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천국과지옥

실제로 존재하는 지옥

Joyfule 2017. 4. 22. 09:10

 

  실제로 존재하는 지옥

 

(알 레이시 지음 / 정동수 옮김)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단 한번 휘장을 뒤로 젖히사 우리에게 지옥이 어떤 곳인지 보도록 하셨습니다. 단 한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실화(비유가 아님)는 우리가 지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구원받지 못한 부자와 구원받은 부자가 죽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힌지라. 지옥에서 부자가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울부짖어 말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에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사 손가락 끝을 물에 적셔, 제 혀를 서늘케 하게 하소서. 이는 제가 이 불꽃 속에서 고통받고 있음이니이다, 하나 아브라함이 말하되, 아들아, 너는 네 평생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마찬가지로 나사로는 악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구나. 이 모든 것 말고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크고 깊은 구렁이 굳게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건널 수 없고 또한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눅 16:22-26)


지옥에서 긍휼을 요구하며 물을 달라고 애걸하면서 자신의 눈을 치켜올리고 있는 부자를 보면서, 우리는 지옥이 실제적이며 글자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충분히 확신할 수 있으며 동시에 다음의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 그 부자는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2. 나사로는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3.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은 글자 그대로 진짜였다.

4. 천사들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5. 아브라함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6. 지옥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7. 지옥의 불꽃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8. 부자의 눈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9. 나사로의 손가락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10. 부자의 혀는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11. 부자가 원했던 물은 글자 그대로의 물이었다.

12. 부자의 고통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13. 부자와 나사로 사이의 큰 구렁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14. 지옥으로 떨어질 부자의 형제들은 글자 그대로 존재했다.


실제적이며 글자 그대로의 지옥은 성경에서 장소와 상태로서 분명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있는 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지옥이 실제적이고 글자 그대로의 고통이 존재하는 장소이므로, 지옥은 정말로 어딘가에 위치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지옥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스올"(Sheol)과 그리스어 "하데스"(Hades)는 영어 성경에서 대개 "지옥"(Hell)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스올" 및 "하데스"는 "죽은 자의 거처"(abode of the dead)를 의미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에서 "스올"이 "무덤"(grave), 즉 "죽은 자의 몸이 거하는 곳"을 의미하며, 다른 경우에는 "혼의 거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문맥에 의해 스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위의 성경 구절이 보여주듯이, 스올은 세 부분 즉 불꽃, 큰 구렁, 낙원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저는 성숙하지 못한 크리스천들에게 아직도 문젯거리로 남아 있는 것을 해결해 드리려 합니다. 이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질문: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죽어서 어디에 갔을까요?"

대답: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죽어서 이 땅의 아래 부분 즉 스올로 갔습니다."


그들은 죽어서 곧장 하늘로 간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서 지옥의 고통스러운 불꽃 가운데 있었습니다. 비록 구원받은 사람이 안위를 받긴 하지만, 그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는 큰 구렁을 사이에 두고 불꽃이 있는 부분으로부터 격리되어 "아브라함의 품"이라 불리는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하늘로 간 사람은 단지 에녹(창 5:22-24, 히 11:5)과 엘리야(왕하 2:9-11) 두 사람 뿐 입니다. 물론 성경은 확실하게 에녹이 하늘에 갔다고 말하지는 않고, 단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갔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당신이 있는 곳에 갖다 놓는다면, 그것은 바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누군가를 당신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갖다 놓는다면, 그것은 "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으로 보내셔서...."(요일 4:9)


예수님께서는 보내심을 받았을 때 하늘을 떠나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를 자신의 거처인 하늘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그가 하늘에 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생명의 연수의 날들이 이러하니 일백 칠십오년으로 그때에 아브라함이 숨을 거두니라. 연수가 차고 늙어 충분히 장수하고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합해지니라."(창 25:7,8)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백성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들은 큰 구렁을 사이에 두고 지옥의 불꽃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어서 그곳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곳의 수장으로 만드셨고 그때부터 그곳은 "아브라함의 품"으로 불렸습니다.


신약시대의 스데반 집사가 죽기 전에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그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행 7:55) 그런데 누가 복음 16장에 나오는 이 구원받지 못한 부자가 거지 나사로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아브라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나사로가 있던 곳은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부자는 구약 시대의 인물입니다.


