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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Joyfule 2019. 12. 14. 23:46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회학적 모델: 바리새인의 정체성 확인을 위한 질문들.

요세푸스가 제시한 세 철학파―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중에 바리새인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의 것들이다: 유대주의의 한 종파, 강력한 종교 지도자 집단, 정치적 지도자 집단, 학식 있는 학자 집단, 제사장과 경쟁하는 평신도 운동, 도시 자영업의 중산층, 혹은 이러한 것들의 혼합. 일반적으로 바리새인에 대한 이해는 예루살렘의 정치 세력과 신앙 생활에 관련되고, 그리고 도서관의 기록물을 남기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바리새인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 토대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찰에 요구된다. 단지 그들의 신념체계에 기초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요소들과 관심사에 기초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들의 사회적 정체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바리새인은 어느 사회 계층에서 기원했는가; 유대인 사회에서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회적 신분을 누렸는가; 다른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경험을 하였는가; 백성들과 다른 지도자 집단에 어떤 권위와 영향력을 발휘했는가; 유대인 사회에서 어느 정도로 중요했는가;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 정치력 영향력을 발휘했는가; 자신들과 유대인 사회를 향한 그들의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유대인 사회를 위하여 어떤 프로그램을 제시했는가?
위에 언급된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내적인 면에 대한 단서를 제시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구성원으로 어떤 조직을 지녔는가; 회원은 어떻게 정의되었는가; 어떤 신념, 사상, 그리고 규칙이 공동

 

생활을 지배했는가?

문학적 및 역사적 분석과 관련된 사회학적 방법론의 활용은 적절한 상황에 증거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배적이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용어 정의

연구에 필요한 일부의 용어들에 국한하여 정의하고자 한다. 특히 사회학적 용어들과 유대주의 연구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을 제시한다.


유대교(Judai는)와 유대주의(Judaism)

일반적으로 "유대교"라고 불리는 용어는 하부의 모든 다양성을 포함한 총체적 종교를 언급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최근에 일부 학자들은 "Judaism"을 독립적인 유대인의 종교 체제를 의미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래서 하나 이상의 체제를 말할 때는 "Judaisms"이라 한다. 따라서 연구자는 총체적인 유대인의 종교 체제들을 부를 때는 유대교(Judaisms)라 하고, 특정의 한 종교 체제를 말할 때는 "유대주의"(Judaism)이라고 부를 것이다.

"종파"
요세푸스는 헬라어 사용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sect/hairesi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팔레스틴의 유대인 사회를 세 학파(school)로 구분한다: 사두개인, 바리새인, 그리고 에세네파. 이 용어에 대한 코헨 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종파"를 좀더 큰 종교적 집단으로부터 이탈하고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때문에 좀더 큰 집단의 이상을 자신들만이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규모의 조직된 집단으로 정의한다. 종파의 수준을 넘게되면 독립된 종교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부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종파에서 성장한 기독교와 바리새 종파에서 성장한 랍비 유대교다.


"바리새인" 그리고 "바리새주의"(Pharisaism)
반-유대적 기독교 신학의 관점의 관점에 반대하여 노이스너는 힐렐의 경구를 들어 바리새인에 대한 개념을 전환시킨다: "당신에게 혐오스런 것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그것이 토라의 전부다. 나머지 모든 것은 주석이다. 자, 가서 배우라." 그리고 "만일 내가 내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그러나 내가 내 자신을 위할 때,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그렇다면 바리새인은 위선자, 형식주의자 혹은 자기-의 사람이 아니다. M. 스미쓰는 바리새주의를 고대 문명의 관점에서 바리새주의는 유대교 철학안에서 한 분파라고 한다.


