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군인들 - 조병욱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돌아가신 뒤 상여를 매고 장지로 향할 때였다. 지금이야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하고, 상여가 나가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6년전 우리 동네에서는 누군가 돌아가시면 관을 싣고 장지로 가곤 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한지라 사람들은 호상好喪이라 여겼고, 슬픔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시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정신없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장례절차를 다 준비해 주셨는데 상여를 짊어질 상여꾼이 없었다.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가장 나이 적은 분이 예순을 한참 넘기셨기에 상여꾼 구하기가 힘들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마지막길을 함께 한다며 애써 상여꾼 노릇을 자처하셨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상여 메고 올라가다 다치시지 않을까 더 걱정이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동네 어르신들이 상여를 메고 올라가시는데 아니나 다를까, 산 중턱에 있는 장지까지 가기엔 무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삯을 주고서라도 사람을 구했어야 하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았고, 돈이 있다 해도 젊은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장지가 있는 선산은 외길인데다 비탈져서 상여가 휘청거렸다. 결국 반도 못 올라가고 멈춰야만 했다. 더군다나 앞에서 선소리 하시는 어르신이 벌집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뒤따르던 상여꾼들이 벌에 쏘이기까지 했다. 상여를 내려놓고, 모두 어떻게 해야 하나 허탈해 했다. 여자들이 멜 수도 없고, 여기에 그냥 묻을 수도 없고…….
그때였다. 건너편 산에 있던 군인들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중대장인 듯한 인솔자와 병사들이 땀을 흘리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멀리서 훈련하다 장례 행렬이 눈에 띄어 유심히 본 모양이었다. 상여가 올라가지 못하고 중턱에 멈춰서자 도와주러 온 것이었다. 훈련받기도 힘들텐데 이곳까지 와서 도와줄 생각을 하다니…….
전투복을 입은 열두 명이 나란히 상여 옆에 섰다. 전투화를 질끈 동여 메고, 상여에 달린 끈을 어깨에 걸고, 서서히 힘을 주니 상여도 춤추듯 일어났다.
우리가 한 시간 넘게 온 길을 군인들은 순식간에 올라갔다. 인솔자의 지시대로 일사불란하게 기합을 외치면서 한발 한발 올라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절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가 아니라 고마워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비 오듯 흐르고, 그 땀으로 전투복이 젖어가는데 고인의 마지막길을 함께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힘든 내색 없이 장지까지 올라가는 젊은 군인들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한 군인은 부모님 생각이 났는지 울먹이기도 했다. 상여를 따라 석관을 들고 올라가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군인들이 도와주었다. 석관이 얼마나 무거운가!
땅 속에 아버지를 누이고, 칠성판을 덮고, 흙을 한 삽 두 삽 털어낼 때 군인들이 하나둘씩 흐느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고, 그저 상여를 메준 인연이 다인데 마치 오래 알았던 사람들처럼 슬퍼하고 안타까워해 주는 마음에 감동했다.
아마 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셨을 것이다. 군인들이 마지막길을 함께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고단한 생을 마감하고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산소에 갈 때마다 그 군인들이 아버지만큼이나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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