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의 영이 비틀어버린 우리네 교회의 신앙관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은 지금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천국의 도성에 이르게 될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 근거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한 교회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교단은 다르지만 대동소이한 교리를 토대로 구원관을 확립시키고 있다. 교리는 교단신학자들이 성경을 자세히 풀어 해석하여 주제별로 확립하여 신학교에서 신학생에게 교육하고, 신학생들은 목회자가 되어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비슷비슷한 신앙관을 가지게 된 이유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말하자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인 셈이다. 그러나 외관이 너무 그럴듯하여 시동이 걸리지 않아도 세워놓고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값비싼 고물에 불과할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집단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왜 성경적으로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이는 교회의 신앙관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지 곱씹어보고 싶다.
1. 믿음
우리네 교회에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은, 영접기도에 아멘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성경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에 대한 정의이다. 우리네 교회에서 주장하는 믿음은, 자신이 믿는 것을 잣대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자기 확신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해주셔야 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마16:17~20)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5~8)
그러나 성경에서 인정하는 믿음은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이 쫓겨나가며 고질병이 낫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내려오는 것으로 증명되는 믿음이다. 말하자면,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라고 인정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믿음 안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는 자기 확신의 믿음은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말장난인 셈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명령과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자신이 확신하는 믿음을 구원을 얻는 믿음이라고 속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2. 예배
우리네 교회는 주일예배를 비롯한 다양한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해야 한다거나,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는 비성경적인 말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있다. 또한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처럼 가르치는 교회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투의 가르침이 성경적인가?
예배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스퀘네오’란 말과 ‘라트레이아’를 번역한 단이다. ‘프로스퀴네오’는 ‘절하다라’는 뜻이고 ‘라트레이아’는 ‘제사’라는 의미이다. 원어성경에는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식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배의식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는가? 그리고 예배의식에 참석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었다고 여기고 있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구약성경에서 예배라고 번역한 단어는 죄다 소나 양을 번제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더 이상 소나 양을 죽여서 드리는 구약의 제사법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롬12장에서 번역한 예배는 ‘라트레이아라’인 헬라어 단어인 ‘제사’를 번역한 단어인데, 이 제사의 제물은 자기 자신이다. 즉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제물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영적 예배(제사)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배는 포르스퀴네오인 ‘절하다’를 번역한 단어이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배하는 자는 교회건물 등의 특정한 종교건물에서 예배의식을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절하고 섬기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를 말하고 있다.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는 지금의 예배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혹의 영은 우리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시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속이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3. 교회
교회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말이다. 그러나 원래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 단어는 종교적인 색채가 전혀 없는 특정한 무리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교회란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지,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안수를 받은 목회자가 예배의식을 시행하는 기독교의 예배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특정한 무리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고, 현관문에 교단명칭이 붙어있는 교회건물을 지칭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성경은 제자들과 교인들에게, 그냥 종교적인 공동체인 교회(에클레시아)를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주인이 된 교회,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진정한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계시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일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워진 교회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간판만 붙였다고 성경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행19:37~41)
위의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말씀 중에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말이 두 개나 들어있다. ‘민회’와 ‘모임’이다. ‘민회’는 에베소시의 정치기구이며, ‘모임’은 아데미 신을 믿는 사람들이 소요를 일으킨 모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교회’라고 번역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에서 언급한 ‘에클레시아’가 죄다 교회라고 믿는다면 웃기는 얘기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몸으로 세운 교회만을 뜻한다. 그래서 보혈의 능력이 나타나지도 않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는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신학교를 나온 목회자가 예배의식을 거행한다고 죄다 교회가 아니다.
