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는다.
당신이 영접기도행위를 마치고 교회 문을 밟기만 하면, 천국은 따 논 당상이고 이 땅에서의 축복은 덤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자신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별하여서 천국에 들이기로 예정된 자녀들이라고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러워한다. 덧붙여서 성경에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부를 수 없다기에, 자신들은 입만 열면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증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마치 부동산업자들이 담합하여 가격을 올려놓고 버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그 가격에 거래되지 않아도, 자신들이 높여 부르는 자격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라고? 오홋, 그런가? 성령이 안에 계시다면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는 코빼기도 볼 수 없다는 게 기이한 일이다. 성령이 임한 사건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라. 성령과 동행하는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먼발치서라도 구경하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래서 성령이 내주한다고 자처하는 당신이 그러한가? 아마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에 가자로 손을 내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이들이 허다한 게, 우리네 교회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성경의 잣대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1.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아라.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명령 외에 다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뜻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필요할 뿐이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그런 사람과 같이 영원히 살고 싶겠는가? 당신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어하기 위해 하나님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세상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르신다. 물론 교회 내에서 드높은 직분에 신앙의 연륜이 묵직한지는 모르지만, 그저 담임목사가 알아주는 성실하고 열정적인 종교주의자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약3:15)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라 마귀가 통치하는 곳이다. 사탄의 이름이 세상의 왕이자 통치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노예로 삼고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 그러므로 야고보사도는 땅의 지혜를 가리켜 ‘세상적’, ‘정욕적’이라고 부르며 ‘마귀적’이라는 말로 동일시하고 있다. 세상은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인본주의가 세상의 문화와 사상에 바탕으로 깔려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세상으로 난 문을 닫지 않으면 마귀적인 사상인 인본주의와 욕심과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의 문화에 물들게 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세상에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하나님이 인도하심과 성령의 능력이 없이 세상에 나가면 한방에 훅 갈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인본적인 사상과 쾌락적인 세상의 문화에 물들어 변질되지 않으려면 세상으로 난 문을 닫고 하늘로 난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세상의 왕인 마귀와 귀신들의 포로가 되어 생명과 영혼을 사냥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할 일은 세상적인 사람들의 교제를 끊고 세상문화를 단절하며 인본적인 사상이 들어오는 통로를 닫아야 한다. TV나 영화, 각종 동호회, 이웃모임, 세속적인 친구모임, 취미, 책도 선별하며 읽어야 하고 교인들과의 만남도 분별하여야 하며,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는 크리스천들의 글과 유투브 설교동영상 등도 분별해야한다. 손안의 인터넷인 스마트폰으로부터 분별력이 없는 사람을 향한 공격이 거세다. 특히 양의 탈을 쓴 좀비들은 세상문화를 동경하는 여성, 게임 등의 쾌락에 물들어있는 자녀, 부와 세속적인 성공을 누리고 싶은 남성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말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상식적이라고 할지라도, 영적 분별력이 없다면 영적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들의 글과 말을 통해서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사상이 들어온다. 교회 내에도 인본적인 사상이 뿌리는 내린지 오래되었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 내적치유 등이 자리 잡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세상의 문은 세상적인 사상과 문화에 도취된 사람들을 통해 들어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그들의 직분이 목회자나 장로이고, 과거에 어떤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했다고 할지라도 세상적인 문화와 인본적인 사상을 교묘하게 물 타기를 하여 가르치고 있다면 이들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세상으로 향한 문을 닫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2. 스스로 고독한 길로 걸어 들어가라.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끊임없이 성령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도와 말씀이다.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기도와 말씀으로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무시로 교제하는 사람은 고독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애쓰며 홀로 있는 것을 즐겨야 한다. 그러나 직장과 단체 심지어는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파묻혀서 그들과 많은 시간을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고 낄낄거리며 희희낙락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왕따가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도 꼭 필요한 말만하며 자기 일에 충실하지만, 직장동료나 상사 부하직원들과 쓸데없이 만나서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교회에서 만나는 교우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하나님에 대한 주제인가, 아니면 사람이나 세상적인 주제의 대화인가? 하나님에 대한 주제가 아니라면 크리스천이라도 영적인 사람은 아니다. 단지 종교적인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종교적인 사람은 종교행위를 자기만족과 자기 의로 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희망이 있는 한, 지상의 현세적인 고뇌와 질병, 비참함, 가난, 고통, 번민, 두려움, 비애, 외로움 혹은 죽음조차도, 그 모든 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즉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세상과 세상의 것을 향한 세속적인 마음을 버리고 고독을 친구로 기꺼이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라. 그가 하루 종일 양떼를 치면서,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해를 보내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TV도 스마트폰도 친구도 없었지만, 결코 심심하거나 무료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삭, 야곱도 양치는 목동으로서, 하루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최고의 환경에서 살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복잡다단한 현대 문명 속에서 탐욕을 채우고 쾌락을 즐기는 온갖 세상문화가 안방과 손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스스로 고독하려는 결단을 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고요한 세계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러한 결단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세상으로 향한 문을 걸어 잠그고, 하늘로 난 문을 활짝 열어놓으라고 말씀하셨다.
3. 가정을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로 삼으라.