독자께서 복음서들을 연구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대해 언급하셨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곳을 "하늘"(Heaven)이라 칭하셨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그곳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묘사하셨습니다.(요 14:2) 그러나 요한 복음 14:2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예수님께서 늘 아버지의 거처를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옆에 있던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이 회개하며 예수님께 청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 말씀드리되, 주님, 주께서 주님의 왕국으로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하옵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 강도에게 그가 자신과 함께 "하늘"에 있으리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낙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단 한번 이곳에서만 "낙원"이란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하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과 "낙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낙원이 땅속에 있었으며 지옥과 맞닿고 있는 "큰 구렁"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이미 다윗은 시편 16:10에서 예수님께서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실 것임을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16장 10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형제들아, 내가 족장 다윗에 대하여 너희에게 거리낌없이 말하노니, 그가 죽어 장사되어 그의 돌무덤이 이 날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가 대언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서약으로 맹세하신 바 곧, 육체를 따라 그의 허리의 열매에서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왕좌에 앉히실 것을 안고로, 이 일을 미리 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되, 그분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고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다, 하더니,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29-32)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 안에 있던 세 밤과 세 낮 동안, 우리 주 예수님께서 "스올" 또는 "하데스"로(영어로는 지옥임) 가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낙원에서 십자가에서 같이 처형되었던 강도를 만나셨습니다.(눅 23:43)


자,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낙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한 답을 매우 명쾌하게 제공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사,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다, 하였도다, (이제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그분께서 먼저 땅의 아래 부분들로 내려가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뇨? 내려 가셨던 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 훨씬 위로 올라가셨던 그분이시니, 이는 모든 것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엡 4:8-10)


독자께서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땅의 아래 부분으로 내려가셨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 즉 낙원에 있던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즐거운 상태로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시면서 낙원에 사로잡혀 있던 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을 사로잡아 하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바로 그 때 다음의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에 보라, 성전 베일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니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에 잠든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니라."(마 27:51-53)


따라서 히브리서 11:8의 아브라함은 이제 히브리서 12:22-24의 하늘에 있습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장차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떠나가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났으며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과,


23. 하늘에 기록된 첫째로 난 자의 총회와 교회, 모든 것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에게와,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에게와,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에게와, 아벨의 피보다 더욱 좋은 것을 말하는 뿌리는 피에게니라.


수년 전에 제가 살고 있는 콜로라도 주에서는 딜론(Dillon)이라는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이주를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딜론이라는 마을이 있던 계곡에 큰 저수지를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주해서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딜론은 물로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딜론에 살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으나, 이제 그들은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원에 대해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시며 낙원에 있던 모든 영혼들을 하늘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낙원은 더 이상 땅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열네 해 전에 그가 셋째 하늘로 채어 올림을 받았느니라. (몸안에 있었는지 내가 분간할 수 없으며, 몸밖에 있었는지 분간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아시느니라.) 내가 이러한 사람을 아노니(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내가 분간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채어 올림을 받아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으니, 이 말들은 사람이 말하면 불법인 것이라."(고후 12:2-4)


사도행전 14장을 공부하시면서, 독자께서는 고린도 후서를 쓰기 14년 전에 사도 바울이 리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것으로 여겨져 버려진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가 죽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셋째 하늘, 곧 낙원에 끌려 올림을 받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통해서 독자께서 참으로 낙원이 땅의 중심부에서 하늘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발견하시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계시록 21:2를 보면,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 있습니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로서 내려오는데...."(계21:2)


그런데 계시록 22:2를 보, 한 때 땅에 존재했던 에덴동산 안에 있었던 생명나무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안에 있습니다.


"그 거리 한 가운데와 강의 양편에 생명의 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의 과일을 맺고 달마다 자기의 열매를 산출하며, 그 나뭇잎들은 민족들을 고치기 위하여 있더라."(계22:2)


또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니,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한 가운데에 있는, 생명의 나무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뒤 강도를 만나셨던 곳, 즉 땅 아래 부분에 있었던 낙원이 이제는 그곳의 모든 거주자들과 함께 하늘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자기가 낙원(Paradise)으로 들려 갔다고 말하며, 이 낙원이 분명히 셋째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낙원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하데스의 차가운 부분에서 하늘로 옮겨진 것입니다. 하데스의 불타는 부분에는 여전히 거주하는 자들이 있으며, 그곳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사 5:14)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지옥 속으로 내려갑니다. 이 불타는 곳은 땅의 중심부 즉 땅 밑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시편 55:15, 잠 7:27, 사 14:15, 겔 31:16-17, 마 11:23, 벧후 2:4)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성경 말씀이 지옥이란 실재로 불과 유황이 존재하는 실재 그대로의 장소라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희망 없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종종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께서 지옥이 있다는 것을 내게 증명해 주시길 원해요!"라고 조롱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곧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역자의 덧붙이기: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는 사실은 사도 신경에서도 증명이 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외우는 사도 신경의 예수님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그런데 영어로된 사도 신경은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는 구절 가운데에 "지옥에 내려갔다가"라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


부디 여러분의 한영 찬송가나 성경에 있는 사도 신경을 펴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 사실인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우리 말 사도 신경을 번역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 는 구절을 믿을 수 없었기에 삭제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 크리스천이 사도 신경을 주문 외우듯이 외우라고 추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이런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함입니다.


아이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알 레이시 지음, 정동수 옮김, 도서출판 안티오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