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라이 늙어죽을 놈들 . . . "
ㅡ 펌 ㅡ
시내 한 패스트푸드점 카운터.
40대의 한 여성이 주문에 익숙치 못한 듯 시간을 끌고 있다.
뒤쪽에 서있던 소녀가 친구에게 거침없이 소리친다.
"야, 지금 어떤x년이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버벅대고 있어.
x팔! 존나 짱나미치겠어. xx...알지 못하면 처먹지를 말던지... "
순간 40대의 그 여성은 찬물을 뒤집어 쓴 뜻 황망히 사라졌고
10대의 소녀는 여전히 한쪽 다리를 달달 떨며 통화를 계속했다.
지하철 안이다.
주변 사람들과 휴대전화의 장막을 친 곱상하고 가녀린 10대 소녀가 전화기에 대고 하는 말...
"우리 엄마 정말 미친x 이야.... 맨날 저녁마다 나가...."
그 말을 듣고있는 주변의 사람들은 그 소녀의 표현대로 "허걱!"했다.
그 소녀의 통화는 30분이 넘도록 욕설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났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적통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한마디 참견 이후에 되돌아 올 끔찍한 언어의 폭력과 스스로 감당해야 할 참담함이 두려웠을 것이다.
어찌 그 "엽기적 10대 " 뿐이랴.
우리 사회는 욕설이 일상어가 되어 가고 있고 폭력적인 비방과 악의적인 비난이 일상화 되어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에서" "욕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회가 된 듯 하다.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욕설은 이미 "응달의 언어"가 아니다.
"개xx. 미친x. x팔!....쯤의 욕설은 이미 평상언어가 되어 버렸다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고스톱판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원색적인 상소리를 내 뱉는다.
뒷골목 언어.
특히 폭력배나 사용하던 언어들이 남녀노소 할것없이 국민언어로 둔갑하여 대로상에 버젓이 뛰쳐 나왔다.
10대들이 사용하는 "또래언어"라고 하는 욕설 중에는
기성세대들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들이 많지만
"재섭는 x" "졸라 씨x"...쌍시옷과 쌍기역으로 점철된 것과
"씨바" "졸라" "뻐뀨" 처럼 일부 음소(音素)를 탈락 시켜버린 제2의 욕설들은 인터넷 웹진 등을 통해 널리 유포되면서
10대를 넘어 전 국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여 독버섯처럼 번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새천년 초입의 한국대중문화를 점령하다 시피한 영화.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두사부 일체" 그 이외의 숱한 영화들과
뮤직 비디오 CF의 장면 속에서 살점이 터져 나가고 뼈가 부서지며 생선회칼에 난자 당하는
주인공의 피학장면을 보며 대중들은 피학 내러티브 녹아든 망가지는 주인공.
그 자체의 장면에 열광하고 있을 뿐, 권선징악의 논리에는 관심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폭력 못지 않게 대중문화의 획일화 황폐화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관객과 시청자들의 자극적인 주의를 끌기 위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일일 연속극과
극단적 설정과 액션을 사용하는 영상문화의 제작정신이 이 땅의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으며
그들이 나누는 일상의 대화를 기성세대가 오히려 배워가는 이 기막힌 현상...
그리하여 나누는 일상의 대화 속에 "직이삔다" "쪼사 버린다" "니 아이를 갖고 싶다"는 따위의
황당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들이 우리들의 일상언어를 오염시키고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이 나라의 선도자적 집단인 정치인 법조인 학자들마저도 자신의 이익이나 이념과 배치되는 사람을 비방할 때
혹은 어떤 집단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현장에서 공공연히 시정잡배나 조폭들이 사용함직한
섬뜩한 언어들을 거침없이 구사하여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고 보면
위험수위에 다다른 우리 언어문화의 오염도가 얼마나 심각한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
유럽의 상류계급이면 지켜야할 의무 중에 욕설을 입에 담아서는 안되며
그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그들 상류사회에서 소외되는 첫 번째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양반사회에서도 매 한가지였다.
개자식이란 말에 격분하여 살상사건이 일어나 이를 재판기록에 쓸 때에도
犬 자를 기피하기 위해 이를 풀어 "귀없는 大人"이라고 썼으며
또한 여성의 국부를 재판기록에 적어 놓은 것을 보면
"不忍見之處(불인견지처)" 곧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으로 풀어서 썼든 기록이 있다.
그만큼 동물적이고 성기를 지칭하는 욕말을 기피했던 우리의 조상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후 일본의 국회에서 요시다(吉田武)수상이 당리당략으로 회기를 지새우는 여야의원들을 향해
"바카야로! (바보 자식!)"라는 욕설을 한 일이 있었다.
