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칼럼이 섬뜩한 이들에게
인터넷을 돌아아니다가 우연히 필자의 카페나 블로그에서 칼럼을 읽거나 유투브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호(好)는 별로 없고 대부분 불호(不好)이지만 말이다.ㅎㅎ 그래서 회원가입이 되어야 게시판의 글들을 읽을 수 있는 필자의 카페에 들어왔다가, ‘앗, 뜨거워’ 하면서 화들짝 놀라서 나가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유투브 동영상에서도 구독신청을 눌렀다가 취소하시는 분들도 허다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필자가 주장하는 말투가 불경건하기 짝이 없으며, 그 내용도 이단비스무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친절하게도(?),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말라는 투의 댓글을 달고 증발하시는 분도 있다.
그들이 카페를 탈퇴하거나 유투브 구독을 취소하는 것은 자유이다. 들어올 때도 자유의사로 들어왔듯이 나갈 때도 자유이다. 그동안 필자의 글에 적의를 드러내고 안티로 돌변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여러 가지이지만, 필자의 주장이 우리네 교회와 하나님의 종인 목사들을 적나라하게 비난한다는 게 거스른다고 하였다. 또한 필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원론과 성령론과 상반적이라는 분도 있었다. 또한 방언이나 다른 성령의 은사를 싸잡아서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분들의 심기를 거슬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이기에는 인격수양이 덜 되었고 말투가 불경건하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말며 탈퇴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리 없이 증발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카페를 탈퇴하면서 필자에게 쓴 소리를 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분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필자의 주장은 대부분 성경의 구절을 근거삼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의 칼럼을 대하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부정적인 것은 자유이겠지만, 적어도 필자를 걱정해서 조언을 해주고 싶다면 성경의 근거를 들이대면서 말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싸잡아서 비난한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사실 수많은 목회자들도 필자의 카페에 들어와서 글들을 읽어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성경에 해박하다고 자부하며 성경전문가인 목회자들이 대놓고 필자의 글이 비성경적이라고 조목조목 반박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필자의 글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서 할 말을 잃었다면 이해하겠다. 그러나 수천 개의 칼럼을 올리면서 수많은 회원이 가입한 카페에 이런 분들이 없었다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그들이 알고 있는 성경지식은 교단신학자들이 주장한 학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필자의 생각을 섞지 않고 그대로 올려놓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들은 성경에 기록한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내용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하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겨우 한다는 말이, 필자를 문자주의자(성경구절의 문자에 담긴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지 않고 문자대로 이해하고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 필자주)라고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어떤 구절에서 문자대로 해석하는 것이 성경전체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문자주의자의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말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 싸잡아서 문자주의자라고 말한다면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구절을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비유로 풀어서 해석해야 하겠는가? 그렇다면 모 이단처럼 성경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비유로 해석하여 혹세무민하는 이들에게는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래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필자의 칼럼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일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필자를 찾아온 목회자들이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었다. 필자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교회에서 이렇게 가르칠 수 없다고 한다. 왜냐면 교단교리와 다른 해석을 가르치면 교단에서 제지할 것이며, 교단을 떠나서 목회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아마 대다수의 교인들이 자신의 교회를 떠날 것을 염려해서이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목회자들은 일신상에 문제를 일으키는 어떤 일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록 그게 비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설령 교인들이 지옥에 가더라도 자신의 안위를 위협할만한 가르침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닌가?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땅을 치고 통곡을 할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에게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줄 목회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눈에 불을 켜서 현재 자신의 믿음이 천국의 자격에 합당한지를 확인해보라는 말이다.
또한 자신들의 목회자나 자신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은사들이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는 필자의 주장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많은 분들이 자신의 방언이 성령이 주시는 방언이 아닐 거라는 필자의 주장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칼럼에 분노에 가득 찬 댓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오래전에 어떤 이는 전화를 걸어와서 필자에게 따진 이도 있었다. 그분들의 주장은 왜 자신의 방언이 성령이 주신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방언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인터넷에 성령이 주시는 방언을 분별하라는 투의 글을 올렸을 뿐이다.
성경에는 미혹의 영이 그들만의 기적과 이사로서, 거짓예언을 하며 광명한 천사로 위장해서 속인다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방언이라고 속여 넣어줄 수 없겠는가? 그래서 자신에게 방언뿐 아니라 성령의 증거나 변화, 능력이나 열매로서 분별하라는 말이 잘못되었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방언 외에 다른 성령의 능력과 열매가 없으며, 방언은 기도를 편하게 하는 수단이나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영적 능력이나 자기 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방언이 성령이 주시는 방언이라면 성령이 내주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데,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사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또한 성령 춤이나 방언찬송, 웃으면서 뒤로 넘어가는 등의 성경에 소개하지 않는 다른 기이한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사역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지 분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이 갈급할 뿐 아니라 정신질환이나 고질병이 치유되지 않았으며, 각종 삶의 지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왔었다.
만약 이들에게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면, 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는지, 속 시원히 누가 말 좀 해주시라. 사도행전에서 보여준 사도들과 제자들이 했던 사역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따라서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이 일으킨 정신질환과고질병을 치유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성령의 사람들을 양육하였다. 그렇다면 다른 성령의 역사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과 사도들이 했던 사역을 따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필자의 주장이 비성경적이고 잘못되었는가? 백번 양보하여 필자의 주장이 비성경적이라면, 충주의 영성학교를 찾아와서 4년이 넘게 해왔던 필자의 사역을 직접 확인해보시라. 필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필자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 던져질 것이며, 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이들이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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