성경이 기록되었던 교회는 지금처럼 십자가가 웅장한 건물에 솟아있으며 커다란 교단문패가 현관문에 붙어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소수의 사람들이 은밀하게 모였다가 흩어지는 가정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꿈꾸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그 모습이 바로 가정 중심의 교회이다. 가정 중심의 교회는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에서 시작한 개척교회가 아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깊게 교제하는 기도를 하고 있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달음을 얻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회개하고 경배하는 교인들이 있는 교회이다. 이 교회에는 목사의 직분도 없으며 새벽기도회도 없고 예배의식 때마다 참석하고 헌금을 내야하는 부담도 없다. 가정 중심의 교회는 가정에서 기도를 가르치고 배우며 말씀을 깨달으며 믿음을 성장시키는 교회이다. 이곳의 가장이 목회자이며 아내가 사모이고 자녀들이 장로이고 집사인 교회이다. 하나님은 교회 건물에 계시는 게 아니고 우리의 마음에 살아계시다. 교회만 철썩 같이 믿다가 천국 문 앞에서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에서 당신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스스로 훈련하고 성령과 동행하는 영적습관을 들여 배우자와 자녀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가족들과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가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간절하게 찾으면 언제 어디서나 찾아오시는 분이다. 한글만 알고 있다면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한다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하시는 보혜사(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돕는 자 뜻이다.)이시다. 당신이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깨달음을 얻어 당신의 삶에 적용하고 자녀들을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4. 교회공동체를 천국의 방주로 삼으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하나님은 어떤 공동체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은 초대교회이다. 이들은 특정한 신앙행위나 예배의식을 드리려고 모인 무리들이 아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모습으로 틈만 나면 모여서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재산을 팔아 교회에 드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었다는 대목을 통해, 그들이 특정 신앙행위가 아니라 서로 마음을 합하고 삶을 나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특정한 날이나 종교적인 행사가 있는 시간을 정해 모여서 행사를 추진하거나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이 시간만 나면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였다. 그러다가 생업이 있거나 집안일을 보러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교회와 집을 구분하지 않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삶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이 곧 신앙생활이었고, 교회나 집이나 일터를 구분하지 않고 그들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는 바로 이렇게 삶을 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 생각이 없다. 교인들이 특정한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헌금을 내거나, 교회에서 시행하는 신앙행위에 들러리로 참여하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공동체는 성경에서 말하는 에클레시아가 아니다. 기독교를 종교로 하는 종교집단일 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이루려면 교인이 아니라 제자가 되어야 하며,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잘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이런 공동체는 제자양육이 필수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일대일 혹은 일대 소수의 소그룹으로 양육하여야 하기 때문에 수천명이상의 대형교회가 될 수 없다. 또한 지도자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다른 제자들을 양육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교육프로그램에 투입하거나 말로 때우는 설교로 가르칠 수 없다. 지도자가 몸소 모본을 보이며 실천하면서 양육해야한다. 그래서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의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아니라 당신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은 그 공동체의 리더로 세우실 것이다. 걱정하지 마시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적 공동체는 그 양들이 어떤 지역에 살며, 기존 교회를 다니고 있는 지의 사실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 기도와 말씀을 가르치고, 문제를 해결해주며, 영적 해갈을 해주고, 신앙을 숙성시켜주며, 말세에 악한 영과 싸우는 정예용사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기도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지역적인 격차로 인해, 혹은 기존 교회에 출석하는 관계로, 필자의 교회에 정규적으로 찾아와 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필자가 개설한 크리스천 영성학교라는 이름의 영적 공동체에서 영적 양식을 공급받으며, 병든 영혼을 치유하고, 귀신들로부터 놓여나고, 삶의 지난한 문제를 해결하며, 성령과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들이고 있다면 모두 필자와 연합한 교회 공동체의 식구들인 탓이다. 우리 공동체의 목적은 다른 교회와 다르지 않다. 서로 힘을 합하여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왔다면 모두 뜨거운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5.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습관을 들여서 기도의 삶을 살라.
기도란 하나님과 내 영혼이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통로이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로, 창조주이시자 우리의 주인인 하나님께서 피조물이자 종인 우리에게 명령하신 행위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주인을 날마다 쉬지 않고 찾아오라는 말씀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말하자면 기도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명령을 수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고 부르며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기도의 원리이다. 그렇다면 기도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으며,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게 바로 죄라고 말하였다. 예수님과 성경의 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기도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기뻐하는 자녀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주인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24시간 함께 계시며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간절히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은 찾고, 구하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자신도 우리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기도의 핵심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두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종의 기도를 통해서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그 분의 뜻을 이루어드리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것뿐이다. 그것도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두드려야 한다. 그러한 기도의 본을 보이는 것이 믿음이 내려오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기도란 아침저녁에 방해받지 않은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낮에도 틈나는 대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꾸준하게 두드려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언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가?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에 100% 응답이 내려올 것을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내가 기뻐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되는 때이다. 그 경지가 바로 하박국 선지자가 세상일에 아무런 열매가 없어도 기뻐하며, 다윗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 부족함이 전혀 없다고 노래하는 때이다. 그런 때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때이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일상의 삶에서 올곧게 실천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인생을 바친다는 결단을 평생 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당신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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