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쉼있는 인생을 누릴 것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너무 유명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가? 아니면 고단한 일상에 피곤에 절어서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저 성경에나 있을 법한 위로나 격려쯤으로 넘기고 있는가? 사실 필자도 대다수의 크리스천들과 진배없이 예수님의 위로를 누리지 못한 채 팍팍한 인생을 살았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이고, 현실을 현실이라는 동떨어진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왜 그런지 아는 사람이 교회에 없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목사가 되고 나서 목회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나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인생을 사는 이들이 그들이었으니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도 설교단상에서면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를 선포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수혜자가 되지 못한 현실의 괴리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기가 막힌 일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예수님은 공짜로 쉼 있는 인생을 약속한 게 아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워야 된다고 전제조건을 내세우셨다. 그게 교회에서 요구하는 주일예배를 비롯한 교회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목회자가 요구하는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인가?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쉼 있는 인생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생의 짐 위에 신앙의 짐을 더 얹어 비틀거리며 걷는 이들이 우리네 교회주변에 허다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멍에와 교회에서 요구하는 멍에가 다르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 예수님은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요구하신 적이 없으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들은 오랫동안 내려오는 관행적인 종교의식이거나 교단신학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가르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8~40)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하다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고 계신가? 그게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신앙행위들인가?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을 왜곡해서 가르치고 강요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1~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경에서 명령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계명이란 명령, 뜻, 율법 등 다양한 단어로 바꾸어가며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고 순종하며 살고 계신가? 아니라면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찬송을 드리다가 마음이 울컥하고 마음이 짠해지면,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여기고 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교회마당을 성실하게 밟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것으로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바로 성경의 위인들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의 위인들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기도응답과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계명을 지킬 생각도 없는 대다수의 우리네 교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겠는가? 그 생각은 죄다 자의적인 판단일 뿐이다. 성경을 읽어보라.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덮어두고, 사람들이 지어낸 관행적인 교리를 지키는 것으로 바꾸어버렸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게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목숨을 다해서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처럼 거룩하며,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판을 깔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면 자기 의와 자기만족에 불과할 것이다. 예수님을 3년 반동안 따라다니며 배운 사도들도, 성령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접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자 놀라운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초대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하고 거룩한 삶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종교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종교주의자로 살다가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천국을 기대할 것인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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