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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 대광장

Joyfule 2008. 4. 2. 00:36

성베드로 대광장

 

베드로광장은 베르니니가 1656년에서 1667년까지 11년에 걸쳐 양쪽 회랑을 포함하여 세운 것이다. 흔히 바로크 예술하면 복잡하면서도 장식적인 것으로만 연상되는데, 사실 그 시기에는 그러했다. 그러나 이 대광장의 양쪽에 위치 해 있는 회랑을 살펴보면, 단순한 균형미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다.

한 시대의 예술가로서 그 시대의 유행이나 사조(思潮)에 예속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이상을 추구하였으며 작품의 대상을 항상 교회를 중심 테마로 잡은 베르니니의 예술 세계를 이 회랑을 통해 볼 수 있다.

 

광장은 그 폭이 246미터, 광장의 입구에서 대성당의 입구까지의 길이가 300여 미터나 되며, 전체 회랑에 세워진 원주형 기둥이 284개, 사각으로된 기둥이 각각 네 줄로 88개가 세워져 있으며, 회랑 바닥에서 천정까지는 그 높이가 16미터나 된다. 그 위에 140개의 대리석상(주로 그 당시까지의 성인, 그리고 교황들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고, 석상 하나의 높이는 3.24미터임)이 세워져 있다. 이렇듯 거대한 회랑을 광장 양 옆에 나란히 세운 까닭은, 대성당은 그리스도의 몸, 양쪽 회랑은 그리스도의 양 팔을 상징한 것이다. 베르니니는 양 팔을 벌리고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을 종교나 종족, 언어, 관습 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집에 초대한다는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벨리스크

광장의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오벨리스크는 원래는 현재의 대성당 정면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있었던, 1세기 때의 로마 황제 가이오와 네로의 경기장 가운데에 장식을 위해 설치되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초기에 기념 교회를 세우면서 경기장은 모두 없앴으나 탑만은 계속 남겨 두었다. 이를 교황 식스투스 5세의 명에 의해 1586년 4월 30일 이전 공사를 시작하여 약 130여 일 후 같은 해인 9월 10일, 현재의 위치에 세우게 되었다.

 

탑의 높이만 해도 25미터로 로마에 있는 오벨리스크 탑들 중 두 번째로 높으며, 무게는 약 300톤이나 된다. 이 거대한 탑을 옮기기 위해 그 당시 건축 설계자였던 도메니코 폰타나가 책임자로 선임되었고, 그의 지휘로 900여 명의 인부와, 말 140여 마리 그리고 47대의 권선기를 동원하여 이 어려운 이전 작업을 해냈다고 한다. 이렇게 옮겨 놓은 오벨리스크 탑 위에 십자가를 올려 놓음으로써 이 탑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로마 제국 시절 그리스도교에 첫 박해를 시작했던 네로가 권력의 상징으로 아끼고 좋아했던 이 오벨리스크 탑을 이곳 광장의 중심에 옮겨 놓은 이유는 광장을 장식하거나 해시계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위한 것보다는, 더욱 심층적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의 정신을 이곳에 오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두 개의 분수

 

오벨리스크 탑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두 개의 분수대가 있다. 대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오른쪽의 분수대는 카를로 마데르노(현재의 대성당 정면을 설계한 사람)의 작품이며, 왼쪽의 것은 도메니코 폰타나(오벨리스크 탑 이전 공사의 책임자)의 것이다. 이 두 분수대 역시 광장의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위해 세워졌는데 종교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물로써 죄를 깨끗이 씻어야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 실제로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 순례왔던 모든 사람들이 이 양쪽 분수대의 물을 손으로 떠서 자신의 머리 위에 뿌린 후 성당 안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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