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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노동개혁" 입에 담지도 말라 - 동아일보

Joyfule 2015. 12. 21. 23:30

 

 

[김순덕 칼럼]문재인은 “노동개혁” 입에 담지도 말라

 1980년대 엄혹한 신군부시절 1인소득 2000에서 6000달러로
81년 우리보다 잘살았던 중남미 노조의 개혁 반대로 쪼그라들어
노무현정부 때 민정수석 문재인 불법파업에 판판이 항복하고 후회 노동개혁 법안 반대할 자격 없다
 

김순덕 논설실장

 

‘응답하라 1988’식으로 말한다면, 1980년대가 서슬 퍼런 신군부 독재로만 존재한 건 아니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나왔고 여대생들도 요즘처럼 자소서(자기소개서) 수백 장씩 쓰지 않아도 취업이 가능했다.

물론 매판독점자본이 파쇼정권과 손잡고 노동자를 착취하다 운 좋게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의 3저 시대가 닥쳐 호황을 누렸다고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8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나라(1968달러·세계은행 통계)보다 많았던 아르헨티나(2756달러), 브라질(2106달러)이 1990년엔 우리(6642달러)보다 쪼그라들었다(아르헨티나 4318달러, 브라질 3071달러). 1980년대 운동권을 사로잡았던 종속이론이 맞는다면 중남미는 우리보다 잘살아야 했다. 그들의 수입대체 발전모델 대신 우리는 개방경제로 갔고, 그들 정부는 노조 지상주의 포퓰리즘으로 갔는데 우리는 물가 안정과 성장을 위해 노조를 억압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은 아르헨티나가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에 나설 때마다 노조가 결사반대해 실패한 과거사를 보면 바다 건너 사는 나도 배신감을 느낀다. 정부 후원 아래 정치세력화한 노조는 파업을 정당시하고 노동의 질 저하와 노동윤리 타락이라는 유전자(DNA)를 남긴다는 중남미 포퓰리즘 연구 결과도 있다.  

그게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다. 1인당 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서면 극심한 노동 분규가 나타나는데 미국이나 영국처럼 법대로 다스리거나, 아일랜드 야당처럼 “정부가 옳은 방향이면 막지 않겠다”며 사회협약에 앞장서거나, 독일처럼 종업원평의회를 개혁해 노사 안정에 성공할 경우 2만 달러 고지로 가는 길이 환히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1만 달러를 달성한 뒤 96년 말 민노총 총파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법 파동을 남긴 채 맥없이 물러섰고 후임 좌파정부는 법과 원칙을 무시한 친노(친노동) 정책으로 노조 권력을 키워줬다. 이 때문에 우리의 노동개혁과 민노총은 지금껏 후진을 거듭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화 정보화로 노동운동이 쇠퇴하면서 선진국 노사관계는 파트너십으로 달라진 지 오래다. 여태 전투적 노조가 존재하는 곳은 노조를 기반으로 한 집권 좌파당이 나라를 경제위기에 빠뜨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 그리고 우리나라밖에 없을 정도다. 


김대중(DJ) 대통령은 노조를 약자 또는 동지로 믿었지만 1997년 그가 만든 노사정위원회는 노동 유연성은커녕 고용 보호를 되레 강화시킨 괴물이었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공기업 개혁도 노조 반발에 용두사미가 됐다. 그래도 DJ는 공개적으로 노조를 비판하진 않았다. 그제 노무현재단 송년행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비정규직이 사상 최대라는 통계를 볼 때, 소득 양극화가 더 심각해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웠다”고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취임 반년도 안 돼 노조의 본질을 간파한 노무현이 “노조가 귀족화 권력화하는 부분이 있다” “나라가 있어야 노조가 있는 것” “노동운동이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노동계 주장은 큰 착각”이라고 비판한 것을 문재인이 잊었다면 측근 자격이 없다. 심지어 2004년 11월 기자회견에선 “민노총의 비정규직 관련 입법 저지 총파업은 시대착오적인 잘못”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 대통령 밑에서 노조 파업에 판판이 항복했던 사람이 당시 민정수석 문재인이었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고 나선 화물연대 파업에 “말이 합의타결이지 사실은 정부가 두 손 든 것”이라고 자서전에 적기까지 했다. 철도노조의 해고자 복직과 민영화 중단 요구도 파업 불법성은 따지지도 않고 수용해 버렸다. “노정(勞政) 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면이 있었다”고 자인했던 문재인이, 그래서 국민소득 2만 달러까지 가는 데 11년이나 걸리게 만든 장본인이 지금 노동개혁 법안의 발목을 잡는 건 노무현을 욕보이는 일과 다름이 없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헤어나지 못한 수구 좌파가 아직도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 새정치연합과 민노총이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출신 의원이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것까진 참겠다. 그러나 나라를 노조천국, 파업공화국으로 만들었던 문재인만은 ‘노동개혁’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