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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아픈 결과를 받아들이는 두 부류의 사람

Joyfule 2019. 8. 25. 08:19



 
    뼈 아픈 결과를 받아들이는 두 부류의 사람


살아가다 보면 기쁜 일과 슬픈 일,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며, 씨줄과 날줄로 옷감을 짜지는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이 인생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말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순종하는 자녀에게는 구원과 더불어 행복이 덤으로 주어지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고 우습게 여기는 자들에게는 불행과 저주가 삶의 대가로 지불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교회마당을 성실하게 밟고 있는 우리네 교인들은 행복을 누리며 기쁘고 즐거운 삶을 구가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크리스천이라도 하나님의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차가운 현실이다. 그러나 아무도 왜 그런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 없다. 목회자의 멱살을 붙들고, 왜 사기를 치고 있냐고 다그쳐봤자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뿐일 것이다. 그래서 금부도사가 가져온 사약을 받아들고 누명을 쓴 억울함에 대해 하소연조차 못하고, 임금이 살고 있는 서울을 향하여 큰절을 하고 난 뒤 벌컥벌컥 들이마셔야 하는 조선시대의 사대부처럼, 인생의 불행과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 그게 인생이라고 말하며 위안을 삼아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 싶다. 필자의 인생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인생의 괴리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뭐 목회자들의 인생도 별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십여 년 가까이 기도를 하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느끼는 것은, 성경말씀이 하나도 틀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틀리지 않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기존 교회에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각종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잘 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형통한 삶이 주어질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듯이, 영성학교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고 있다면 형통한 인생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라고 가르치며 혹독한 훈련을 하고 있다. 그래서 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며 공동체 식구로 남아 있기로 결심한 이들이 백여 명이 넘는다. 그들은 날마다 필자의 혹독한 기도훈련에 대한 코칭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영성학교를 부지런히 오가야 한다. 그래서 죄다 형통한 인생을 선물로 받았는가? 뭐 그런 식구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필자에게도 책임이 있기에, 왜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에 장밋빛 카펫을 깔아주지 않으시는 지에 대해 날카롭게 관찰하게 된다. 그 원인은 필자가 예상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하나님이 인생을 만족스럽게 해주시기에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이 성적표를 본인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기존의 교회 목회자들과 필자와 확연히 다르다. 필자는 아주 큼직한 돌멩이를 사정없이 집어던진다. 그 돌멩이를 정통으로 맞은 사람들은 무척이나 뼈아파한다. 그렇잖아도 비참한 결과에 위로와 격려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데, 목회자의 비난과 질책을 듣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며, 그것도 다른 공동체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당하는 것은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일이다. 아마 성인이 되고 나서 고통스러운 일을 겪어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울 영성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흔한 일상일 뿐이다. 영성학교는 정예용사를 배출하는 군사학교이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공동체 식구들에게, 필자는 피도 눈물도 없다며, 위로와 격려를 바랄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왜냐면 지금까지 필자가 말해온 신앙성적표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성학교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의 가르침이 성경적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면 그간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것일 테고, 필자의 훈련이 비성경적이고 제 멋대로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성학교에서 도망쳐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18:1~8)

 

위의 예수님의 비유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시작하고,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로 끝마치고 있다. 말하자면 기도하면서 결과에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은 죄다 믿음이 없다는 결론인 셈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자신이 하나님의 믿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신앙성적표가 실망스럽다면 하나님의 눈에 차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행위나 기도행위를 스스로 평가하여,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왜 자신이 이런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원망하고 억울해하며 불평하고 낙담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들일 믿음이 없다고 판정을 받고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될 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러 재림주로 오실 때, 이 땅에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언을 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것이다. 이 예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현재 당신의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시면 된다. 그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행위를 열정적으로 해왔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평가와는 다르게, 현재의 삶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실망스런 신앙성적표에 대한 마음의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며 그의 판단이 언제나 옳으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기도는 하지만 낙심과 실망의 불신앙으로 하나님께 대들고 있는 악한 종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시험이라는 말은 테스트라는 뜻이다. 당신의 믿음이 하나님의 테스트에서 부족함을 보였다는 게 시험에 들었다는 성경의 의미이다. 그래도 억울하고 슬퍼해 하며, 자신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를 회개할 생각이 없다면 예수를 그만 믿으시라. 어차피 지옥에 던져질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