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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라도 해야 ....

Joyfule 2006. 2. 2. 00:45

부득이라도 해야: 고린도전서 9:16~18 
16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찌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는 바울처럼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누구나 성령 받고 성령 받은 사람은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점에서 바울의 생활원리는 
우리도 공히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1. 바울은 전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12절).
바울은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데리고 다니면 복음 전하는데 많은 제한을 받을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또한 사도로서 자기의 생활비를 요청할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11- 15절). 
그것이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데 지장이 된다면 
아무리 당연한 권리라 할지라도 스스럼없이 포기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전도는 고사하고 자기가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왜 가족 앞에 부담 없이 예수 믿으라고 말하지 못합니까? 
왜 직장 동료들에게 거리낌없이 전도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이 전도하기 전에 주님께 해결해 달라고 
간구해야 할 장애요인 입니다. 
2. 바울은 아무리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해도 
자랑할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정을 포기한 것도, 
무보수로 평생 전도를 한 것도, 
심지어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한 것도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맡은 일이기 때문입니다(16절). 
2)자원해서 맡은 일이 아니라 강제로 
‘직분을’ 맡았기 때문입니다(17절). 
「직분」이라는 말은 청지기의 책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당시 청지기는 노예 출신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이면 가리지 않고 무조건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헌신적으로 일을 잘 하였다 할지라도 
칭찬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눅 17:7-10).
바울은 어떤 면에서 베드로나 요한처럼 자진해서 
모든 것을 내버리고 예수를 좇지 못한데 대해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충성하려고 
애쓰면서도 언제나 무익한 종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더 가까운 사람들인가요? 
아마도 대개가 바울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랑하지 맙시다. 
다만 무익한 종이 시킨 일을 한 것 뿐이라고 고백합시다. 
3. 바울은 전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임으로 
부득이라도 전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16절).
노예제도가 일반화 되어 있던 당시 청지기가 명령 받은 일을 
게을리하면 무서운 화를 당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래서 그는 생명을 걸고 전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 전하지 않으면 
두 가지 화를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는, 사후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절대로 칭찬 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매를 맞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눅 12:47-48). 
또 하나는, 현실적으로 당하는 화입니다. 
우리 사회가 황금만능주의 노예가 되어 
모든 가치평가가 돈으로 이루어진다면 무슨 재주로 
이 화를 막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철저한 이기주의, 개인주의의 사고 속에 자랄 때 
그들을 장차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덕, 상도덕, 정치윤리의 타락 때문에 
우리가 입게 될 피해를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부득이라도 예수 전하지 않으면 새사람 만드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이 사회의 건강과 장래는 보장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부득이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4. 바울은 복음을 값없이 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18절).
「값없이」란 말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필요한 희생을 치루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야 복음은 복음답게 증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대가 없이, 손해 보면서, 비방을 받으면서 
심지어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행 20:24).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요, 
오늘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를 살려 놓으신 이유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낌없이 헌신하겠다고 하는 
여기에 바로 우리의 삶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적과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대가 없이, 손해 보면서, 비방을 받으면서 
심지어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전할 수 있도록 하소서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