의 정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상징과 이미지
-목성균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을 중심으로 -
崔元賢

 

 

1. 목성균의 수필

 

 

목성균의 첫 번째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은 한 여름의 뙤약볕 속에서 맞는 한 줄금 소낙비 같은 반가움이요 시원함이다. 51편의 수필은 대개 계간 <에세이문학>(수필공원), 격월간 <수필과 비평>, 월간 <수필문학> 등에 발표되어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그의 수필은 잘 익은 술처럼 향기롭다. 작가 내면의 세계가 경험이라는 관(管)을 통하여 울림으로 독자에게 닿게 하되 정작 화자(話者)인 자신은 또 하나의 객관화된 자기로 하여금 딴 사람처럼 자기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게 한다. 곧 체험적 사실에 내면세계의 객관화를 이루면서 그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감동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수필쓰기란 그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자제력을 수련하는 일'이기에 '내 수필이 그 도나 개나 다 쓰는 글 같아서 얼굴을 들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도록' 지극한 정성과 겸손으로 수필을 쓴다.
그는 작품 한 편을 세상에 내놓을 때 이미 두 단계의 검열을 마친다. 하나는 '아내'라는 만만찮은 1차 검열관을 통하면서 작가의 행복을 맛본다. 평자도 경험한 바이지만 사실 가장 인색한 검열관이다. 그러나 그걸 잘 통과한다. 그리고 '지성적이고 객관적이고 냉철'하기까지 한 딸 검열관의 혹독한(?) 2차 검열의 관문을 또 거친다. 최소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두 부류의 고급 독자로부터 OK 사인이 나와야 비로소 퇴고가 되는 셈이다. 목성균의 수필에선 그래서일까,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있어야 할 것들로만 꽉 채워진 탄탄함을 느낀다. 그것은 쉽게 읽혀지는 매끄러움과는 다르다. 정갈함이다. 목성균의 수필은 그 정갈함이 또한 매력이요 맛이다.

목성균은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하였지만 관광공사의 관광수필 공모에서 <불영사에서>란 수필이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 수필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글을 쓰는 동기, 작품 구상의 동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동기는 긴장을 전제로 한다.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씌어진 글에선 생동감과 힘이 느껴진다. 쓸 때의 그 감정은 읽는 이에게도 전해지는 법이다.
목성균 수필의 주제는 자연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삶이다. 곧 그것은 인간의 정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상징과 이미지다. 작가는 정을 중시한다. 그냥 있는 것들의 정, 잃어버리고 묻혀버린 것들에의 정, 현실적 삶의 정, 그것들은 목성균을 붙들고 있는 자기 정체성이다. 그래서 매 작품 속에선 어떤 원칙 같은 것이 은연중에 내비쳐지곤 한다. 그것이 자신의 경험을 통한 삶의 지혜이든, 그의 순전한 바람(소망)이건 그는 그것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것은 그의 삶뿐 아니라 글쓰기의 원칙인 것이다.

2. 정(情)의 미학(美學) 그 권위와 영역

인간은 관계의 존재이다. 치열한 그리움의 관계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는다. 목성균이 수필적 주제로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정'인데 그의 수필이 추구하는 정의 미학은 좀 별나다. 목성균은 '정'에 대해 자연미와 예술미를 포괄하는 수필 속의 미 곧 의미화 내지 형상화 된 미가 '정'이요, 그 '정'이 권위와 영역을 확보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자연미와 예술미'를 포용하는 삶의 형태로 치열한 그리움의 관계적 '정의 미학'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끈끈한 정의 줄로 이어져 있다. 정은 흐르는 것이다. 그는 <고개>에서 '사람 사는 한 평생이 고개 하나를 넘는 것'이라는 고향 어른의 말을 빌려 고개를 통하여 오르막과 내리막, 어제와 내일, 그리고 가버린 것들과 가야 할 것들을 '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고개'와 '정'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고개>를 통해서 그는 '정'을 조망하면서 그 '정'으로 하여 희망과 절망의 두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놓고, 있었던 것(과거)과 있어질 일(미래)을 '고개'라는 내려다볼 수 있는 영역에서 관조한다.

