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지만,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지옥에 간다.
필자가 시작하는 칼럼의 제목을 인정하는 크리스천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에 있다.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지도 않고 깊이 묵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북한의 TV나 신문처럼, 당국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듣고 있는 북한주민과 같다. 영성학교에 온 어느 탈북자가 말했다. 그곳 주민들이 듣는 뉴스는 죄다 당국에서 짜놓은 각본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녀가 중국으로 탈출했을 때, 중국 TV에 비친 한국의 실상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게 진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저하게 속아 살아온 세월이었다고 실토했다.
이처럼 목회자들이 말하는 구절, 교단신학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그들의 교리에 짜 맞춘 설교만을 들어온 교인들은, 성경에 그들의 교리에 충돌하는 성경말씀들이 널려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쩌다 그런 구절을 읽어도 깊은 의구심을 갖지도 않고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있는 믿음의 실체에 대해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을 깊이 잠들게 하여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마치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한 말에 돌팔매질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거짓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믿고, 자신에게 재앙을 선포하는 참선지자의 말을 듣고 분노하며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는 죽여 버렸다. 그렇다고 필자가 참 선지자이고 참 목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필자가 한 말이 과연 성경적인지, 성령의 증거와 능력과 열매가 있는 지로 분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왜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이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겠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1~3)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14~20)
위의 말씀은 밧모섬에 있던 사도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초대교회에 선포하라고 하신 말씀들이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1분짜리 영접기도행위를 하고 일요일에 한 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우리네 교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믿음의 소유자들이다. 먼저 사데교회의 교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온전한 믿음에서 나오는 말과 행위이다. 잘 보시라. 그들에게 살펴보시는 것이 믿는가는 관념적인 생각이나 이해가 아니라, 행위를 알고 계시며 행위에서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는 말에 주목하라. 당신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천국의 자격을 자신하는지 몰라도, 예수님의 믿음에서 나오는 온전한 행위를 살펴보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이 온전하게 살고 계신다. 온전하다는 단어는 완벽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다른 성경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우리도 온전하라고 명령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야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하나님만이 가능한 능력이며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은 사데교회에 말씀하신 수준을 넘어선다. 미지근한 믿음을 지닌 교인들을 토해내서 지옥 불에 던져지게 하시겠다는 책망이시다. 미지근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과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일까?
성경에는 우리네 교회에서 행하는 각종 종교행위를 구체적으로 명령하신 적이 없다. 그런 종교적이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들은 교회의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신앙행위를 가지고 믿음을 판단하실 리가 없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근거는, 하나님의 뜻, 계명, 명령 등을 철저하게 순종하여 지키고 있는지의 여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이 믿음이 부요하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곤고하고, 가난하고, 벌거벗고 수치스러운 상태에 있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옷을 홀랑 벗고 있으면서 훌륭한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바깥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고 계신다.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께서 자동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고 가르치는 우리네 교회의 교리와 얼마나 다른가? 초대교회의 바깥에 계시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면서 이들 교회에 대한 책망과 징계의 시작이 바로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깨달아서, 고백하며 통곡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울부짖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지적과 깨달음과 가르침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설교시간에는 귀를 간질이는 덕담과 축복, 립서비스에 불과한 위로와 격려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에 익숙한 교인들은 당연한 얘기를 듣는다면 심드렁한 표정이다. 이게 우리네 교회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난 교회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으며, 교인들은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처참한 우리네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이 천국에 간다면 성경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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