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영혼을 지니고 살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대우를 받지만,
죽으면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 버리기 때문에 동물과 똑같은 시신일 뿐이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이나 안중근 의사처럼
삶의 가치가 존경받을 만하면 시신의 값이 올라간다.
그 것이 결국은 이름값인데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즉 x.x.x 라고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의 독특한 영상이 떠오르는데 그것이 이미지다.
그 이미지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 에 따라 결정된다.
최근호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하면 마더 테레사의 유해를 안치하려고
인도, 알바니아, 마게도니아가 지금 분쟁중이라고 한다.
1997년에 타개한 테레사 수녀의 유해는 현재,
그가 50년간 빈민구제활동을 했던 인도의 캘커타에 안치되어 있다.
그녀는 1910년,
오스만투르크제국(현 마게도니아)에서 알바니아계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18세에 인도로 가서 그 나라에 귀화했다.
그런데 알바니아 총리는 10월 9일,
테레사 수녀의 유해를 알바니아로 보내달라고 인도정부에 정식으로 요청을 했다는 것.
이에 대해 인도정부는 “테레사 수녀는 인도시민이었다” 며 그 요구를 일축했다.
양국 싸움에 마게도니아까지 가세해
“테레사 수녀는 마게도니아 땅에서 태어난 마게도니아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유해를 안치할 권리가 있다”
고 주장을 하고 나섰다.
지금 인도 웨스트 벵가르의 카톨릭 신자들은
알바니아의 유해 송환 요구에 맹열히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알바니아 정부가 뒤늦게 유해를 모시겠다고 나선 것은,
자기나라의 혼란해진 국론 통합을 위해서는 국가적 상징이 필요한데 그 상징적 인물로,
자국민이 테레사 수녀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테레사 수녀의 영혼은 천국으로 갔고,
유해만 인도의 캘커타 땅 지하에서 한줌 흙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름 없는 보통 시민 같으면 유해를 요구하지도 않을 뿐더러
누구든지 얼른 가져가라고 했을 것인데,
테레사 수녀는 그가 살아온 50년 인생이
정말 아름답고, 희생적이고, 인간적이고, 선량했기 때문에
골분이라도 거기엔 얼이 있고,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돈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높다는 의미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죽어서도 그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할 것이다.
꼭 테레사 수녀처럼 세계적인 인물이 아니어도 좋다.
어느 종교의 상징적인 인물만 되도 좋고,
어느 군부대의 대표성만 지녀도 좋고,
어떤 학교나 어떤 지역의 상징적 인물만 되도 좋다.
남을 위해 살았거나, 인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거나,
고매한 인격자로 살다가 가면,
그런 인물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칭송을 받고 선명하고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