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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전문 변호사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4. 6. 19:19





언론 전문 변호사 - 상익 변호사 에세이 



법원이 있는 지하철역 벽과 기둥에는 변호사를 광고하는 선전물이 가득하다. 연출된 모습으로 찍은 사진들 아래 전문분야를 써넣고 광고속 사진마다 ‘나를 선택해 주세요’라고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은 진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십여년전 대한변협의 상임이사와 신문 편집인으로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매주 전문변호사로 인증해달라는 신청을 심사하는 자리에 참석했었다. 한두개 사건을 처리하고 전문으로 인증해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대한변협신문 편집인이었던 나는 전문 분야별로 ‘진짜 변호사’를 발굴해서 인터뷰기사를 신문에 냈다. 최고의 언론전문변호사로 알려진 사람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언론에 나오기 위해 비위를 맞추는데 비해 그는 반대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기자들은 그 변호사를 ‘공공의 적’이라고 불렀다. 차분한 선비같은 모습의 그는 변호사가 된 동기부터 말했다.

“삼백명의 사법연수생 중에서 변호사를 지망한 사람이 딱 두 명 있었어요. 그중의 하나가 접니다. 그 무렵 부천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이 있었어요. YMCA에 갔다가 거기 있는 사건자료를 우연히 봤죠.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권력이 저지르는 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고 검찰은 그걸 은폐 조작해 주고 법원은 뻔히 보면서도 못 본 척 하는 세상이었어요. 그걸 보고 판검사가 되는게 나의 길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죠. 물론 실무를 배우기 위해 잠시 검찰청이나 법원을 돌 때 턱없는 사회적 대접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요.”

그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애초 다른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빌딩 구석방을 빌려 변호사 개업을 했어요. 이십대 중반의 새파란 놈이라고 아예 변호사 취급도 하지 않더라구요. 가까운 사람들조차 사건을 맡기지 않았죠. 나는 시국사건을 하는 변호사를 찾아가 보조하겠다고 하면서 글도 쓰고 일을 배웠죠. 그러면서 내가 어떤 변호사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했죠. 그 무렵 권력기관에 대한 사법적 감시는 어느 정도 되어 가는데 언론의 태도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그대로인 거예요. 그 무렵 아침 신문 톱기사로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 보도됐어요. 그런데 그 제목 중에 ‘문씨,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나와 있는 거예요. 언론의 힘이 대단했어요. 사건들이 정식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언론재판을 받아 낙인이 찍히면 후에 무죄가 나와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언론이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보도하는데 걸리면 뼈도 못추려요. 특정언론은 자기들이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그 힘을 과시하기도 하구요. 우연히 문목사 방북사건의 진실을 알게 됐어요. 기자들이 구속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니까 문목사가 ‘나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다’라고 했어요. 그걸 그렇게 비틀어서 악의적으로 제목을 붙인 거죠. 그런 언론권력에 대항해서 시민편에 선 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언론의 미움을 받아 피해는 없었어요?”

내가 물었다. 현실에서 방송의 악의적인 한마디 신문의 한 줄이라도 있으면 변호사는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게 된다.

“있었죠. 우선 저의 의뢰인에게 다시 보도하겠다고 겁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보복당할까봐 무서워서 소송을 철회하곤 했죠. 대리인인 저도 당했죠. 기자가 세무서에 가서 제 세무자료를 뽑아 신용카드 내역을 조사하는 거예요. 룸쌀롱이나 골프장을 갔나 다른 비리가 없나 확인하는 거죠.

뒷조사는 물론이고 모략도 있었어요. 한번은 검찰에 있는 친구가 내게 와서 통장을 한번 보자고 해요. 그래서 마이너스 통장을 보여줬더니 ‘그러면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라구요. 그때 내가 대학교수의 언론소송을 맡았는데 상대방 언론사 기자가 부장검사를 찾아가 내가 되지도 않을 소송에 그 교수한테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다고 얘기하더랍니다.”

그는 자기의 길을 가는 ‘언론전문변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변호사의 돈에 대한 철학이 그를 결정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변호사가 돈만 밝힌다는 게 세상의 인식인 것 같아요. 자기가 땀흘린 만큼 의뢰인에게 만족을 준 만큼만 돈을 받으면 될 것 같아요. 주면 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당당하려면 세금에 신경 써야 합니다. 뒷조사를 받아보니까 알 것 같아요.”

진짜 전문변호사가 되려면 나름대로 불가마를 통과 해야 될 것 같았다. 며칠 전 서울에 올라갔다가 교대부근 지하철역에서 그를 보았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 쓴 채 두툼한 코트 차림으로 묵직한 서류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기둥이나 대들보는 아니더라도 법치의 지붕을 만들어 주는 그런 석가래 같은 존재들이 더 소중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