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기업 창업주 아이디어 반영… 애플컴퓨터·스타벅스 등 숨은 얘기 ‘회자’
1990년대 국내 굴지의 한 대기업 디자인 부서에는 회장의 긴급명령이 하달됐다. 수십여년간 사용해온 촌스러운(?) 심벌마크 대신 세계인들로부터 관심을 끌 만한 국제감각의 심벌마크를 새로 만들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 기업이 글로벌화했으니 심벌마크도 국제 감각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계시장에서 다국적기업과 당당히 힘을 겨루기 위해서는 우수한 상품도 상품이지만 기업을 대표할 만한 심벌마크가 필요하다는 게 회장의 생각이었다. 이 기업은 세계 유명 디자인회사 등에 의뢰하는 등 진통 끝에 몇 개월 후 기업을 상징하는 심벌이 탄생했다. 물론 새로운 심벌마크 개발과 홍보에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됐다.
막대한 비용 투입 심벌마크 개발
1990년대는 우리 기업에 심벌마크 바꾸기 열풍이 가장 강했던 해다. 삼성과 LG를 비롯해 제일제당 등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앞다퉈 심벌마크를 바꿔, 심벌마크 바꾸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심벌마크는 구체적인 형태에서 추상적 또는 상징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삼성은 이름을 그대로 묘사한 별 3개를 합친 모양에서 타원형으로 바뀌었고, 럭키금성은 영어 알파벳 L과 금성을 표시한 디자인에서 그룹의 이름을 LG로 바꾸면서 원 안에 알파벳 L과 G로 사람의 얼굴을 이미지화해 넣었다. 제일제당을 비롯해 해태, 조선맥주, OB맥주 등도 몇차례 수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LS전선 조인묵 홍보팀장은 “최근 기업의 심벌마크는 세계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되고 있다”면서 “1990년대에 이어 최근에도 국제감각에 맞는 영문약자 심벌마크로 바꾸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이렇게 심벌마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 기업만이 갖는 독특한 ‘심벌마크’를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데다 그 회사의 정체성을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등 가치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광고홍보전문가인 (주)프레인 김지현 팀장은”소비자들은 기업을 상징하는 로고나 심벌마크만 봐도 그 기업을 떠올리는데다 심벌마크는 기업철학과 정체성을 반영하고 소비자의 마음속에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기업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국내 기업들도 10여년 전부터 심벌마크에 대해 관심을 갖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컴퓨터와 나이키 등은 기업명(名)보다 오히려 ‘심벌 마크’가 먼저 연상될 정도로 ‘심벌마크 마케팅’에서 성공한 케이스”라면서 “심벌마크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시대상황 맞게 단순·명료화 추세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기업의 로고나 심벌마크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 만든 경우도 있지만 오랜 된 기업 가운데는 창업주가 개발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창업자가 만든 초창기의 로고나 심벌마크를 유지하는 경우는 적다. 대부분 변신을 거듭한 끝에 새롭게 변화했고 단순·명료화 됐다. 시대 상황에 맞게 변화한 것이다. 심벌마크의 역사가 이렇다 보니 오래된 기업일수록 심벌마크가 만들어진 배경과 의미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컴퓨터의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애플의 심벌마크인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의 유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많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것은 없다. 말 그대로 확인되지 않은 ‘설’만 있을 뿐이다. 호사가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에 대한 존경심에서 만들었다는 ‘앨런 튜링설’이다.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튜링은 1940년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컴퓨터를 개발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 그러나 동성애자인 그는 1952년 영국 정부에 체포됐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는데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평소 튜링에 대한 존경심을 회사 심벌마크에 재치있게 담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설이 있다. 우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창고에서 컴퓨터를 만들 때 사과를 한 입 먹고 컴퓨터 위에 올려놓은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과 ‘깨물다(bite)’라는 영어 단어에서 컴퓨터 연산단위인 ‘바이트(byte)’를 떠올리게 만든 언어 유희라는 풀이가 있다. 또 처음 디자인한 모양이 사과인지 토마토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한 입 베어 문 자국을 넣었다는 설도 있고 창세기에 나오는 이브가 사과를 따먹고 원죄를 지었듯 컴퓨터의 발명은 인류에게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걸 표현했다는 설 등 다양하다.

세계적인 커피숍 체인인 스타벅스의 심벌마크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스타벅스의 심벌마크에서 받는 느낌은 보는 이마다 다르다.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추상적이고,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심벌마크에 대한 설이 분분하다.