사회학적 분석을 통한 역사적 바리새인 이해

앞서 언급하였듯이, 바리새인에 대한 문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 요세푸스의 문헌; 둘째, 신약성서의 기록; 셋째, 랍비 문헌. 이러한 자료들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바리새인에 대한 역사적 재구축보다 선행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헌들을 다루는 방법에 공헌한 학자들의 조언에 귀기울여야 한다. 스미쓰(M. Smith)는 요세푸스 문헌을 다루는 단서를 제공하고, 쿡(M. J. Cook)은 예수 시대에 유대주의의 다양성에 관한 복음서들의 증거의 타당성에 관한 흥미로운 논증을 제시했다. 비슷하게 노이스너(J. Neusner)는 랍비 문헌을 연구하는 길을 제시했다. 이제 이 문헌들을 차례대로 고찰하고자 한다.


요세푸스의 바리새인

로마에서 기록된 요세푸스의 네 작품들은 고대로부터 전수되어 왔다: [유대인 전쟁사], [유대인 고대사][생애], 그리고 [아피온에 대항하여]. [유대인 전쟁사]는 처음에 아람어로 기록되었는데, 그 목적은 파르티아 제국(Parthian Empire)의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의 함락을 두고 로마를 비난하지 않도록 호소하려는 것이었다. 요세푸스는 그 결과가 유대인 자신의 그릇된 행위의 결과로 주장한다. 또한 그의 의도는 로마인들의 팔레스틴 행정과 전쟁 행위를 방어하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어 A.D. 75년과 79년간에 발행되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A.D. 93-94에 그는 A.D. 70년에 이르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다루는 [유대인 고대사]를 발행했다. A.D. 100년 후에 [생애]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피온에 대항하여]를 썼다. 요세푸스의 문헌에는 "바리새인"이 20회 정도 언급되는데, 그러한 언급은 유대인 사회에서 소극적 역할을 반영한다.

헤롯이 죽고 그의 아들 아르켈라오가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팔레스틴 사람들은 반로마 운동으로 그 지역의 무질서를 야기시켰는데, 이것은 주로 다양한 정치적이고 메시아적 유대인들에 의해서 지시되었다. 아르칼레오의 폭정으로 유대인들과 사마리안들은 그를 제거할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그 지역은 6CE-66 동안 로마 총독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첫 총독인 코포니우스의 치하에서 갈릴리 사람 유다는 로마에 세금을 거부하면서 오직 하나님 만의 통치를 주장했다. 그의 반로마운동이 특이한 점은 그가 넷째 철학파의 교사이고 창시자라는 점이다. 그는 바리새인 사독의 도움을 받아서 백성들도 반로마운동에 동참케 했다. 요세푸스는 이 사건을 들어 혁신과 개혁은 위험한 것이고, 또한 유대인의 정치를 파괴하는 것임을 경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운동은 유대주의 세 학파와는 공통점이 없다고 덧붙인다. 그렇지만 관련은 있다고 제시한 듯하다.


[유대인 전쟁사]의 바리새인

바리새인은 [유대인 전쟁사]의 세 주요 구절에 나온다. 바리새인들은 알렉산드리아 살로메의 통치 때에 갑자스럽게 지배적 새력으로 등장한다. 후에 그들은 헤롯의 궁정의 일과 과련하여 언급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리새인들은 중요한 관심을 받는다.
바리새인과 알렉산드라 살로메 (1권, 107-114): 바리새인들은 종교와 율법을 가르치는 분야에서 "탁월하기" 제시된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친 신앙의 내용이나 율법의 내용은 묘사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은 왕비의 신앙을 강조하고, 그녀의 신뢰를 이용하고, 점차적으로 권력을 잡는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 권력을 사용한다. 그들은 반대자들을 숙청하는 과오를 범한다.


헤롯의 궁정에서 (1권, 571): 바리새인들은 다른 정치 당파처럼 한 당파를 지지하고 다른 당파를 반대하도록 매수되었다.
철학파 (2권, 162-166) :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에서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에세네파를 순서대로 다루는데, 에세네파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다루는 이유는 그들의 생활 양식이 정치적 위협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로마인들과 동양 철학자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세 철학파의 철학적 및 신학적 논제에 대한 신념들인 운명(신의 섭리), 자유 의지와 인간의 책임, 상벌을 동반한 불멸 등의 대조된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상호 관련성 및 다른 학파들과의 관련성이 대조된다.