그런가 하면 <그리운 시절>에선 매미를 통해 '삶의 치열한 삶의 결론을 얻기 위한 생명의 치열한 절규'를 비로소 깨닫고, '돌아보면 아른아른 그리운 시절은 이 여름 안에 아직도 남아있다'(20쪽 <그리운 시절>에서)고 말함으로 그 바닥에 '정'을 깔고 역시 가버린 것들을 현실 속에 재현하여 살려두고자 한다.
특히 <다랑논>은 이미 사라져 간 것들을 '앞으로 사라져갈 나'로 의미화 하면서 사라지는 것들이야말로 보존되어야 할 것들이라는 아쉬움으로 이미지화 한다. 그에게 다랑논과 쇠재골은 '오늘의 나'라는 존재를 지켜줄 수 있는 마음 속 성지(聖地)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없는 다랑논에서 나는 늘 인기척을 느꼈다.'(26쪽 <다랑논>)고 말한다. 다랑논은 그의 삶의 가치 기준이었다. '착하고 부지런히 사는 끝은 있는 법이여-' 자신에게만 다독다독 들려주는 듯한 간곡한 한 마디는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성이기도 했다. 그의 삶은 크게 욕심내지 않기에 넘칠 것도 없지만 벼의 수확량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고 큰 인간성의 수확을 다랑논의 목소리로 자신과 자신의 후세에까지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부치기에 편하고 아무래도 수확도 더 좋을 논이 있으련만 다랑논에 유달리 애착을 갖는 그의 마음이야말로, 적응해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이미 살아온 세월, 살아온 습성이 쉽게 그것들을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현실적 괴리로 본 것이다. 그만큼 목성균은 '정'을 사물에 대한 내면적 의미화로 보았다.

그러면서 목성균의 눈은 사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품고 있는 의미에도 충실했다.
'다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다. 등잔에다 아무리 인문주의적 가치를 부여해서 아들의 책상 위에 놓아준들 등잔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아들이 등잔을 애장(愛藏)할 리 없을뿐더러, 등잔 역시 아들의 책상에 놓인 전기스탠드의 놀라운 밝기에 스스로 주눅이 들어 처신이 궁색할 뿐이다.'(36쪽 <등잔> 중)
그의 눈에 비친 등잔은 어느 새 바로 자신이 된다. 조만간 아버지의 불빛이 꺼지면 아버지의 생애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은 네 차례야' 하는 은밀한 불빛의 속삭임이다. 결국 아들과 전기스탠드에 밀려 갈 곳 없는 시대적 소외품의 자신을 동시에 발견한다. 그렇다면 목성균은 왜 하필 '정'이라는 것을 내세워 영역과 권위를 말하려 한 것일까?
그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문학을 하고 싶었으나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 길을 접고 생활의 길로 나서야 했던 아쉬움을 비롯하여 거역할 수 없는 힘들이 있었다. 내 운명, 내 권위와 영역들이 나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환경과 조건들 속에서 나와는 관계없이 결정된다는 안타까움으로 목성균의 가슴엔 소리 없이 흐르는 슬픔의 강이 있었다. 비단 문학뿐 아니라 자신의 한계, 넘을 수 없는 산이요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게 그를 늘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었던 것, 또 하지 못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진 않았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잊지 않는 것'을 생각했다.

