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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 -

Joyfule 2007. 12. 28. 00:12

묘비명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로마시대의 용어가 있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죽음은 삶을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방부제 같은 것이다. 
만약 영원히 산다면 인간들은 지금보다 더욱 오만해 질 것이 분명하다. 
서양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묘비명을 쓴다. 
자신이 직접 썼든 누군가가 써주었든 묘비명에는 
죽은 사람의 삶과 정신을 보여주는 경구가 새겨지기 마련이다. 
동서고금의 묘비명을 모은 책 '끝내지 않은 마침표'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 이다. 
묘비명이라해서 결코 칙칙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삶의 용기와 정도를 교훈적으로 가르쳐준다. 
뛰어난 사업가였던 앤드루 카네기의 묘비명은 이렇게 써있다. 
"여기,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었던 한 인간이 잠들다." 
카네기 자신이 노령에 접어들 무렵 직접 준비했다는 
이 묘비명은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철강왕이라 불렸던 카네기는 원래 철강 관련 지식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전문가들을 잘 찾아내서 부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부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다. 
교육사업과 문화사업에 아낌없이 돈을 헌납했다. 
그의 겸손한 묘비명은 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묘비에는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만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오. 
그러니 제발 깨우지 말아다오, 목소리를 낮춰다오." 
미켈란젤로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체제에 반항적이었다. 
그의 묘비명은 그가 경멸했던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죽음은 모순에 가득찬 세상과 
단절되는 안식이었던 셈이다. 
반항의 상징인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묘비명에는 시가 새겨져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한 시인에 의해 쓰여진 이 시는 
제임스 딘의 삶과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추억 속에 달려간 짐승, 
지하에서 녹슬지 않는 나이프의 빛깔. 
피와 섞인 노래. 
내 안의 나이먹지 않은 나와 그대여." 
죽음으로 삶이 정지해 버렸기 때문에 제임스 딘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를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 시인도 
제임스 딘을 떠올리는 순간은 청춘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창공을 응시하는 방심한 듯한 눈초리, 
코트 깃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는 반항의 표정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하나의 코드로 남겨져 있다. 
링컨의 묘비명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이라는 말은 전세계 민주주의 이념의 확실한 정의로 자리잡았다. 
칼 마르크스의 묘비명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는 세계 각국의 노동쟁의 때마다 등장하는 경구가 되었다. 
러시아혁명을 이끈 레닌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있다.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것이다.   
우리가 처했던 상황에서 불가피 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잔혹한 일들은 결국 이해되고 변호될 것이다." 
레닌은 혁명과 사회주의 정권 수립과정에서 흘려야 했던 
피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의 예견대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지하에서 레닌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 부인인 에바 페론의 묘비명도 유명하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이제 내가 보이지 않고 사라진다해도 
영원히 아르헨티나인으로 남을 것이고 
여러분들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겁니다." 
이 묘비명으로 에바 페론은 
빈민가 출신이라는 그녀의 특이한 이력과 함께 
영원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연인으로 자리잡았다. 
 조선말 개혁가 김옥균 
"비상한 세대에 비상한 인물이 비상한 재주를 갖고 
태어났으나 끝내 비상한 공을 이루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묘비명은
"여행자여! 
이 돌 아래에는 디오판토스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그의 신비스런 생애를 수로 말해 보겠다. 
그는 일생의 1/6을 귀여운 소년으로 지냈다. 
또 일생의 1/12 은 턱에 수염이 자라는 청년 시절 이었다. 
일생의 1/7은 자식이 없는 결혼생활을 하였고, 
그 후 5년이 지나 아들이 태어나서 몹시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운명은 이 아들의 아름답고 찬란한 일생을 
그 아버지의 반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디오판토스는 깊은 슬품을 맛보았지만 
아들이 죽고 난 후 이 노인은 4년을 더살고 생애를 마쳤다."
(정말 누가 수학자 아니랄까봐... )
천재 시인 존 키츠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 있노라"
A. R. 아펜젤러 선교사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
"살았다, 썼다, 그리고 사랑했다.’
(실제로는 일생 딱 한번밖에 연애를 못하고 
연애소설만 죽어라-썼다 합니다 )
영국의 극작가 세익스피어 
“…내 유골을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프랑스의 점성가 노스트라다무스 
“후세 사람들이여, 그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시오.”
(안타깝게도 그의 무덤은 예언서를 찾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수없이 파헤쳐 졌다 함.)
그리스의 대표적 작가 카잔차키스 
"나는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걸림이 없다."
헌신적인 교육봉사자 페스탈로치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타고난 유머로 유명했던 작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적었다. 
"나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참고로 원문을 붙여둡니다)
해학적이면서도 촌철살인의 뜻을 담고 있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우물쭈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지나온 인생에 대한 후회는 
바로 이 '우물쭈물'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양하(영문학자.수필가)는 
그의 묘비명을 마음속에 조탁해가면서 살었다
"여기 한 사나이 누웠으니
애써 글읽고
하늘과 바람과 물과 나무를 사랑하고 
사람도 사랑하였으되
성실 있기 힘듦을 보고 가노라."
내가 죽은 후, 
내 묘비명은 어떻게 쓰여질까를 늘 염두에 두면서 
인생을 사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듯 싶다.


버나드 쇼의 묘비
음악 ERA-Davino 

출처 :景福高 34回 同窓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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