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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CEO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Joyfule 2007. 4. 26. 08:13


삼성 CEO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양과 질의 비중이 1:99도 안된다. 0:100 이 되어야 한다. 
10:90 이나 1:99 로 생각한다면 이것이 언젠가는 5:5로 간다. 
한쪽을 0으로 만들지 않는 한 절대로 안된다.” 
- 이 건 희 회장
- 1987년 46세로 회장 취임
- 1993년 신경영 선언 : 프랑크푸르트 선언 : 
“나부터 변해야 한다.” 
“ 처자식 빼고 다 바꾸자.” 
“양 위주의 경영을 버리고 질 위주로 가자”
“질만 높이면 양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 
* 현재 세계 1위: 19개 ⇒ 2010년 50개로 늘린다
- 질경영의 성과 : 1992년 매출 : 35조 7,000억 ⇒ 2004년 매출 135조 5,000억 (4배 증가)
- 이익 : 1700억 ⇒ 19조원 (112배 증가)
- 삼성전자 브랜드의 가치 : 세계 21위 125억 5,300만달러 (인터브랜드 컨설팅 업체)
- 1등주의 삼성 ⇒ 초 일류주의 삼성
소위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삼성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삼성의 세계-1등주의 연구’에서는 그 힘을 
이건희 회장의 ‘용인(用人)’에서 찾았다. 
“21세기에는 탁월한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이다.” 
2002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 사장단 50여명에게 던진 말이다. 
이 회장은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성패가 
‘핵심인재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이건희 회장이 요구하는 핵심인력은 미래를 움직일 천재를 의미했다. 
1만 2000명의 석·박사급 인재가 근무하는 삼성그룹이지만 
이 회장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삼성은 국적을 불문한 석·박사급 인재를 매년 1000명씩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모든 삼성인이 인간미·도덕성과 함께 한국인다운 예의범절, 
국제인의 에티켓을 갖추고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며 크게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강조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한 조건이다. 
‘기회경영’에 실패하면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지만, 
‘전략경영’의 실패로 신망을 잃으면 
회사의 생존조차 위험하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생각이다. 
1987년이었죠.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을 치른뒤 열흘뒤인 1987년12월1일 
셋째아들인 이건희(李健熙)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대권을 물려받기까지 21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점심시간에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업무를 보고 받았는데, 
이 자리에는 사돈인 홍진기(洪璡基) 회장과 이건희 부회장이 고정멤버로 배석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1978년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회장실 바로 옆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아버지의 스케줄에 맞춰 그림자처럼 수행했습니다. 
매일 용인에 있는 아버지 숙소로 가서 취침을 확인한 뒤에야 귀가했다고 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나고 
장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둘째아들 대신, 
좀더 멀리 내다보는 시각을 가진 셋째아들을 후계자로 선정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이건희 회장이지만, 
‘삼성그룹 회장’으로서 경영 스타일은 아버지와 판이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고, 인재관을 비롯한 몇가지 사항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외부의 우수인재를 선발하는 일이라면 아버지 못지않게 열심이지요. 
이건희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자율관리형 시간관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 전략을 구상하거나 거시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 이외에는 
삼성그룹의 대부분 사안을 전문경영인들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저로서는 다소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미’를 강조하는 조직관리에다, 
명백하게 듣기(listening)형 리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면시간도 불규칙합니다. 요즘엔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24시간 연속 깨어있기와 24시간 연속 수면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한남동 집에서 매년 수천 편의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지요. 
삼성 정보팀이 매일 올리는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에다, 
전세계에서 발간되는 최신 과학기술 잡지를 숙독합니다. 
휴대폰이든, 오디오든 웬만한 첨단 기기를 
직접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한가지 깊게 파고들어 사물의 본질을 캐내는 작업이 그의 취미입니다. 
그러다보니 상상력과 직관력이 커지게 마련입니다. 
미래의 경영이나 기술이 어떻게 변화할지 수(手)를 읽는데 
아무래도 유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삼성이 반도체나 LCD(액정표시장치)의 대형 투자를 할때는 모두 
이건희 회장이 결단을 내려주었습니다. 
상상력과 직관력으로 단련된 ‘동물적인 감각’이지요. 
‘동물적’이라고 한 것은 무슨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딱히 납득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대신 삼성그룹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업무는 모두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이나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맡기는 스타일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IMF체제 이후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도 
‘집중과 선택’이라는 밑그림만 던져놓고 단 한마디 말을 하지 않은채 
실무를 구조조정본부에 일임했습니다. 
“팔아야 한다고 판단되면 오너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팔아라”고 
분명한 방침을 내놨기 때문에 사장단들이 일을 처리하기가 수월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삼성과 빅딜 협상을 벌였던 다른 기업체 임원들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자기 판단에 따라 
협상조건을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을 보고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 자연히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숙하지요.
물론 1993년 신(新)경영 때는 당시 프랑크푸르트, LA 등지에서 평균 8시간 이상, 
최장 16시간짜리 회의를 잇따라 주재하며 3개월 동안 8500쪽 분량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보통 때는 열 마디를 듣고 열번 생각을 한 다음에 한 마디를 합니다. 
혹시 남에게 말을 걸더라도 
"왜" "왜" "왜"를 반복하면서 본질을 캐묻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력을 중시하다보니 
현실의 사업에 대한 감각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중소기업형 리더라면, 이건희 회장은 대기업형 리더다. 
이병철 회장은 직접 주3~4회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챙기고 지시했다. 
아마 이병철 회장이 계속 경영했다면 아마 
오늘날과 같은 삼성전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장들이 회장이 언제 갑자기 무슨 질문을 할까, 
어떻게 대답할까에만 신경쓰면서 
‘쫄아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나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권한위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다르다. 
소소한 일은 관여하지 않고 큰 줄기만 챙긴다. 
다만 큰 흐름을 잘못 짚으면 혼이 나는 것은 더 무섭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