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 - 鄭木日
팔월 초순에 거목들이 사는 나라에 갔다. 1m78cm의 키다리로 살아온 나는 거대한 나무들의 세상에서 갑자기 난쟁이가 돼버렸다.
상상하기 힘든 거목들이다. 가까이 서 있어도 전체를 바라볼 수가 없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일부분만 포착될 뿐이다. 거목들의 일생은 눈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수천 년의 침묵으로 얻어낸 명상의 말과 영혼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눈이 시린 푸른 하늘로 수직으로 치솟은 나무들을 우러러 볼뿐이다.
거목들이 사는 곳은 미국 서부에 있는 세코이아 국립공원 (SEQUOIA NATIONAL PARK)이다. 이 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유명한 숲은 자이언트 세코이아 그로브(Giant Forest Sequoia Grove)라 한다. 세계 최대목(最大木)으로 알려진 셔먼장군나무(General Scherman)가 있는 곳으로 간다.
셔먼장군나무 혹은 제너럴 셔먼트리는 수령 2천2백년, 나무높이가 82.5m나 된다. 밑둥치 직경이 11m, 높이 54m에서의 직경 4.2m이다. 이 나무로 방 5개짜리 목조주택 40채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거목들이 서 있는 숲에서 나무와 함께 숨을 쉬니. 가슴이 설렌다. 나무들의 위용에 탄복할 뿐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떤 수사도 감탄도 함부로 늘어놓을 수 없다. ‘만물의 영장’이란 자부심 따위는 허세에 불과하다. 여기 있는 세코이아 나무들이야말로 땅위의 성자이다. 철학이니, 종교니, 사상이니 하는 것도 거목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지고, 눈에서 경이가 열린다.
일직선의 직립(直立), 조금도 기울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고, 하늘로 향해 척추를 곧추 세우고 있다. 옆으로 가지를 뻗어내려 풍성한 모양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한 일자(一字) 한 획이 땅에서 하늘로 치켜 올랐을 뿐이다. 단순, 간결의 힘과 아름다움이 넘쳐흐른다.
수관이 수려한 느티나무, 단풍이 화려한 은행나무, 곡선이 오묘한 소나무와는 다르다. 허장성세를 버리고 마음을 비워버린 자세이다. 일직선의 비상이 있을 뿐이다.
세코이아 국립공원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북부에 위치한다. 적설량이 많은 고산에 살아남자면 몇 가지 생존조건이 필요하다. 키가 커야 하고, 곧아야 하며, 가지가 적고 부드러워야 한다. 키가 백 미터에 가까워도 가지는 적을 뿐더러 짧고 볼품이 없다. 세코이아 거목들은 생존조건에 따를 뿐이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마호멧의 탄생보다 더 오래 전에 나서 현재까지 생존해 있음은 경이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거목들 앞에 꿇어 않는다. 2천년 이상 실존만큼 위대한 일이 있을까. 이보다 더 신비한 사실이 또 있을까.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이지만 마음이 영원에 닿은 하늘 나무이다.
거대한 독립체였고, 나무 하나씩이 영원한 생명의 공화국이다. 나는 이 지상 최고의 원로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고지대에 있는 세코이아공원은 강풍이 몰아치는 곳이다. 이곳에서 자라는 세코이아나무는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끄떡하지도 않는다. 우람한 키와 체구를 가진 이 나무들의 뿌리는 이외로 땅에 얇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들끼리 흙속에 뒤엉켜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 이것이 세코이아 나무가 강풍을 이겨내고 장수하게 된 비결이다. 강풍, 가뭄, 홍수, 산불을 겪으며 고통과 시련을 견뎌낸 단련과 인내의 결과로 2천년 이상의 삶을 이은 거목이 된 것이다.
절제, 간결, 무욕, 집중력으로 지어올린 거대한 생명의 탑 앞에서 그 어떤 전설과 신화도 무색해지는 것을 느낀다. 2천년 수령의 거목들은 살아있는 역사이다. 역사란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무들은 일년에 한 줄 씩 자신의 삶을 나이테에 기록한다. 2천여 개의 나이테에 2천년의 햇살, 바람, 물의 말, 풀벌레와 새소리, 하늘과 땅과 별의 이야기가 수놓아져 있다. 생존 그 자체가 역사인 거목을 우러러 본다.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 백년도 못 미칠 수령을 가질 터이지만, 일생의 체험과 느낌을 목리문(木理紋)에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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