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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 8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Joyfule 2006. 12. 7. 02:08

 
목적이 이끄는 삶 -  8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첫번째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의 영광을 위해 강하고 영광스러운 의의 나무로 심으셨으니”
(사61:3,LB).
8.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4:11)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시1:149:4).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던 그 순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목격자로 그 자리에 계셨고 우리의 출생에 미소짓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 있기를 원하셨으며 우리가 태어난 것을 매우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당신의 기쁨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기로 선택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유익,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존재한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 삶의 첫번째 목적이다. 이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면 우리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이 사살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토록 중요하고 그분이 영원히 함께하실 만큼 우리를 가치 있게 여기신다면 우리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우리는 어떠한 피조물보다도 하나님께 많은 기쁨을 드린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5).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다. 그분은 우리가 기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오감과 감정을 주셨다. 우리가 기쁨을 누리고 즐거워할 수 잇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분은 모든 것을 매우 깊게 느끼는 분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질투하시며, 분노하시고, 기쁨, 즐거움, 만족뿐 아니라 동정, 연민 그리고 비애를 느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며 심지어 웃기도 하신다
(창6:6, 출20:5, 신 32:36, 삿2:20, 대상 16:27,왕상10:9,시2:4,5:5,18:19,33:27,37:23,103:13,104:31,겔5:13,요일4:16).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을 ‘예배’라 부른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는 그를 예배하고 그의 사랑을 신뢰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시147:11,CEV).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든 행동이 예배다. 다이아몬드처럼 예배는 많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예배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권의 책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장에서는 예배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면만 살펴보기로 하자.
인류학자들은 사람들이 어느 문화권에서 살든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섬긴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신적인 존재와 연결되고 싶다는, 하나님이 인간 안에 만들어놓으신 우주적인 갈망이기 때문에 예배는 먹는 것 또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 외의 대체물을 찾게 되고 대체물이 심지어 우리 자신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러한 욕구를 주신 것은 그분이 예배하는 자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종교적인 배경에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배’에 대한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찬양, 기도 그리고 설교가 있는 교회 예배 시간을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의식, 촛불 그리고 성찬식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는 치유, 기적 그리고 황홀한 경험들을 생각할 수도 있다. 예배는 이 모든 요소를 포함할 수 있지만, 이러한 표현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잇다. 예배는 삶의 방식 그 자체다.
예배는 음악 이상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음악과 동의어로 생각해서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를 먼저 드리고 그 후에 가르침의 시간이 있어”라고 말한다. 이것은 아주 큰 오해다. 예배 시간에 행해지는 모든 부분이 예배의 모습이다. 기도, 성경 봉독, 찬양, 고백, 침묵, 잠잠히 있는 것, 말씀을 듣는 것, 필기하는 것, 헌금, 세례(침례), 성찬식, 헌신카드 작성 그리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까지도. 사실 예배는 음악보다 먼저 생겼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창세기 4장 21절에 유발의 출생 전까지 음악은 언급되지 않는다. 만일 예배가 음악뿐이었다면 음악성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예배는 음악 이상의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예배’라는 단어가 특정 음악 스타일을 뜻하는 말로 오용되기도 한다. “처음엔 찬송가를 불렀고, 그 후에 찬양과 경배의 곡들을 불렀어.” 혹은 “나는 빠른 찬양곡도 좋아하지만, 느린 경배곡이 제일 좋아”라고 말한다. 이것은 빠르거나 시끄럽거나 금관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찬양(Praise)이라고 하고, 느리고 조용하고 깊이 빠질 수 있는 때로는 기타가 반주로 상용되는 것은 경배(worship)라고 사용하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예배’의 오용 사례다.
예배는 스타일, 음량 혹은 곡의 속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하나님은 노래가 빠르든 느리든, 시끄럽든 조용하든, 오래된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에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 모두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두를 좋아하신다. 만약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면 그것이 예배의 모습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은 하나님에 대해서보다 우리의 배경과 인격에 대해 잘 알려준다. 한 민족의 음악이 다른 민족에게는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양성을 좋아하시고 그 모든 것을 즐기신다.
‘크리스천’ 음악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기독교적인 가사가 있을 뿐이다. 노래를 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음이 아니라 가사다. 영적인 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사 없이 어떤 노래를 당신에게 연주해준다면 당신은 그것이 크리스천 음악인지 아닌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목사로서 나는 “오늘 예배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쪽지를 받곤 한다. 이것이 예배에 대한 또 하나의 잘못된 개념이다.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예배한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우리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 
만일 “오늘 예배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그 것은 잘못된 이유로 예배를 드린 것이다. 예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물론 예배에는 친고, 교육, 복음 전도의 요소가 포함되고, 예배를 드리는 유익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동기는 우리의 창조주에게 영광과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
이사야 29장에서 하나님은 예배에 온 마음을 쏟지 않고 위선적으로 예배 드리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표현하셨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께 메마른 기도,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찬양, 아무 의미 없는 설교 그리고 의미조차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만든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배의 전통이 아닌 열정과 헌신으로 감동 받으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그 입으로는 나를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덜어져 잇다. 그들이 나를 경배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해오던 대로 형식적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사29:13, 쉬운성경).
예배는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가 아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그를 예배하라”(시105:4, TEV).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찬양하라”(시113:3, TEV)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집에서, 전쟁터에서, 감옥에서 그리고 심지어 침대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찬양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처음 하는 행동이어야 하고, 밤에 눈감을 때 하는 마지막 행동이어야 한다(시5:3,63:6, 119:62,147). 이에 대해 다윗은 말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 하리로다”(시34:1).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이 예배가 될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우유 짜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소젓을 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한 것처럼 함으로써, 또 그것을 하는 동안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삶의 비밀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하듯 하라. 하나님께 드리면 일도 예배가 된다. 그리고 그분의 임재를 느끼면서 행하라. 영어 성경 메시지(The Message)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매일의 일상 생활, 잠 자는 것, 먹는 것, 일하러 가는 것 그리고 걸어다니는 것 모두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라”(롬12:1).
내가 처음 아내와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끊임없이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학교를 갈 때, 수업중에, 슈퍼마켓에서 줄서 있을 때 차에 기름을 넣을 때에도 나는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이따금 그녀에 관해 혼잣말을 하기도 했고,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우리가 몇백 킬로미터 떨어져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끊임없이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그녀의 사랑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