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전북중앙신문신춘문예 당선작
보(褓) - 박능숙
친정 어머니가 보퉁이로 이고 오시는 봇짐 속에는 잘 익은 알밤과 물 좋은 삼천포 바다가 넘실거린다. 그런 날 저녁 우리 집 주방의 전등불도 덩달아 빛이 환하다.
평소 허리가 결리고 아프다며 그 부위에 찜질이며 파스를 붙이시는 어머니다. 그런데 무거운 보퉁이를 이고 오실 때만은 아픈 기색이라곤 전혀 없어 보인다. 보퉁이가 어깨와 결리는 허리를 쓰다듬는 묘약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보퉁이가 신기한 치료효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믿는다. 그냥 나들이 삼아 가볍게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드리지 못하는 이유도 그 보퉁이에 담긴 나만이 믿는 어떤 치료효과 같은 것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 봄이 오고 가을이 오는 소식을 나는 어머니의 보퉁이에서 매번 읽는다. 싱싱한 도다리를 이고 오실 때는 어김없이 봄이다. 오곡이 주르르 쏟아져 나오는 보퉁이에서 가을을 보는 맛에 나는 언제쯤 어머니가 오실 때라며 늦은 가을 해를 철없이 기다리기도 했었다.
언젠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시외버스정류소로 마중을 나갔었다. 그곳에서 보퉁이를 이고 든 어머니 또래의 아낙네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그 그림 속에 혹 어머니가 끼어 있을 거라며 나는 줄곧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름진 아낙네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어머니였다. 어디로 가는 누구의 어머니든 우리 어머니들은 보퉁이가 무거운 줄도 모르고 머리에 인다. 나는 그 보퉁이에 든 것을 대강 짐작한다. 남새밭의 호박이며 무 배추 마늘 같은 것을 차곡차곡 포개 묶었을 것이다. 알밤과 콩, 탐스럽게 익은 과일이며 참깨 주머니도 소담스레 들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낯선 새댁은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의 어머니를 보자 어린애처럼 뛰어가 매달렸다. 딸에게 커다란 보퉁이를 넘긴 아낙은 조심하라면서 몇 번이고 당부를 했다. 새댁은 끙끙대며 보퉁이를 앞으로 껴안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버스터미널의 흐뭇한 정경이었다.
친정 어머니가 이고 오시는 보따리를 나는 굳이 보퉁이라고 말한다. 좀 투박하기는 하지만 보퉁이라야만 어울릴 것 같은 듬직한 무게와 정이 있는 것 같다. 약간은 구질구질하지만 믿음직스런 것이 우리 어머니의 보퉁이다.
그런데 보따리는 왠지 가볍다. 야반도주를 하는 여인이 옆구리에 낀 보따리 속에는 몇 가지의 입성이 슬픔처럼 개켜 있는 듯했다. 어둠을 틈타 마을을 떠났다는 어떤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보따리처럼 가벼운 인생과 이별이라는 말로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달랑거리는 인상을 주는 것이 보따리였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떼를 쓴다는 야박한 인심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래 된 일이다. 치맛자락을 할랑거리며 색상이 고운 보따리를 든 젊은 여인이 아버지를 따라 집에 들어섰다. 바깥바람이 잦았던 아버지는 어디서 어떻게 만난 여인을 아마 소실로 삼고자 하셨던 것 같다. 여인에게서는 내가 그때까지 맡아보지 못한 짙은 분내가 풍겨 나왔다. 모처럼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였지만 혹처럼 매달린 젊은 여인 때문에 집안의 공기는 갑자기 팽팽해졌다. 누가 어줍잖은 말이라도 하는 날엔 죄 없는 밥그릇이 팽그르르 마당으로 구를 듯 아슬아슬했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태연하셨다. 일부러 태연함을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머리에 곱게 동백기름을 발라가며 윤이 반질거리는 가르마를 타셨다. 그 가르마가 어머니의 곧고 푸른 마음을 나타내는 듯했다. 한 치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서슬을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나는 짐작하고 있었지 싶다.
어머니의 가르마에 주눅이 들었을까. 며칠 뒤 젊은 여인은 들고 왔던 보따리를 달랑 챙겨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허리를 숙이고는 대문을 나섰다. 세상에 둘도 없을 훌륭한 분을 부인으로 두셨으니 앞으로는 바깥으로 눈을 돌리지 말라는 당부를 아버지에게 하곤 떠났다.
그때 만약 어머니가 보따리를 쌌더라면 하고 벼랑 끝 같은 생각을 하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팔랑거리는 치맛자락 같은 보따리에 전혀 눈을 팔지 않으셨다. 그 팔랑거림 속에는 역겨운 분내가 스며 있을 것이라고 속으로 단호하게 손사래를 치고 계셨을 것이다. 어린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눈매를 그 얇은 보따리 조각으로 싸맬 생각이 전혀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끔찍스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마음으로 단단히 스스로를 꾸짖고 계셨을 것이다.
보퉁이를 뜻하는 보(褓)는 흔히 복(福)이라고들 한다. 관혼상제나 예단 보자기에 복을 수놓아 복을 비는 마음으로 고이 여몄을 것이다. 복을 보자기에 고이 싸서 보내니 복되게 살기를 비는 마음이 들어 있을 것임은 틀림없다.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아랫목의 상보는 자투리조각을 색상별로 짜 맞춘 아름다운 조각 보자기였다. 그 상보를 생각할 때마다 밤이 늦도록 아버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묵직한 보퉁이를 이고 오셨다. 그 보퉁이를 끌러보다가 둥글게 보이는 보퉁이가 태반 같 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태반 속에 태아 적의 내가 들어 있다고 나는 약간은 떨리는 손으로 보퉁이를 끌렀다. 태 밖으로 빠져나간 딸을 생각하면서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던 가을바다를 머리로 이고 오신 것이다.
풀어헤친 보퉁이 속에는 고향 앞 바다의 잔잔한 물결소리가 양수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약력]
*1961년 경남 삼천포 출생
*진주산업대학 졸업
*김유정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부산동서문학회 회원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적소리 - 조미정 (0) | 2015.04.29 |
---|---|
피아노와 플루트 - 강현자 (0) | 2015.04.28 |
오카리나 - 김성구 (0) | 2015.04.23 |
충견 이야기 - 고정숙 (0) | 2015.04.21 |
해바라기 - 유진오 (0) | 2015.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