'물꼬는 양보할 수 없는 가세(家勢)의 보전지역이다. 살포는 연장이라기보다 가세의 영역을 지키는 한 집안 대주의 의지를 고양하는 물건이다. 연장의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삽이 월등 낫지만 그건 젊은이들의 연장이다. 삽이 실권이라면 살포는 권위다.'(38쪽 <살포> 중)
어른이 살아 계시는데 젊은 자식이 삽으로 물꼬를 트거나 막는 짓은 어른의 권위를 탈취하는 몹쓸 짓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포를 짚고 다니는 것은 '늙음의 멋'을 연출함이며, 그것을 인정함은 늙음을 성스럽도록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복종이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살포의 권위와 그 권위가 만들어내는 영역이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이어지는 정이 형성된다고 본 것이었다. 물론 삽은 살포가 할 수 있는 일을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삽의 힘보다도 인간의 정이 사랑의 원칙으로 살아있을 때 비로소 권위도 영역도 인정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정은 도덕과 법 그리고 어떤 힘에도 우선하는 것으로 사계절의 운행처럼 확실하게 인정되고 보존되는 것이어야 했다.

또 하나 '억새꽃은 석양을 등지고 서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그 자리가 억새의 자리처럼 당연스럽다' 곧 흰색의 이미지를 바로 권위요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권위와 영역은 철길처럼 공존하며 하나인 듯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가 될 때 자연스러움 곧 흐르는 물 같은 원칙이 유지된다고 본 것이었다. 그래서 목성균은 이 시대에도 있어줘야 할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가슴 아파 한다. '이제는 흰옷 입은 노인들의 권위있는 행렬도 볼 수 없고, 가을 달밤에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도 들을 수 없다.'(46쪽 <억새의 이미지> 중) 목성균은 그게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이다.

집안 대주(大主)의 권위를 '산골 초가집 부엌 기둥에 긍정적인 모습으로 걸려있는 순박한 명태 한 코'(143쪽 <명태에 관한 추억> 중)에서 보는 것도, 그 명태 한 코야말로 두루마기 자락에 온통 명태 비린내를 칠해 오고도 당당히 그 명태를 며느리에게 건네고, 며느리는 그걸 받아 부엌 기둥에 거는, 이른바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절대적 힘을 인정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그 권위도 영구적이진 못하다. '우리 집에 나 말고 명태 사들고 올 사람이 또 있구나!'(140쪽 <명태에 관한 추억> 중) 그 말씀은 '이제는 지휘권을 넘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안도도 되겠지만 '이제 내 시대는 끝나는구나' 하는 권위의 시한을 말하는 것 같아 작가는 눈물이 났던 것이다. <명태에 관한 추억>을 특히 작가가 표제작품으로 삼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명태에 관한 추억>은 목성균이 '정'과 '권위'와 '영역'에 대하여 명확한 정의를 내린 작품이다. 늦가을 텃밭의 청정한 조선무와 명태가 산해(山海)로 만나 이루는 진미,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음이며, '긍정적인 모습'(143쪽)이라는 표현은 그가 말하지 않음으로 더 많이 말하고 있는 그의 할말이기도 하다.

3. 자기 정체성의 상징과 이미지

목성균에게 있어서 자기 정체성은 이 시대를 사는 기성세대들의 공통적 정체성의 의미를 갖는다. 수필 <액자에 대한 유감> (84쪽-88쪽)을 보면
① 액자는 내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가를 일깨워 주었다.(86쪽)
② 글씨에 감탄할 서예학원 원장의 얼굴을 나는 자만스럽게 바라볼 마음의 준비까지 다 하고 왔었는데 의외로 변변치 못한 평을 받고 보니 맥이 탁 풀렸다.(87쪽)
③ 얼른 나서서 글씨를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고 '너희들도 봄빛같이 살아라' 라고 덕담을 추가해 주고 싶어졌다.'(88쪽)로 자신의 마음 상태 변화를 선물로 받은 액자를 통해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선물 받은 액자 속의 글씨가 '대단한 것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누구나의 공통된 마음일 수 있다. 목성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실체를 알게 된 후 실망하기보다 자신을 구제할 하나의 음모(?)를 꾸민다. 글씨의 의미로, 그 의미를 풀어내는 것으로, 내밀하게 그의 자존심을 회복코자 한다. 어쩌면 그것은 공직의 긴 세월 내내 가슴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여왔던 응어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직이란 내 것이 없는 삶이다. 내 삶마저도, 내 것인데도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글씨 한 점의 선물을 통해 어쩔 수 없는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확인한다. 그는 언제나 자존심을 잃지 않는다. 순간의 상황을 역전시키는 위트로 잠재력을 발휘한다.
'그 거울 같은 수면에 아내와 내 얼굴이 나란히 비쳤다. "우리 약혼 사진을 보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아내가 감개무량한 미소를 지었다.'(214쪽 <불영사에서> 중)

