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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 19 공동체 가꾸기

Joyfule 2006. 12. 18. 02:28


목적이 이끄는 삶 -  19 공동체 가꾸기 
“너희들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존중하며 존경하는 
노력을 할 때에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건강하고 풍요로운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고 그 결과들을 누릴 수 있다” 
(약3:18, Msg).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덕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2:42). 
공동체는 헌신을 필요로 한다. 
성령만이 믿는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교제를 가능하게 하지만, 성령은 우리의 선택과 헌신을 사용해서 역사하신다.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고 말하며 우리의 이중적인 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가정에서 자라나 진정한 교제를 위해 필요한 기술이 부족하다. 그들은 함께 지내고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행히 신약 성경은 삶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바울은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4~15). 
만일 가식적인 교제에 지쳤다면 그리고 소그룹, 주일학교, 교회에서 진정한 교제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가꿔가고 싶다면 우리는 몇 가지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공동체를 가꾸려면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문제를 덮거나 무시하고 싶을 때에도 사랑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해야 한다. 주의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스스로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때 침묵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행동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스럽더라도 자신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진실을 이야기해줄 사람이 없어서 계속해서 자신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 넣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한다. 많은 교제가 바로 이런 두려움으로 와해 되었다. 구성원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는 동안 그 누구도 목소리 높일 용기가 없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엡4:15)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정직함이 없이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솔직한 대답이 우정의 징표다”(잠24:26, TEV)라고 말하면서, 솔직한 대답이 때로는 상대방을 사랑하여 죄를 짓거나, 유혹에 바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바울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1~2)고 말했다. 
교회 안의 많은 모임과 소그룹은 갈등을 두려워하여 계속 표면적인 데에 머무른다. 긴장이나 불편하게 하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거짓된 평화를 지키기 위해 그냥 덮어두곤 한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개입해서 상황을 진정시키지만,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 모두가 내면에 갈등을 품고 지내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크게 말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또한 소문에 소문을 낳게 된다. 
이것에 대한 바울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거짓과 핑계는 이제 없어야 한다.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라. 결국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결굴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는 것이다”(엡4:25, Msg). 
결혼이나 우정, 혹은 교회 안에서의 진정한 교제는 솔직함에 달려 있다. 사실, 갈등의 터널이란 어떤 관계에서든 친밀함으로 가는 길이다. 내면에 깔려 있는 장벽들에 맞서고, 그것들을 허물 생각이 없다면 절대 서로 가까워질 수 없다. 갈등이 올바른 방법으로 해소될 때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알고 그것을 좁혀 가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책망하는 사람이 아첨하는 사람보다 나중에 더욱 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잠28:23, 쉬운성경). 
그러나 솔질함은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하는 것이 아니며 무례함도 아니다. 성경은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간과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전8:6, TEV). 아무 생각 업이 내 뱉는 말들은 오래 지속되는 상처를 남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말할 때 사랑하는 가족에게 하듯 하라고 말씀하신다. “나이든 남자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모진 말을 사용하지 말고 아버지께 하듯 하며, 어린 남자들에게는 형제처럼 하라. 나이든 여자에게는 어머니께 하듯 하고, 나이가 어린 여자들에게는 자매를 대하듯 하라”(딤전5:1~2, GWT). 
그러나 슬픈 사실은 교회 안에 많은 모임들이 정직하지 못해 깨져왔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모임 안에 부도덕함이 퍼질 때까지 침묵했던 것에 대해 바울은 비난했다. 그 누구도 그것에 맞설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말했다. “…내가 이미 편지에 음행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라고 썼습니다, 내 말은 음행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속이거나, 우상 숭배하는 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려면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울리지 말라고 쓴 것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은 하면서 음행하거나, 탐욕이 있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남을 모방하거나, 술에 적어 살거나, 약탈하거나 그러면,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음식도 같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내가 상관해야 할 일입니까? 여러분이 심판해야 할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사람들이 아닙니까?(고전 5:3~12, 쉬운성경). 
