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이 1분짜리 영접기도로 가능하다고?
우리네 교회의 가르침은 초딩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 중에서도 성령의 내주에 대한 주제는 점입가경이다. 우리네 교회는 영접기도에 동의만 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뭐, 성경에 그렇게 써 있다니까 믿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교회에 다니는 모든 교인들은 성령과 동행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성령이 누구신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는 이유를, 누가 말 좀 해주시라. 그래서 그런 의구심을 제기하면, 믿음이 없다는 돌 직구가 날아 들어온다. 그래서 모든 크리스천들은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거대한 착각에 직간접적으로 동의하고 침묵하면서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중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성령의 사람은 기적과 이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이 일으킨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영혼구원 사역을 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증명하여야 한다. 그게 성경적인 잣대이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눈을 가리고 맹목적으로 종교행위를 반복하는 이들이 우리네 교회에 널려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얼마 전 서울기도모임에 중국에서 목회는 하는 목회자가 오셨다. 그분 안에는 귀신이 창궐하였다. 정신질환과 각종 고질병으로 종합병원이 따로 없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귀신들이 큰 소리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분도 자신 안에 귀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성령이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사역에 그런 증거가 있었고, 평생 주의 종으로 헌신하였는데 성령이 없었다면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성령과 귀신이 한 몸에 동거할 수 있겠냐고 하니까, 말꼬리를 흐리면서 그게 자신이 궁금해 하고 있는 거라고 말문을 닫았다. 귀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이 하나님인데, 귀신과 하나님이 동거하고 있다고? 기가 막히는 일이다. 우리네 교회의 교단교리가 진리라고 못 박고 나니, 충돌하는 다른 성경말씀을 비틀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팩트로 드러나는 현상조차 에둘러 덮어버리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그 목사님의 손을 붙잡고 기도해주고 나서, 충주에 와서 기도훈련을 받아야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자, 왜 예수님은 한방에 귀신을 쫓아냈고 고질병을 치유했는데, 왜 쉰목사 당신은 그렇지 않느냐고 항변하였다. 그래서 필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라고 말이다. 아니, 자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고 믿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이 세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우리네 교회에 널려있다. 기이한 일이다. 그래서 성령과 동행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게,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뇌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2~14)
위의 구절이 최초로 성령이 임재하는 사건을 기록한 내용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예수님이 직접 뽑아서 3년 반동안 동고동락하면서 훈련시킨 제자들이고, 120여명의 제자들 역시 사도들과 다름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들이다. 그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들은 허다했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실망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들만은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서 전심으로 기도한 끝에 성령이 오셨다. 아무나 기도해서 성령이 오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간의 믿음으로 보시고 성령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행10:1~5)
위의 구절은 외국인 최초로 성령을 받은 고넬료에 대한 기록이다. 고넬료는 유대인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을 정복한 로마군대의 장교였다. 그런데 그는 식민지국가의 신인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었다. 이러한 행태는 그의 장래와 신분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상관과 동료는 물론 가족들까지 극구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백성을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기에 힘썼다. 성경에는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콕 집어서 밝히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을 주시기로 작정하고 베드로를 보내주신 것이다. 말하자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섬기며, 전심으로 기도하고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에게 성령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에서는 자의적으로 해석한 성경구절을 들이밀며, 영접기도행위에 동의하면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평생 인격적으로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영접기도행위를 하고나서, 하나님의 뜻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주인으로 받아들이며(영접) 사는 것인가? 그랬다면 하나님이 이를 인정해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인정해주신 증거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밝힌 성령의 사람들을 보라. 죄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성경을 멸시하고, 자신의 교단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신봉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이들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 지 예측하는 게 어렵지 않다. 죄다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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