여기서 요세푸스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을 칭찬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다. 요세푸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신학적 그리고 철학적 차이를 밝히지만, 그들의 입장에 대한 논평을 하지는 않는다. 바리새인들은 내적인 사회적 관계와 공적으로 조화로운 관계를 육성한다. 요세푸스는 신념과 관련하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행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유대인 고대사]의 바리새인

이 책에서 바리새인은 매우 지배적이다. 이제 요세푸스가 말하려는 것은 바리새인의 도움 없이는 국가가 통치될 수 없다는 것이고, 자신도 그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유대인 고대사], 13권: [고대사], 13권에서 처음으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에세네파가 소개되는데, 그 목적은 헬라 세계에서 유대주의의 지위를 확립하려는 것이다.
[고대사], 18권: 요세푸스는 집단과 철학파로서 바리새인의 신념과 행위를 자세하게 제시한다.

요세푸스는 행위에 근거하여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을 칭찬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단지 그들의 세력과 영향력을 언급한다. 그의 의도는 전통적인 유대인의 사고 방식이 헬라 철학만큼 존중될 수 있고 혁신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70년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여 바리새인에 대해 요세푸스가 과장을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생애]
자신의 인격에 대한 공격의 답변으로 그리고 [고대사]의 부록으로 기록된 [생애]에서, 요세푸스는 몇 집단에서의 3년간의 훈련과 19살 때 스토아학파와 유사점을 가진 바누스의 제자가 되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말한다. 일반적으로 바리새인은 12개월간의 훈련을 요구했고, 사두개인에 대한 정보는 없고, 그리고 에세네파는 긴 견습 기간을 부과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자면, 요세푸스가 바리새주의, 에세네주의, 그리고 사두개주의를 연구하기 위하여 상당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종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요세푸스의 증거는 서로 관련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가 말하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코헨은 요세푸스가 자신을 바리새인과의 동일시한 것이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라작(Rajak)은 바누스가 광야에서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집단을 인도했을 것이라고 명시한다. 그렇다면 요세푸스가 바리새인을 선택한 것은 혁명에 대한 반대였을 것이고 제국과의 조정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노이스너는 요세푸스의 이야기를 토대로 바리새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추정한다:
일부 바리새인들은 중요한 정치가로서 전쟁을 지휘하거나 전장터의 지휘관을 세우거나 제거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그들은 고위직을 누렸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경험과 상당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요약
이상 고찰한 내용을 요약하겠다. 요세푸스는 팔레스틴의 지배력의 전환에 따라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세력과 영향력을 위한 정치적 및 사회적 경쟁의 부분으로 다룬다. 바리새인들은 정치적 관심을 가진 집단이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조직된 자유 집단으로서 세력 확보에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렌스키가 말하는 가신 집단이었다.
바리새인들이 사회와 율법에 대해서 원하는 정확한 목적을 요세푸스는 서술하지 않는다. 하스몬니안 시대로부터 아르칼레오의 통치 시기까지 그들은 전통적이었고, 비혁명적 유대주의였다. 어떤 종류의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지라도, 그들은 강력한 후견인의 도움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그리고 상위 계층의 다른 집단들과 제휴했다.
요세푸스는 사두개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지배 계층의 일원이었다. 사두개인들이 촉진시킨 성서적 전통과 해석들은 지위와 지배 계층의 정치적 및 재정적 이익을 육성시켰다. 이것은 그들의 지지와 비대중성을 설명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술은 그들의 행동과 일치하지만, 결코 완전하지 않고 그들의 사상과 조직에 대해 일관적인 서술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