목성균의 정체성이 개인적이기 보다 이 시대 기성세대의 공통적 정체성이라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오정, 오륙공 등의 신조어만큼 언제부턴가 '나'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기성세대들의 아픔도 바로 목성균의 아픔과 같으리라. 30년 전 시골 사진관에서 찍었던 약혼사진 속의 수줍게 웃던 모습과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태백산맥 불영사 계곡의 가을 냇물 맑은 수면에 비친 부부의 얼굴이 어찌 같을 수 있으랴만 그의 입에서 나온 이 한 마디로 아내를 30년을 뛰어넘어 일생 중 가장 아리땁고 행복했던 순간의 처녀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내심으론 결혼 30주년 기념에나 맞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약혼사진 운운함으로서 내면세계와 현실세계를 교묘히 조화롭게 어우르는 그만의 표현 내지 구성법이라고 할까.
수필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마음을 중시한다는 것,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더 깊어진 숲의 적요에 나는 문득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는 익숙지 않은 짓을 당하자 숫처녀처럼 흠칫하며 "누가 봐요" 했으나 손을 빼지는 않고 대신 걸음걸이만 다소곳해졌다. (중략) 손을 잡힌 채 다소곳이 따라오는 아내가 마치 30년 전 약혼사진을 찍고 돌아오던 호 젓한 산길에서처럼 온순했다.'(215쪽 <불영사에서> 중)

자기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결국 실존적 뿌리보다도 현실의 나를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닐까. 목성균은 그래서 이 시대 보통사람의 한 사람으로 그 평범한 자기를 아주 귀하게 평가한다.
그래서 그는 '인생이란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면서 요령껏 당면을 피해 가는 것'(118쪽 <약속> 중)이라고 자책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이에는 그렇지 않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 '그 밤의 산정에서 생명이 생명을 안고 체온을 나누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116쪽 <약속> 중)를 알고, '그 해 겨울 급작스럽게 충북 도청으로 근무지가 이동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여섯 살짜리 자신의 손자 승주를 보면 그 소년이 생각나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를 수없이 말하곤 하는 사람이다.

그는 고향집을 허물면서 마지막 밤을 허물어질 그 방안에서 지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이 집의 안방에서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향년 97세였다.' '아버지도 이 방에서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셨다. 우리 오 남매도 이 안방에서 비릿한 냄새를 피우면서 태를 갈랐다.'(126쪽 <고향집을 허물면서> 중)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는 종가집이었다.'
그래서 종증조부께서 칠십 리 길을 걸어서 찾아오시던 집이다. 그런데 그런 집이 '우지직' 힘없는 비명을 남기고 폭삭 허물어져 버리자 그는 배신감을 느낀다. 문명의 이기 앞에는 역부족이라는 또 한 번의 자기 실체를 확인하고는 그는 '집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임종하듯 지켜'본다. 그것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붙들고 믿고 있던 것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그래서 정체성은 근원보다 '현실의 나'를 바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에게 아버지의 존재도 그렇다.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57쪽 <세한도>중) 사랑은 아니더라도 존경의 대상은 되던 아버지, 그런데 '아버지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계셨다. 이윽고 아버지는 옷을 벗으시고 내게도 옷을 벗도록 이르셨다. 그리고 꼭 필요한 옷가지만 바랑에 담아 머리에 이고 허리띠로 턱에 걸어 붙들어 매셨다. 그런 다음 나를 업으셨다. 강을 건너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신 것이다. "아버지 목을 꼭 잡고 얼굴을 등에 꼭 붙여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움직이지 마라." 나는 아버지의 그 반점을 그 때 처음 보았다.'(149쪽 <아버지의 강> 중)

