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따로, 기도 따로는 주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기도는 하는데 응답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성령을 받고 싶어 기도하는데 그게 잘 안돼서 마음이 힘들다고 합니다.
여러분~
귀한 손님을 맞이하려면 적어도 집 안 청소는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손님이 오신다면 집 안 청소는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주님을 모시려고 하는 분들이 마음의 청소는 하지않고 주님만 찾는다면
주님은 결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생각과 마음과 삶이 세상 이방인과 늘 같으면서 입술로만 주여주여 한다고 주님께서 화답하실까요?
기도 응답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런 분에게는 응답도 없을뿐더러 주님은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아서 주님을 모시지 못하고 평생을 은혜(성령님이 주시는) 없이
마른 가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너무 불행한 삶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님을 받으면, 은혜가 풍성한 포도나무 줄기에 접붙임 당한 것이기에
영원히 가지가 마르지 아니하고 넘치는 은혜와 하늘의 축복을 맛보면서
늘 물댄동산 같은 은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으로 믿는 자녀들은 그 은혜가 끊기는 게 죽는 것보다 두렵다는 걸 알기에
늘 물댄동산을 유지하고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과 연합이 되면 그 이후부터는 성령님의 견인을 받아 순종의 삶을 살지만
그 이전에는 내 의지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찾는 그 과정에서 세상 이방인과 같은 모습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생각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삶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여전히 삶은 바뀌지 않으면서 기도만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기도는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고, 그저 시간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들려주신...
둘째 아들이 이방인의 삶을 살고자 자기 몫을 챙겨 가출한 탕자를
그의 아버지는 집적 찾아 나서지 않으셨습니다.
찾아 오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가 반성하고 이방인의 삶을 내려놓고 스스로 아버지를 찾았을 때 두 팔 벌려서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은 둘째 아들은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18절-24절)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를 보십시오.
여전히 이방인과 같은 인격의 삶을 살면서 자신은 구원받았다 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 하고,입술로만 주여주여 율법적인 기도만 하면서 나는 주님의 자녀라고 하고 있습니다.
평소의 삶에서 나오는 열매는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아~ 몰라~ 몰라~ 복잡해~ 내 삶의 열매가 어떻든~
당신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성령으로 거듭났어~
성경에 그렇게 나왔으니 난 그렇게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믿음으로 의로워졌고 은혜로 구원받았어~ ................... ~~"
그건 육적 머리의 지식으로만 아는 하나님이고 믿음이고 은혜이고 구원일 뿐입니다.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님을 선물로 받기 전에는
그 누구도 주님의 사실적 생명과 인격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니다.
자기 자신의 추한 모습을 알게 하는 일도 내 안에 성령님이 오신 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조명으로 자신의 원래 모습이 확인되기 전에는 얼마나 비참하고 참람한지 아무도 모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남의 눈 속의 티는 기막히게 판단해도 내 눈 속의 들보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게 아주 제한된 사람의 인지 능력입니다.
하물며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주님을 이성적 지식으로만 알 수 있습니까?
아무리 맛있게 생긴 음식도 직접 맛을 봐야 그 맛을 알듯...
맛있게 생긴 음식만 보고 맛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냥 맛있을 것 같다고 하는 게 솔직한 겁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사실적이고 인격적으로 생명을 느껴야 주님의 속성을 실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안 보고 믿는 것이 진짜 믿음이란 말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
이 말씀을 내세워 성령으로 거듭남도 없이 자신은 안 보고도 믿는다고 합니다.
위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없는 분들은 절대 보지 않고는 믿지 않습니다.
설령, 눈으로 보아도 믿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이 그러하듯...
그래서 주님은 요나의 기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겁니다.
어차피 보여줘도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소용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거듭나지 못한)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9절)
문서 적 지식을 흡수하여 안다고 하는 증거와
성령님과 연합함으로 영적 실상으로 아는 증거의 차이는 매우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삶 자체가 기적의 연속이고,
감사의 연속이고,
기도의 연속이고,
체험의 연속이기에
굳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미 삶으로 그 증거를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과 사실적 역사로 연합된 주님의 자녀는
주님이 이미 내 안에 계셔서 나와 동행하는
주님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과 은혜를 성령님과의 인격적 연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을 인격적이고 사실적으로 영접했기에
보이지 않아도 당연히 주님을 믿게 되고 바라는 것이 실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합됨이 없이는 성령님의 조명 하심이 없기에 증거와 실상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지식적으로 공감만 할 뿐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인격적으로 실제 영입했을 때
주님의 자녀 됨을 알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포도나무 가지에 접붙임 당하려는 의욕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의욕만으로는 소용없습니다.
이 글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귀한 손님을 맞으려면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해야 합니다.
집안을 지저분하게 그대로 두는 것은 귀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을 받겠다는 분들은 적어도 주님에 대하여 최대한 예를 갖춰야 합니다.
삶은 여전하면서 성령을 달라고 기도만 하면 안 됩니다.
회개의 기도를 하면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해야합니다.
기도 따로, 삶 따로... 이 모습에 주님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지금 이방인과 다름없는 삶을 벗어나십시오.
남을 비판하고, 빈정거리고, 판단하고, 탐욕스럽고, 교만하고, 자만하고.....등등
이런 이방인의 속성을 멀리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즉,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무 아래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다고 맛있는 감이 내 입속에 저절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과 연합되기까지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예화로 비유하신 둘째 아들이 그러했듯...
그 둘째 아들의 삶이 바로 영적인 우리의 삶의 실제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오셔서 나를 견인하기 전까지는 내 삶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면서
갈급하고 애타는 심령으로 주님을 찾고, 두드리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은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포도나무 줄기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수분과 영양(은혜)를 한없이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게 오시면....
부족한 나를 본격적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짓게 하시고
연단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천국에 합당한 자녀로 개조해 가십니다.
그 이후부터는... 그저.... 아멘, 할렐루야 하면서 겸손히 순종하며 따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 모습이 가출했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와 주님을 기쁘게 한 둘째 아들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주님의 자녀 된 모습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고) (에베소서 2장 2절-5절)
랑별파파(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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