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작가소개]
김종길(金宗吉: 1926 ~ ) 경북 안동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영문학자.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門)>이 당선되어 등단.
그의 시는 격렬한 감정이나 감상에 젖지 않으며,
일상적인 소재를 지성적이고 간결한 언어로써
절도 있게 형상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첫시집 <성탄제>(1969)이후 <하회에서>,<황사현상>,
평론집에 <시론>,<진실과 언어>,<시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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