6.25사변이 나던 해 여름, 낙동강을 건너는 피난길의 부자, 어떻게든 강을 건너야만 산다는 절박함 속에서 열세 살 소년이 처음으로 본 아버지의 반점, 그 비밀은 어떤 절대적 힘으로 아버지의 것에서 소년의 것으로 바뀌어갔다. '강변 바닥에 엎드려 오른쪽 어깻죽지의 검붉은 반점이 들썩거리도록 소리 없이 우시던 아버지의 아픈 한 시대'(150쪽 <아버지의 강> 중)를 그는 반점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자신의 것으로 비밀스럽게 가슴 매김 했다.

목성균의 수필을 읽으면 그런 아픔이 자리자리 느껴진다. 구태여 자기 것으로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그는 놓아버리지 못한다. 수필 <앞자리>에서 선두 기러기를 통하여 '가슴으로 구만리 장천 너머에 있는 도래지를' 보며 희생의 길로 나가는 것이나, '소리내서 울던 어린것과 소리 죽여 울던 새댁의 애처로운 모습을 생각하며'(93쪽 <어떤 직무유기> 중) 도벌꾼을 놓아준 <직무유기>라든가, 목성균은 그런 사람이다.

목성균의 수필을 읽다보면 몇 개의 흐름이 잡힌다.
①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고개)
② 돼지불알을 굽는 것은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행복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 보였다.(돼지불알),
③ 통과하라, 주저하지 말고, 다음 역을 향해서(간이역),
④ 고즈넉한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 거리 유지가 실은 내 고즈넉함을 방해받지 않으려는 인색한 거리였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에 주눅이 들었다.(불영사에서)

목성균에겐 ①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사뭇 크다. 지금 이 시대의 넘치는 좋은 것들 속에서는 정(情)도, 정체성도 찾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②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데는 행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나마 있었다. ③ 하지만 살기 위해선 그리움도 행복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④ 그러나 지금에는 남에 대한 배려마저도 사실은 내 이기심을 채우려는 인색함이었다는 사실에 아연해 진다.

목성균의 삶, 그의 생각이 그럴진대 그의 문학이 그렇지 않을 수 있으랴. 더욱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가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는 수필가임에랴. 그의 정체성은 지극히 정스런 소시민으로 가장 평범한 삶을 소중히 하는 우리 시대 보통사람임에 오히려 자부심을 갖는 한 인간의 아름다움이다.

4. 나가며 - 아름다운 인간으로 살고 싶은 염원

탄탄한 구성력, 이것은 목성균의 수필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요 매력이다. 하찮은 것, 평범한 것들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명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그의 붓끝 능력은 기적 같이 생명의 싹을 틔워내기도 한다. 그는 단순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묻혀버려 잊혀지고 잃어버린 것들을 파낸다.
'소년기의 내가 입동의 산에서 나무를 한 짐 해놓고 땀을 식힐 때, 산은 우리 할머니처럼 그윽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의 머슴을 따라서 그 먼 산까지도 힘겨워하며 따라다녔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일가를 이루고 산림공무원이 되어서 산과 더불어 살아왔다.'(242쪽 <속리산기> 중)

그는 산과 더불어 희로애락도 산의 사계절처럼 겪어냈다. 삶과 의무와 책임을 같은 중량이요 부피로 느끼면서도 보다 나은 것에 대한 갈망을 가슴 가득 지니고 살았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찬란한 도약을 해 볼 것인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지는 노을이 나를 더욱 눈물겹게 했다.'(19쪽 <그리운 시절> 중)

그러나 그런 갈망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늘 스스로를 절제하곤 했다. 이만큼, 이 정도로 만족하려 했다. 그렇다고 나태하거나 해이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삶의 환희와 삶의 결론을 얻기 위한 생명의 치열한 절규(매미의 울음)'(19쪽 <그리운 시절>)를 쉬지 않았다. 아니 쉴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에게는 자신이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늘 아버지가 자신 속에 동행하고 있음을 느꼈다.