4. 죄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헬라어로 ‘하마르티아’인데, 이는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죄의 개념과 다르다. 즉 성경의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성품과 생각 등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고 있다. 아담이 죄를 지은 것도,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며 금지한 내용이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 오면 이 죄를 가르치고 금지하기보다, 교회의 담임목사가 말하는 내용이 우선시 되고 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교회봉사를 비롯하여 목회자가 말한 내용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여겨 정죄하고 있다. 그래서 교인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요일에 교회에서 시행하는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지옥에라도 떨어질 것 같은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성경은 주일이 일요일이 아니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멸망의 날이며, 사도신경으로 시작하여 축도로 마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이 전혀 없다. 또한 교회봉사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는 내용도 없고,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교회에만 드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지 못할 사정이 있어 못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고 내용이 없다. 게다가 목회자가 하나님의 대언자가 아니며, 목회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도 아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교인들이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며, 이를 어기면 지옥에라도 떨어지는 듯 겁을 주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말을 어겼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아니며, 성령을 훼방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도 없는 목회자의 명령에는 즉각 순종하면서, 성경에서 밝힌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에 대해서는 담대하게 살고 있는 게, 작금의 우리네 교인들의 불쌍한 모습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성경에는 우리가 죄의 행위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미 악한 생각을 하기만 하면 죄를 짓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죄에서 완전한 사람이 있는가? 솔직히 아무도 없다. 육체의 몸을 입은 인간은 누구라도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교회에서 죄를 깨닫게 해주지 않고 죄와 싸우라고 권면하지 않는다면, 모두들 죄를 밥 먹듯이 짓지만 이를 깨닫지 못해서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지옥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에서는 성경에도 없는 시시콜콜한 신앙행위를 어기면 큰일이라도 난 듯이 위협을 하고 겁을 주면서, 정작 지옥에 떨어지는 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니, 참 희한한 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8)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죄인이며, 예수님은 죄를 회개하고 죄와 싸우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행범을 위반하였거나 도덕적인 죄, 혹은 교회지도자가 말하는 것을 위반하는 게 죄라고 잘못 알고 있다. 어쨌든 당신이 죄에 무지하든 아니든 죄를 짓는다면 지옥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깨어서 죄에 민감하여서, 자그마한 죄라도 즉각 회개하며 죄를 짓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죄에 대해 잘못 가르치거나 아예 덮어주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5. 은혜 구원
우리네 교회에서는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투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한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지 않으며 의심하는 것이라고 닦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해주셨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회개했다고 하면, 죄가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비록 죄 가운데 있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는 죄의 촉구나 회개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까발리는 것을 싫어하고,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자들을 교회에서 내몰아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까, 더 이상 죄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일까?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인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며, 의인은 단 한명도 없다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처럼 완벽해야 하며, 자신처럼 거룩해야 하며, 믿음 없이 한 말과 행동은 모두 죄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할 것을 명령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를 만족시키는 사람이 세상에 한명도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죽어서 지옥에 던져져야할 운명인 셈이다. 이 사실을 아는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주심으로 구원을 얻는 문을 열어주셨다. 말하자면 구원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문을 열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사람은, 날마다 자신의 죄를 씻는 사람이다. 만약 단 한 번의 회개기도만으로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를 받았다면, 초대교회의 7개 교회 중에서 5개 교회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을 리가 만무하다. 초대교인들이 철저한 회개가 없이 예수를 믿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는, 자신의 어떤 노력이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변질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마음의 생각이 죄이며 육체의 생각을 좇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죄를 회개하는 자마다 용서함을 받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셈이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날마다 십자가 밑에서 자신의 죄악을 낱낱이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죄 가운데 살고 있더라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궤변을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이런 주장이나 교리는 미혹의 영이 던져준 달콤한 미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1분짜리 영접기도만 하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착각하고 있다. 영접한다고 하는 의미는 입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전인격적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지킬 능력이 없는 무능한 먼지일 뿐이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통곡해야 한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으며,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천국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자신은 하나님의 계명을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죄 가운에 살면서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도, 과거에 1분짜리 영접기도와 회개 기도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인간의 교리를 확신하며 예수님의 명령을 멸시하고 우습게 보는 자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겠는가?
이처럼 미혹의 영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미혹시켜서 잘못된 구원론과 신앙관을 가르치고 믿게 하고 있다. 그래서 성령의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교회지도자의 말만 믿고 천국행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미혹의 영에게 지배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선생이 지옥에 가면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고 덧붙이셨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하며, 성령 안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녀들만이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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