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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일지'속의 두 신선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5. 14:16





'변호사일지'속의 두 신선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삼십육년 동안 ‘변호사일지’를 써왔다. 변호사는 수많은 애환과 호소를 매일같이 듣는 직업이다. 더러는 그들을 부축해서 어두운 터널을 함께 통과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되새김을 하는 소같이 그때 쓴 일지를 보고 다시 정리해서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 때가 왔다. 나는 요즈음 동해안 바닷가의 조용한 방을 얻어 깊은 밤이면 그 일지들을 보고 있다. 그 안에는 온통 신음과 절규, 원망의 소리들이 가득차 있다. 피 냄새가 번지고 견디지 못하는 비릿한 욕정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되돌아본 변호사일지 의외로 거대한 쓰레기더미 같았다. 


나는 외눈박이였다. 세상의 선한 면은 보지 못하고 그들의 눈에 맞추어 나쁜 면만을 봤다. 아예 나의 눈과 코는 시궁창 속에서 거기 젖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신문이나 책을 보면 비난이나 지도자를 조롱하는 글로 꽉 차 있다. 그런 오염된 공해 속에서 맑고 향기로운 글은 거의 보기가 어렵다. 

단점은 누구나 쉽게 발견한다. 그러나 선한 면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쓰레기 같은 사건들로 가득 찬 변호사 일지 중 연꽃 같은 맑고 아름다운 얘기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 걸 찾으면 마치 쓰레기 더미 속에서 금반지 하나를 줏은 것 같이 기쁘다. 


나는 그런 자료를 씻고 닦아서 작은 글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제 밤 한시경 나는 ‘변호사 일지’중 이천십일년 십일월일일 화요일 저녁 여섯시경의 나를 보았다. 나는 서울대 입구역 칠번출구 앞에 있었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푸른 기운이 남은 하늘 비스듬히 하얀 달이 걸려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을 가서 내렸다. 산위의 달동네를 가기 위해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오래된 주택들이 희미한 가로등 빛 아래서 침묵하며 웅크리고 있었다. 산 위에 임대아파트로 들어갔다. 법률상담을 해 주기 위해 찾아갔다. 어둠침침한 방에는 해골 같이 바짝 마른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힘들게 일어나려는 그를 말리면서 그냥 눕게 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른팔이 마비되고 오른 다리도 움직이지 않아요. 당뇨증세가 있어 밤이면 발이 저리고 눈도 점점 안보이는 것 같아요. 의사가 삶이 십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었는데 금세 육개월이 지나가 버리더라구요. 그러더니 이제는 의사가 얼마 안 있으면 죽는다고 준비를 하래요.”

이미 그는 반쯤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 몸을 내가 마음대로 못하니까 정말 갑갑해요. 몸에 힘이 빠져서 하루에 열 여덟시간은 멀건히 누워있어야 해요. 며칠 전 여섯 달 만에 목욕을 했어요. 봉사하는 분들이 와서 근처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씻겨주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깍아 줬어요. 몸에서 살비듬이 얼마나 많이 떨어지는지 곧 죽게 되면 그렇게 되나 봐요.”

그는 병과 고독 절망 그리고 죽음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는 무엇으로 남은 시간을 살까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인간은 어떤 순간에도 희망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나는 기어서라도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인근의 중학교 급식반에서 가져다주는 누룽지를 끓여먹을 수 있어요. 

전신마비가 된 사람에 비하면 나는 감사하고 행복한 거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마지막까지 음악과 춤이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감사와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빵을 한 개 더 받아 매트리스에 숨겨놓은 사람은 눈길을 걸으면서도 행복했다. 

나는 그의 다음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저한테도 보호자가 있어요. 임대아파트 옆집에 사는 언어장애 지체장애자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데리고 가 줘요. 

그런데 그 장애자가 나보다 훨씬 기구한 운명을 가진 불쌍한 사람이예요.”

“왜요?”

내가 되물었다.

“건강하고 멀쩡한 분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아리랑치기’한테 당한 거예요. 왜 밤에 골목에 숨어 있다가 벽돌로 지나가는 사람 뒷통수를 치고 지갑을 가져가는 놈들 있잖아요? 뇌를 다쳐서 언어장애가 생긴 거죠. 그런데 그 후에 다시 봉고트럭에 치여서 지체 장애까지 됐어요. 일을 할 수 없게 되니까 가난해져서 여기 임대아파트로 흘러들어온 거죠. 그 분이 다행히 정신은 멀쩡해서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가 줘요.”

불행도 빛깔과 질감이 다 다르다. 

그런 속에서도 말하지 못하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는 죽어가는 이웃을 돕고 있었다. 법률상담을 끝낸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저녁이 오면 밤이 오듯이 죽음도 그런거잖아요? 겁나지 않아요. 삶의 종착역에 오니까 오히려 꾸밈이 없고 정직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예정된 날짜에 정확히 죽었다. 그러나 그건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 같기도 했다. 나의 ‘변호사일지’에는 더러 그렇게 흰 손으로 적힌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철학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