공동체를 가꾸려면 겸손해야 한다 
자신만 중요하게 여기고, 독선적이며, 고집스럽고, 교만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빠르게 교제를 파괴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교만을 그토록 싫어하시는 이유다. 교만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지만 겸손은 다리를 놓고, 관계를 부드럽게 하며, 더 온화하게 해주는 기름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5:5). 교제의 올바른 모습은 겸손한 태도다. 
그리고 이 구절의 뒷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이것이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교만은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하고 치유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를 가린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인정할 때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성경은 내가 교만해질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아주 어리석고 위험한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방법으로 겸손을 연습할 수 있는데 우리의 약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약점에 인내하며,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세워줌으로써 가능하다. 바울은 이렇게 충고한다. “서로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12:16).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이렇게 썼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3~4). 
겸손은 스스로를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덜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는 것이다. 겸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 
공동체를 가꾸려면 공손해야 한다 
공손함이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이며,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을 인내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15:2). 바울은 디도에게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라”(딛3:2)고 말하고 있다. 
모든 교회는 그리고 모든 소그룹 안에는 적어도 한 명 이상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특별히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안정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버릇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특별히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은 그들과 우리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다. 그들은 우리가 성장할 수 있고, 또한 우리의 교제를 시험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우리는 그들을 형제자매와 같이 사랑하고 존중할 것인가? 
한 개인이 얼마나 똑똑하고 아름답고 재능이 많은지에 따라 가족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속해 있기 때문에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방어하고 보호한다. 그래서 어떤 가족이 조금은 바보스럽더라도 그는 가족의 한 구성원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처럼 서로에게 헌신하라, 서로에게 최대한 경의를 표하라”(롬12:10, GWT).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특이한 버릇과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공동체란 서로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와는 상관이 없다. 우리의 교제의 바탕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공손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이 어던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의 과거를 알아보라.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대신에 그들이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얼만큼 멀리 왔는지를 생각하라. 
공손함의 또 다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의심한다고 그들을 얕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서로 의심과 두려움을 나누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세워진다. 
공동체를 가꾸려면 비밀을 지켜야 한다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고,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에만 사람들은 가장 깊은 곳의 상처, 필요 그리고 실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음을 연다. 그러나 비밀을 지키는 것이 다른 형제자매들이 죄를 지을 때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그룹 안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구성원들만이 알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험담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소문을 싫어하신다. 특히 다른 사람의 ‘기도제목’이라는 이름하에 전해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소문은 악한 사람들에 의해 퍼진다. 그들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친구 사이를 갈라 놓는다”(잠16:38, TEV). 소문은 항상 상처를 낳고 분열을 초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딛3:10).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비난받으면 화를 내고 그룹이나 교회를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교제는 그 어떤 개인보다 중요하다. 
공동체를 가꾸려면 자주 만나야 한다 
우리가 속한 그룹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자주 그리고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관계를 맺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던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우리는 함께 만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습관은 이따금 하는 행동이 아니고 자주 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교회의 모임들이 깊이가 없는 교제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데 투자한다. 
공동체는 내가 가고 싶을 때에만 가는, 그런 편리함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요성을 믿기 대문에 원하지 않을 때에도 만난다. 나의 영적인 건강함을 위해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확신 위에 만들어진다. 그 중요성을 믿기 때문에 원하지 않을 때에도 만난다. 교제는 시간의 투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은 매일 만났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진정한 교제를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소그룹이나 모임에 속해 있다면 다음의 아홉 가지 사항을 지키기 위한 그룹 서약서를 만들어볼 것을 권한다. “우리는 서로 솔직한 감정을 나누고(진실), 서로 격려하고(상호 의존), 서로 돕고(동감), 서로 용서하고(자비),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고(정직), 우리의 약점을 인정하고(겸손),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공손), 말을 퍼트리지 않고(비밀을 지킴), 이 모임을 최우선 순위로 둘 것이다(자주 만남).” 
이 특성들을 보면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서로 의지하기 위해서 우리의 자기 중심적이고 독단적인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누리는 유익함은 우리가 치르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