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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성

Joyfule 2012. 1. 23. 03:24

 

    

 

목성균 수필 연재 -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성


나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즉 상대적이란 말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원초적인 발정(發情) 즉 음양의 스파이크이다. 조건이 일치 해야 한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지체장애인을 사랑하는 것은 사지가 멀쩡한 자신의 건강의 인식이 기쁘기 때문이다. 고리대금업자가 영세상인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배금주의 아래 존재하기 때문이며, 술꾼이 술꾼을 좋아하는 것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며,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가난에 대한 구매력을 과시할 수 있어서이며, 출판업자가 필자를 조아하는 것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욕심 때문이고, 죽마고우나 동창생이 서로 좋아하는 것은 추억의 잠재력 때문인데 거기에는 이권이나 인사청탁 같은 것이 개재될 때 지워진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 관계는 고작 이 정도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중생의 세속적인 인간유대의 사고방식이 착오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는 만남이었다. 그 분들과 나는 좋아할 세속적인 하등의 이유도 없다. 다만 알았다는 이유뿐이다. 알게 된 까닭은 인터넷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만나고 이번이 두 번 째다. 그러니까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연이 소중하게 보전된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그 분들의 고급스러운 인간적 취향 때문인데, 그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세속적 이유에 합당하다고 볼 수 없다. 이 중생은 그 이유 아닌 이유가 믿어지지 않아서 신분에 과한 갓을 쓴 것처럼 부끄럽다.


비행기의 전력 질주가 느껴지더니 잠시 후, 그 육중한 동체가 사뿐히 나를 들어올린다. 청주행 KAL 1956편은 정시에 제주공항을 이륙했다. 일박이일의 추억을 어두운 제주 밤하늘에 남겨 둔 채-.


지난밤에 깜박 한 잠 밖에는 못 잤다. 잠시 눈을 붙여 볼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은 더욱 명료하게 지난밤 태평양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중문해수욕장 모래사장을 걷던 우리 일행을 본다.
“남녀간 수상한 레저는 금하는 시설”
김 선생님의 수상레저시설을 응용한 순발력 있는 농담에 일행은 기탄 없이 웃었다. 웃음을 낚아채는 파도소리, 태평양 어디서부터 시작한 것인지.
비로소 사람의 순수한 감정의 작용인 웃음소리가 제 소리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에 조용조용 어두운 해변에 소리를 부려 놓고있었다. 어두운 수평선에 漁火를 밝혀 놓은 어부들은 우리의 감탄사를 위해서가 안이라 그들의 삶의 일환일 뿐인데 우리는 그 불빛을 향해서 고마워했다. 아니 가득한 마음으로 보는 漁火를 고마워했다.


한 숨 깜박 잠을 자보겠다는 요량은 어림없는 수작이다. 눈을 떴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동행 은량씨는 디지털 카메라에 저장된 한라산을 찍은 사진을 검색하느라고 소녀처럼 행복해져있다. “목 선생님 이 것 좀 보세요. 기가 막히지요. 작품 좀 건진 것 같아요.” 나는 작은 액정화면에 나타난 사진을 보면서 설경이 참 멋있다는 느낌 뿐, 작품인지 아닌지 까지는 판별할 수 없으나 소녀처럼 기뻐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는 가급적 안 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 같아서 “참 멋있는 작품이네요.” 하고 응수를 했다.


기내 방송에 따라서 예뿐 스튜어디스가 애교 있게 웃으며 구명동의 착용 시범을 보이고 있다. 예쁜 스튜어디스가 좋아졌다. 남자의 발정작용은 아니다. 내가 비록 늙은이의 반열이라 해도 예쁜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늙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여승무원에게 느끼는 감정은 발정은 아니다. 인간적 호감이다. 승객에게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는 호의가 담긴 아름다운 용모는 분명히 직업적인 것일 터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여승무원 마음이 아직은 직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 모른다. 용모가 앳되다. 입사경력이 안 느껴진다. 아직 승객을 가족같이 대하라는 사시(社施)를 연출할 만큼 연기력에 숙달된 얼굴은 아니어 보인다. 내 육감이 오류일까. 아니다. 나는 지금 순수한 인간적인 관계의 일박이일 모임에서 순수해진 마음으로 스튜어디스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았는지 엔진 소리가 정숙하고 단조롭다. 비 오는 제주도의 야경은 벌써 까마득하게 멀어졌을 것이다. 비행기는 일로 청주를 향해서 직선상의 항로를 날아간다. 비행거리는 불과 45분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소중한 인간 관계를 누적하면서 이 비행기처럼 정해진 항속거리를 줄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지극히 짧다. 불과 45분의 항속거리에 불과하다. 그 인생이 유족해야 하느냐 유복해야 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인생관의 차이다. 둘 다 가진 인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생실정일 것이다. 그것은 유토피아의 경지로서 인간이 설정한 목표지만 도달한 사람이 몇몇이나 될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어제 나는 그 이상향에서 지나고 오는 것이다. 은량씨와 정연씨와 세정씨는 한라산에 올라 雲海 아래 펼쳐진 한라산의 雪景을 보았으니 나보다 한 수 더 높은 이상향을 경험했다고 보아야 하나? 천만에 말씀, 나는 50년대 말 내 감수성을 마비시킨 ‘존 웨인’이 주연한 서부극 영화 ‘역마차’와 ‘수색자’를 보았다. 나를 위해서 김 선생님이 준비한 것이다. 디스켓을 구하기도 어려웠을 터이지만 그보다 대형 스크린에 재생할 수 있는 장비의 준비와 그 장비의 작동에 차질여부를 확인키 위해서 전날 예행 연습을 했다는 말에 나는 감격했다. 물론 나 혼자 본 것은 아니지만 같이 본 사람들은 그 영화가 히트하는데 관람료를 보탠 세대가 아니다. 나는 관람료가 없어서 헌책방에 교과서를 팔아서 보탠 사람이다. 그 영화에 대한 애착심의 정도로 보아 나를 위한 배려가 분명하다.


나는 인간성의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것은 히말라야를 오른 것 보다 더 큰 감격이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는 힐러리 경도 히말라야를 정복한 기쁨이 나만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힐러리 경은 산을 정복한 것이지만 나의 경우는 산이 나를 정복한 것이다. 여자들이 사랑에 정복당하면 나만치 행복할까.
중문,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감격했다. 내가 뭐라고-, 불참해서 모임에 지장 될 것도 하나 없다. 다만 참석하면 더 좋다는 이유, 이 중생의 인생관으로서는 밤하늘의 별처럼 이해할 수 없는 거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