'자식에 대한 연민, 그게 얼마나 부모의 큰 고초인지 내가 당시 아버지 나이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오죽하면 소액환을 동봉하셨을까. 그 소액환은 돈이라기보다 슬하에 자식을 불러 앉히는 아버지의 소환장이나 마찬가지다. 용렬하기 그지없는 자식에게 아비노릇, 남편노릇 하는 방법까지 일일이 일러주어야 하는 아버지의 노파심을 생각하니까 '불효자는 웁니다'하는 유행가처럼 서러웠다.'(23쪽 <누비 처네> 중)

지나놓고 보면 무엇 하나 아쉬움 아닌 게 없는 게 인생이리라. 그래서 그는 더욱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명태 한 코를 꿰어들고 들어서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목성균은 정한을 아무도 모르게 혼자의 가슴으로 조용히 삭인다. 그는 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안다. '억새꽃은 석양을 등지고 서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그 자리가 억새의 자리처럼 당연스럽다.'(43쪽 <억새의 이미지> 중) 그의 수필이 정감있게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을 관조하는 힘이 자못 달관의 경지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시적 언어 구사력에 소설적 구성력이 합세하여 재미있는 수필, 그러면서 철학이 있어 가볍지 않은 수필, 읽으면 감칠맛이 나는 수필, 길게 여운이 남는 수필이 되게 한다. 삶을 바라보는 눈도 아침해에서 저녁노을을 보고 저녁노을을 보면서는 내일 다시 떠오를 새 희망의 아침해를 본다.

그러나 그가 떨쳐버릴 수 없는 게 있었다. '아버지 목을 꼭 잡고 얼굴을 등에 꼭 붙여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움직이지 마라.'(149쪽 <아버지의 강> 중) '얼굴을 아비 등에 꼭 붙여라.' 나이가 들었는데도 어린 날 아버지의 목소리는 삶 내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의 존재는 태생적 한계의 영역을 만들어 왔었던 것 같다.
눈이 내리는 날 등잔불빛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데 불빛이 흐려졌다. 심지를 돋우었더니 방안에 매캐한 그을음 냄새가 가득해졌다. 그때 밤마실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심지만 돋운다고 불이 밝아지는 게 아녀, 콧구멍만 글을 뿐이지'(35쪽 <사기등잔> 중) 하시며 심지를 갈아주셨다. 그런데 작가는 '내가 아버지께 받아본 단 한 번뿐인 성의 있는 관심'(35쪽 <사기등잔> 중)이라며 '장롱 맨 아래 간직해 둔 사주단지 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존재는 그에게 태생적 한계 그 이상은 아녔었는데 그런 그에게 다가온 아버지의 관심은 큰 변화를 가져왔고, 소중히 할만한 기억이 되면서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서 보배로운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된다. 목성균이 꿈꾸고 바라던 것은 사실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인간다워진다고 한다. 인간답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분수를 알고 그 분수껏 산다는 것이리라. 기다리는 시간의 의미, 지나치면 넘친다는 이치처럼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아는 것, 곧 나를 나로써 받아들이는 이해와 자기사랑으로 사는 것을 말함이다.

목성균은 그것을 '청정한 무가 가으내 담백한 맛의 진수를 보여주려고 뼈무르면서 명태를 기다렸다'(143쪽)고 표현한다. 그래서 '결코 하찮은 삶이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침햇살 차오르는 산골 초가집 부엌 기둥에 집안 대주의 권위로 걸려있던 명태 한 코의 아버지의 호기를 그리워하는 목성균은 참으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아는 작가이다.

<에세이문학> 2003. 가을호 '목성균의 수필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