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 이야기 - 고정숙
어느 날 우연히 TV를 켜자 세발로 걷는 진돗개 검순이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진도항에서 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오지 섬 옥도. 이곳에 마을의 이장인 김판옥, 김옥자 부부가 키우는 흑빛의 진도견 검순이 이야기였다.
검순이는 어릴 적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으나 언제 어디서나 이장 부부를 세 다리로 따라다니며 말벗이 되고 위안이 되어주며 동네 어르신들이 밤길을 갈 때면 집까지 바래다주고 올 만큼 영리하니 자식 같은 검순이는 옥도의 귀염둥이 노릇을 한다고 한다. 이장님 부부가 검순이 의족 제작 문제로 옥신각신하는데 검순이의 미래를 위해서 의족을 해주자고 제안을 하지만 부인은 지금도 세 발로 잘 걷고 생활하고 있는데 의족을 하면 검순이가 더 스트레스 받을 것을 걱정하다가 동물병원에서 의족을 해도 된다는 말에 의족을 해주게 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충견 이야기라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1호로 지정되어있는 임실군 오수면 의견비가 있다. 의견 비에 나오는 김개인이라는 인물은 신라시대 때, 이곳 영천에 살았던 사람이다. 임실 오수에 있는 의견비에 대해서 고려 고종 때 최자((崔滋) : 1188∼1260)의『보한집(補閑集)에 우리나라 역사상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의견(義犬)이라고 한다.
이야기인즉슨 김개인(金鎧仁)은 충직하고 총명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동네잔치를 다녀오던 그는 술에 취해 들 풀밭에서 잠들었는데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그가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 불이 계속 번져 오는데도 주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 위를 뒹굴어 불을 끄려 했다. 들불이 주인에게 닿지 않도록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개는 지쳐 죽고 주인은 살았다고 한다.
김개인은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를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는데 나중에 이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랐다고 하며 훗날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를 합하여 이 고장의 이름을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아이러니한 사실로 충견(忠犬)의 상징인 '오수의견' 기념비 옆에서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신포집(보신탕집)이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모여들고 있어 화제다. 한자리에서만 60년 동안 보신탕을 3대(代)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직 모 대통령이 의견비를 보고 지나다가 이 신포집에 들러 보신탕을 먹게 된 이야기도 있다. ‘충견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한 보신탕집이 충견비 바로 앞에 있는 것은 정서상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라는 사담이 오가다가 ‘오수 의견비를 찾아오면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보신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지 않느냐’ 해서 사람들이 예전보다 보신탕집을 더 자주 찾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다.
주인을 잘 따르는 개 이야기를 듣고 보다보니 수십 년도 훨씬 지난 어릴 때의 일이 떠오른다. 어린 잿빛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쥐도 많아서 쥐약을 놓던 때였다. 쥐약 놓은 것을 먹었는지 캑캑 거리고 훌훌 뛰어서 황급히 구정물을 먹였으나 강아지는 마루 밑으로 들어가 눈에 파란 불을 켜고 낑낑대고 있는 것이었다. 시골집 마루는 낮아서 겨우 기어들어갈 만한 공간이었는데 그 안에서 죽으면 벌레가 끼고 냄새가 난다고 할머니께서 끄집어 내오셨다. 나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강아지를 끌어안고 병원에까지 가봤지만 그 때는 동물병원이 없었던 때 인지라 다른 처방이 없었다. 그렇게 끌어안고 지내기를 몇 날 후 겨우 살아난 강아지는 내가 보살펴 준 은혜를 아는지 나만 따르게 되었다. 몇 달 후 외갓집에 가서 오랫동안 지내다 오니 큰 개가 되어 있었다. 반가워서 재둥아 하고 불렀더니 처음에는 고개를 꺄웃 거리다가 드디어 눈을 반짝이며 펄쩍 펄쩍 뛰면서 달려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 킁킁대고 나를 찾아서 입던 옷을 가져다주면 냄새 맡고 꼬리를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의견비가 있는 곳에 보신탕집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기르던 개, 돼지, 닭을 기르다가 잡아서 먹을거리로 삼고 있는 일이다. 우리 집도 다를 바 없어서 할아버지 몸보신 해드린다고 재둥이를 잡았다. 절대 그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건만 도마위에 놓여있는 고기를 보자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벌써 반세기도 지난 이야기이다.
어느 짐승보다도 살갑게 사람을 잘 따르는 개가 죽어서까지도 우리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있는 동물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보신탕을 즐겨찾지만 식용으로 사용하는 식용견과 요즘같이 반려견이라는 칭호를 쓰면서 자식처럼 집안에서 옷도 입히고 안고 다니며 키우는 애견하고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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