이 한마디가 화근이 되어 일본국회가 해산까지 했던 일을 상기하면
신분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지니고 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영국의 의회에서 수의사 출신의 장관이 야당의 한 의원으로부터
"개나 상대하는 수의사가 국정을 논하다니..."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
이 말에 대한 장관의 한 마디는 -
"말씀 하신 대로 나는 수의사입니다.
헌데 귀 의원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좀 보아 드릴까요...?" 이었다.
의회 장에는 폭소가 터졌고 저속한 표현으로 장관에게 모욕을 주려던 그 의원은 졸지간에 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곧 개라는 욕말을 직설적으로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개로 만들어 버리고
욕말 때문에 품위를 잃지 않고도 상대방의 저속한 비난을 재치 있게 되받아 준 셈이 된다.
중국의 문화혁명때 나붙은 그 많은 대자보 중에 가장 빈도 높게 등장했던 욕말이
죽인다는 뜻인 "살(殺)"이 었다고 한다.
"누구누구를 소살(燒殺)하라느니 타살(他殺)하라느니 폭살(爆殺) 하라느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등골이 오싹 해지는 막말이다.
이러한 막말들이 지금의 우리 주변에는 일상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막말은 곧 언어를 통한 폭력이며 상대방을 겁주고 협박하여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폭력집단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언어구사 방법중의 하나이다.
"난...말이야...이렇게 막간 인생이야...나 건드리지마!" 라는 신호는 무시무시한 욕설로 무장되어 나오는 법이다.
깡패의 행동은 무자비한 욕설로 시작되고 험악한 표정과 몸짓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욕설은 어둠의 언어이며 공격의 언어인 동시에 스스로 좌절을 받아들이는 그들만의 자기위로의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전국 욕 대회"는 욕설의 해학과 수사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바탕 이었다고 적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해학과 풍자가 질박하게 엉겨붙은 민요와 판소리 속의 욕설들은 노곤한 민중들의 삶을 위무했고
양반, 상민,천민간의 계급갈등과 부유한 자와 가난한자를 은유한 "문화"였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들 입을 온통 더럽히고 귀를 오염시키고 마음을 병들게 하는 남녀공용의 욕설에는
풍자와 은유 그리고 웃음은 간 곳이 없고 오직 거칠어진 사회병리와 자기불만의 토사물로서만 존재할 따름 인 것이다.
심지어 이즈음은 욕설의 출처가 남녀의 구별이 없다는 것에 사회적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보아진다.
이 같은 현상을 의식의 변태적 유니섹스화"라고 인제대국문과 김열규 교수는
그의 저서 "욕..그 카타르시스의 美學"에서 밝히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세상을 인식다"고 했던 흄 볼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즈음 나날이 척박해져 가는 정신문화와 사회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언어의 폭력을 지켜보는 참담한 심경 속에서
나는 문득 유년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욕 한마디를 떠올려 본다.
초등학교때 방학이면 동생과 함께 시골 할머니댁에 가서 한동안을 보내곤 했는데
또래의 시골친구들과 산과들 개울가를 어울려 다니며
날이 저물도록 철없는 개구쟁이 짓으로 할머니를 속썩혀 드리는 일이 많았다.
그럴때면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내뱉는 욕 한마디...
"예라이 늙어 죽을 놈들....."
세월이 흘러 당신이 떠나신지도 삼십년이 지난 이즈음.
당신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그 한마디가 가슴 깊은곳에서부터 배어 나온 사랑의 마음이며
욕같은 억양을 빌렸으되 전혀 욕이 아닌 사랑의 언어 였음을 장년이 되어있는 지금에 와서야 헤아리게 되었다.
늙도록 살다 죽으란 것이 어디 욕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당신의 절절한 사랑이지.
오늘날 정화되지 못한 언어들이 만연하고 흉포화된 감정의 토사물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유년의 기억속에 아지랑이 처럼 피어나는 할머니의 얼굴과
개구리며 미꾸라지 잡이로 논두렁 개울가를 온종일 쏘다니다 흙투성이 강아지꼴이 되어
신발 한짝 잃어 버리고 해거름 녘에서야 대문가를 들어서는 우리를 보며
"예라이..늙어 죽을 놈들..."이라며 웃음띤 얼굴로 우리를 꾸짖으시던
할머니의 단아하게 비녀 꽂으신 그 모습이 이즈음 들어 사무치게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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