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다.

Joyfule 2018. 5. 7. 01:11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위의 글은 일본 전국시대 불세출의 영웅이자 뛰어난 지략자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최말단의 무사에서 명실 공히 일본의 천하인(天下人)‘이 된 인물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종 시에 남겼던 유언이다. 그가 맨 밑바닥의 삶에서 지상 최고의 인물로 입지전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가 죽을 때에 한 유언치고는 허무하고 애잔하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사람이 바로 솔로몬 왕이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1:8~14)

 

솔로몬왕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비교할 수 없는 부와 영화를 누렸던 인물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조차 그의 지혜를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말년에 지었다는 전도서를 보면, 인생의 영화가 일장춘몽이며 모든 게 헛된 것일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는 민초들의 독백이라면 이해하겠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간 영웅들이 한 목소리로, 인생은 해가 뜨면 쉬 사라지는 아침안개와 같이 덧없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죽음에 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죽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세상이 놀랄만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도 그 업적을 남겨두고 죽는다. 사람들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의 공적을 기리며 칭송해마지 않는다하여도, 그들이 지하무덤에서 이를 알기나 할 것인가? 그래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어본 경험이 없기에,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내일 죽을 것처럼 보이는 노인들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준비하는가? 물론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고는 있겠지만, 체념하고 살거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죽음 뒤의 생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름답게 떠나는 것에 골몰하고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라도 된 것처럼, 쿨하고 시니컬하게 죽음을 맞이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자신에게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멋지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죽음 뒤의 삶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죽음이 곧 재앙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이생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안든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이생이 있다면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인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비천하게 살았지만, 착실하게 준비한 사람은 이생에서 놀라운 반전의 삶을 맞이하게 된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16:19~24)

 

여기 이 땅에서는 최악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 있다. 거지 나사로이다. 그와 대비되는 최상을 살았던 인물은, 나사로가 문 앞에서 구걸했던 집주인인 부자였다. 그러나 죽음이후의 삶은 정반대가 되었다.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맞이했고, 부자는 끔찍한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이 땅에서 최상의 삶을 누리는 기간은 길어야 80여년이겠지만, 이생에서의 삶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땅에서 억척스럽게 아등바등 산다고 해야 삶의 열매를 누리는 기간은 눈 깜짝하게 지나가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허접스럽게 산다고 해도, 이생의 삶을 잘 준비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토요토미 히데요시나 솔로몬왕이 전혀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땅을 떠날 준비를 잘하고 계신가?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잣대는 다르다. 영접기도와 주일성수로 대표되는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잣대는 허접스럽기 짝이 없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예수님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비틀어버린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자의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천국이 자신 안에 계신 것을 증명된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포하셨다. 즉 성령의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있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성령이 안에 들어와서 동행하는 사람이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마지막이 올 때 기도하는 자를 모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고 경배하며 감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하루에 1시간도 기도하지 않으며, 기도하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하는 자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