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자기확신이 아니라 믿음을 보이는 것으로 증명하라.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인들을 성공적으로 속이고 있는 것이 바로 믿음에 대한 정의이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자신들이 신앙고백을 하고 믿고 있다고 고백하고 확신하면, 그게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래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주일성수도 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냐고 반문하고 있다. 덧붙여서, 주변의 수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믿음에 의구심을 가지면, 목회자나 주변의 교인들로부터 돌직구가 날아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귀신들도 갖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귀신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기가 막힌 일이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행16:16,17)
위의 구절을 보라. 귀신들도 믿고 두려워서 떨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누구인지, 바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귀신들이 하나님의 종이 되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들이 믿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당신이 믿는 척도는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뜻에 순종하고 있는가? 아브라함과 당신이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놀라운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친구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받았다지만, 당신의 믿음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자기 확신의 믿음의 잣대는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의 판단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판단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이는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회지도자의 머리를 타고앉아 자신의 생각을 속여서 넣어주고 있으며, 우리네 교인들도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들은 말해주어도 아무도 들을 생각이 없다. 기가 막힌 일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6:9,10)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미혹의 영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백성들의 눈을 감기고 귀를 가리고 마음을 둔하게 하여서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셨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자기의 욕심을 채워주는 스승을 따라 진리의 말씀을 버리고 미혹된 가르침을 따라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신의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시는 죄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교회마당을 밟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이러한 우리네 교회의 모습이 미혹의 영이 지배하고 있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칼럼의 주제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어떻게 증명되는가? 바로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로 증명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18~26)
당신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은,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그치느냐 믿음을 보이는 행위가 있느냐의 차이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고향을 떠나 나그네의 길을 떠났으며, 심지어는 아들이삭을 주여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도 두말하지 않고 순종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주어 나라와 민족의 배신자가 되는 결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요셉은 10년을 넘게 지하감옥에 갇혀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으며, 다윗은 목숨을 걸고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섰다.
그래서 당신이 보여주는 믿음의 행위는 무엇인가?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주일성수에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고? 그러나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이 믿음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성경 어디에 있는가? 믿음은 어떤 암울한 환경과 부정적인 상황과 절망적인 결과에도, 기적과 이적으로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래서 날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며,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싸우며, 혹시라도 부족하고 연약하여서 죄에 걸려 넘어졌다면 즉시 전심으로 회개하여야한다. 그게 믿음을 보이는 행위이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하시면서 기적과 이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화답하시며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 확신의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이해를 믿음이라고 착각하며, 하나님의 뜻에 아랑곳 하지 않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종교적인 행위들을 따라하고 있다면 천국은 꿈도 꾸지 마시라. 미혹의 영에 지배당하는 교인들이 천국에 들어갈 턱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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