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 벚꽃 동산(Vishnydvy Sad:1904)4.
-제2막-
마침내 경매의 날은 왔다.
이 날 집에서는 무도회가 열린다.
"예전에 이 댁의 무도회에서는 대장이나 남작이나
해군의 사령관들이 와서 춤을 추었건만
이제는 우체국원이니, 역장이니 하는 사람이나 모시러 가야한다.
그런 사람들도 선 뜻 나와 주지 않으려 하니... 원 제기랄"
하인 필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예프는 경매장에 가 있다.
라네프스카야는 경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절망적인 불안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가예프와 로파힌이 들어온다.
가예프는 경매의 결과를 이야기할 기운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로파힌 누가 샀나요?"
"제가 샀습니다. ...여러분 좀 참아 주시오.
저는 머리가 멍멍해서 말을 못하겠군요...
경매장에 가 보니 벌써 데리가노프 녀석이 버티고 있지 않아요?
가예프는 1만 5천 루블밖엔 안 가지고 계셨는데
데리가노프는 처음부터 3만을 걸었지요.
이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저는 4만을 걸었지요.
그랬더니 저쪽에서 4만 5천으로 올리기에 저는 5만 5천으로 올렸지요.
저쪽이 5천씩 올려가고 저는 1만씩 올려가서 결국 9만 루블로 낙찰 됐지요.
벚꽃 동산은 내 것이오!
내 것이오!
꿈이 아닐까?
벚꽃 동산이 내 것이 되다니!
여러분께서는 저를 술이 취하거나 돌았다고 웃으시는 모양인데 웃지 마시오.
항상 얻어 맞기만 하고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봉사놈이
세계에서 다시 없는 아름다운 영지를 샀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종살이를 하면서
감히 부엌에도 못들어 가던 이 농노가 영지를 산 것이오.
여보게! 악대를 불러 실컷 떠들어 주게
로파힌이 벚꽃 동산에 도끼를 대면 나무들이 땅바닥에 텅텅 쓰러진단 말이야!
얼마 안 가서 여기에 별장이 죽 들어서고
우리 손자들과 증손자들은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겠지...
자 악대들 어서 불고 치게!"
부인은 의자에 몸을 떨어트리고 울고 있다.
로파힌은 나무라듯이 말한다.
"마님 왜 저의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
이젠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눈물을 흘리며) 아아 이런 일들이 빨리 끝나 버렸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불행한 생활이 어서 끝나 버렸으면!"
아냐가 와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위로한다.
"엄마 엄마 듣고 계세요?
소중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엄마 난 괜찮아요.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이젠 없어졌어요.
하지만 엄마 울지 말아요. 엄마의 생활은 아직 남아 있지 않아요?
엄마의 고운 마음씨도 남아 있지 않아요.
자 가요. 나와 함께 가요. 여기서 나가요.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뜰을 만들어요.
엄마도 그걸 보면 알게 될 거에요.
깊은 기쁨이 마치 서산에 기우는 해처럼 엄마의 마음에 스며들 거에요.
그러면 엄마도 웃을 거에요! 자 가요. 엄마!"
- 제3막 -
제1막과 같은 무대다.
그러나 이제 커튼도 없고 가구들은 쓰레기처럼 구석에 쌓여 있다.
사람들은 쓸쓸히 정든 집을 떠나간다.
벌써 가을이다.
부인은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지난 날의 애인을 찾아 파리로 가게 되었다.
아냐는 페테르부르크의 여학교로 트로피모프는 대학으로 떠난다.
바랴는 딴 집의 가정부로 옮긴다.
가예프는 월급쟁이로 은행에 취직하여 읍으로 나간다.
농부들이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울지는 않고 있으나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말도 못하는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지갑에 들었던 돈을 모두 털어 그들에게 나눠 준다.
가예프가 나무라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들 뿔뿔이 이 집을 나가자 부인과 가예프만 남는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운다.
"아아, 내 아름답고 정다운 벚꽃 동산!...
내 생활, 내 청춘, 내 행복 안녕!(아냐가 밖에서 즐거운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또 한 번 마지막으로 이 벽과 유리창을 봐야지!
이 방은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즐겨 거닐던 곳이야..."
아냐의 재촉하는 소리가 또 들린다.
그들이 나가자 무대는 공허해진다.
사방의 문짝에 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는 고요해진다.
이 고요 가운데 벚꽃나무를 베어 내는 도끼 소리가 적막하게 들려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병이 나서 병원에 보냈던 늙은 머슴 필즈가 나타난다.
그는 비틀 걸음으로 문으로 가서 손잡이를 돌려 본다.
"쇠가 잠겼구나 다 가버렸나 보다...(의자에 걸터앉는다)
나를 잊어버렸나 보지...
아무래도 괜찮아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 뭐...
(무엇인지 알아 듣지도 못할 소리를 중얼중얼거린다)
아아 한 평생이 다 갔구나 살아 있는지 모르게 끝났구나...(눕는다)
잠깐 눕기로 하자... 필즈야 너는 이젠 다됐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제기랄 못난 녀석아!"(누운 채로 꼼짝 않는다)
멀리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가야금 줄이
끊어지는 듯한 슬픈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꺼져간다.
고요 다만 멀리 벚꽃 동산에서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만이 울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