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정성화
우리 집 식구들은 사방에 솥을 걸어두고 산다. 선장인 남편은 바다 위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은 학교 식당에, 딸과 나는 도심 한 복판에 있는 아파트 11층에다 솥을 걸어놓고 있다.
가족끼리 한솥밥을 먹는 그 당연한 일이 내게는 참 부러운 일이다. 집을 떠나있는 우리 집 남자들은 입맛에 관계없이 정해진 식단대로 담아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닭장에 갇힌 채 뿌려주는 사료나 착실하게 먹고 매일 한 개씩 알을 낳아야 하는 양계장의 닭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질 때가 있다.
객지에 나가 언제 돌아올 지도 모르는 아들을 위해 늘 부뚜막에 밥 한 그릇 떠놓고 기다리던 어머니의 정이 내 몸 어딘가에도 흐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서로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 전화를 하게 되면 맨 먼저 “밥은?”하고 묻게 된다. 그러고 보면 밥이란 어쩌면 모성(母性)의 한 형상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밥’하면 밥의 온기가 금세 소리를 타고 상대방의 가슴에 따뜻하게 전해질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밥 잡쉈능교?”로 시작하는 우리네 인사법이 은근하고 다정하다. 그것이 바로 가슴을 데우는 것이리라. 그렇게 데워진 가슴에 정을 담는다면 아마 식지도 않을 것 같다. 남편이 잘 쓰는 인사말 중의 하나가 “언제 우리 집에 와서 식사 한번 같이 합시다.”이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손님을 모셔와서는 있는 대로 상을 차려오라고 한다. 미리 알려주면 상차리기가 더 부담스러울 거라는 그의 얘기도 일리는 있지만,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 나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독립군 남편의 아내가 된 것 같은 심정이다.
남편은 손님의 젓가락이 자주 가는 찬그릇을 그의 앞에 놓아주고, 이것저것 드시라고 권하기도 하며, 국이 식으면 얼른 뜨거운 국물로 바꿔 드리라고 한다. 조촐하고 소박한 식탁을 어느새 정이 넘치는 자리로 바꿔놓는 남편을 보면서, 정말 이런 게 사람 사는 정(情)이구나 싶었다. 그 옛날 대갓집의 행랑채에 맞아들였던 식객의 숫자로 그 집안의 덕망과 가세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밥을 나눠 먹는다는 것은 바로 덕을 쌓고 사람됨을 찾는 일이 아닐까 싶다.
닭 모이만큼의 쌀을 씻을 때나 겨우 바닥에 깔린 쌀알위로 밥물을 부을 때 나는 쓸쓸해진다. 어머니는 그 옛날 얼마나 막막했을까.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한동안 밥을 풀 때마다 우셨다. 아버지가 쓰던 놋주발을 쓰다듬으며 소리 죽여 우셨다. 우리는 밥솥에 떨어진 어머니의 눈물 섞인 밥을 말없이 먹으며, 앞으로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속을 썩여선 안 된다고 다짐을 했었다. 어머니는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 젖어 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밥상을 마주하고 앉을 남편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아버지의 밥그릇 속에 담긴 당신의 쓸쓸함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뜨겁게 달구어진 솥 안에서 겨우 두 공기 정도의 밥이 익어가고 있다. 그 때문에 밥솥은 더 열 받는 것 같다. 그런 밥솥에 상관없이 압력밥솥의 꼭지는 언제나 치직치직 소리를 내며 신바람 나게 돌아간다. 나처럼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보라고 하는 듯이.
나도 일 년에 석 달쯤은 밥솥의 맨 위 눈금까지 쌀을 안쳐 밥을 짓는다. 그때 밥솥은 김이 새어나오는 소리도 다르다. 남편과 아들의 귀향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밥솥은 가장 활기찬 모습으로 부엌 대장 노릇을 한다. 저 하고 싶은 만큼의 일을 해서 떳떳하다는 듯, 밥솥은 묵직하면서도 힘찬 소리를 낸다. 나도 언제쯤 묵직한 내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쓴 글들을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져 소리는커녕, 내 글 뒤에 엎드려 숨고 싶을 뿐이다. 나의 글 뒤에서 당당히 앞으로 나올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는지. 밥솥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남편이 내게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은 결혼할 무렵 중국집에 갔을 때의 일이라 한다. 자장면이 나올 동안 내가 나무젓가락 두 짝을 떼어 내더니 아주 정성껏 싹싹 비벼 털어서 건네주더라는 것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변해서, 남편이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 같다고 말해도 “웬만하면 참으라.”는 한 마디뿐이니, 우리 밥상 위의 역사는 잘못 흘러가고 있는 거라며 서운해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반성은 뒤로 한 채, 얼마 전에 있었던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을 떠올렸다.
육십이 다 된 아들이 쌈을 싸서 팔순 노모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오십년 전에는 어머니가 쌈을 싸서 내 입을 넣어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드리고 있다”며 덧없이 흘러가 버린 분단의 세월을 그 쌈 속에 싸버리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갈비살을 잘라 서로의 밥 위에 얹어주며 “한 숟가락 더”를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정 우리의 본래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밥은 오십 년 만에 만난 부모형제를 그렇게 한 덩어리로 뭉쳐 놓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남편이 배에서 전화를 했다. 나는 또 촌스럽게 “밥은 어때요?”라고 했다. “잘 먹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말고”라 한다. 마음이 놓인다. 그의 전화가 내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주는 밥이 된 셈이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잠시 열렸던 바닷길이 이내 닫혀 버린다. 베란다 끝을 비추던 햇살 한 자락이 어느새 이만치 들어와 내 어깨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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