이중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이 심벌마크 중앙에 나와 있는 여자 모습이다. 여자의 양쪽으로 위로 올라가 있는 모양이 마치 인어 꼬리 부분 같다. 실제로 스타벅스 심벌마크 한가운데에는 긴 머리의 여자가 있고, 이 여자의 양쪽으로 인어 꼬리 모양이 있다.
가장 흔한 해석은 이 로고가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꼬리가 두 개 달린 인어 ‘사이렌’을 표현했다는 설이다. 사이렌이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한 것처럼 커피로 고객을 유혹하겠다는 뜻을 담았다는 풀이다. 하지만 사이렌은 예전부터 커피 운반선에 매다는 깃발에 그려졌기 때문에 ‘커피를 안전하게 수호해온다’는 뜻이 있다는 설명도 있다.
또 다른 해석은 고대 이집트인이 숭배하던 풍요의 여신 ‘이시스’라는 설명이다. 여섯 갈래로 난 머리카락이 이시스 여신의 상반신을 덮고 있는데 이는 6대륙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또 푸르덴셜을 상징하는 바위모양의 심벌마크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세계적인 보험금융회사의 심벌마크가 하필이면 바위산일까.”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1896년 푸르덴셜의 심벌마크로 만들어진 이 바위산은 일명 ‘지브롤터 바위산’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푸르덴셜로부터 심벌마크제작을 의뢰받은 광고회사 직원이 ‘심벌마크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며 여행을 하던 중 차창 밖의 바위절벽을 보고 ‘힘’과 ‘안정’의 상징인 지브롤터 바위를 떠올려 ‘바위산’으로 심벌마크를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푸르덴셜은 이후 17차례에 걸친 수정을 걸쳐 현재의 ‘지브롤터 바위산’이 됐다.
또 세계적 스포츠용품업체인 나이키는 그리스어로 ‘승리의 여신’을 뜻하는 갈퀴모양의 심벌마크를 사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나이키의 갈퀴모양 심벌마크 제작비용이 35달러였다는 사실이다. 스우시(Swoosh)라고 명명된 나이키 심벌마크는 포틀랜드 주립대학에 재학 중인 캐롤린 데이비슨이라는 여대생이 1971년에 디자인했다. 스우시는 1972년 등 이후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현재의 모양이 됐다.
스위스의 약제사 앙리 네슬레가 창업한 네슬레는 작은 새 둥지가 심벌마크다. 네슬레의 작은 새 둥지는 창업자 네슬레 가문의 문장(紋章)에 기초해 창안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수정을 거쳐 현재의 심벌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일종의 티저 기법이 숨은 심벌도
이렇듯 오랜 전통의 세계적 기업들은 나름대로 심벌마크에 숨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오랜 기업인 만큼 초창기에는 특별한 의미를 두거나 체계적인 관리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들여 심벌마크를 관리하고 있다.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코리아의 박상훈 사장은 “애플과 스타벅스처럼 소규모 창업으로 시작된 회사는 심벌마크를 만들 때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회사 정체성을 담으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뚜렷한 해석이 없다”고 풀이한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들 기업 심벌마크에 일종의 티저 기법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티저(teaser)광고란 처음에는 주요한 부분을 감췄다가 점차 전체 내용을 명확히 해가는 광고를 말한다. 처음에는 상품명이나 광고주를 알아볼 수 있는 메시지를 피하고 회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그 상품명이나 광고주 명을 밝혀나가든지, 또는 어느 시점에서 그 베일을 일시에 벗기든지 하는 광고 방법이다.
경노훈 인천대학교 교수(시각디자인)는 “심벌마크는 시각 매체로서의 미적인 기능은 물론 경영학, 심리학, 사회학의 범위로까지 시야를 넓혀 끊임없이 변화 발전되면서 새로운 기업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다”면서 “심벌마크는 언어와 같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 교수는 “언어가 시대의 유행을 따르듯이 심벌마크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벌마크와 로고의 차이
심벌마크란, 예를 들면 LG를 나타내는 얼굴처럼 생긴 그래픽을 일컫는다. 엄밀히 말하면 로고와는 구별된다. 심벌(symbol)의 원래 의미는 말 그대로 상징, 표징이라는 뜻이다. 그래픽 디자인에서는 보통 상표(brand)나 마크(mark)가 대표적인 심벌이다. 로고(logo)는 logotype, 즉 ‘합자(合子)한 활자’라는 의미로서 일반 서체와 구별되게 쓰기 위하여 특별히 고안 디자인된 브래드명의 글자, 혹은 회사명의 글자를 말한다. 따라서 고유의 디자인으로 고정된 서체의 조합이기 때문에 보통 타이핑으로 는 표기할 수 없다. 코카콜라의 영문 로고가 한 예다.
|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 뉴스메이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