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Horace N.Allen,安 運)선교사
윗 사진의 오른쪽이 알렌 선교사이다.
알렌 (Horace N.Allen,安 運)은 미국 북장로회 외지선교부의 의료선교사로서
1883년 중국에 도착하여 상하이에 남경 등지를 왕래하면서 선교에 종사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동료선교사인 헨델슨으로부터 한국에 가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타진을 받았다.
헨델슨은 한국 정부의 외교관으로 있는 몰렌돌프 (Mollendorf,)와 가까운 사이여서
한국에 관한 사정을 잘알고 있었다.
조심성이 많은 알렌은 그뜻에 응락하면서도 확답을 아니하고
한국 제물포 세관에서 일하고 있는 하스(Joseph Hass)에게 의사가 필요한지의 여부를 문의하였다.
그후 뜻을 정한 알렌은
1884년 6월 8일 선교본부를 향해 한국을 위한 선교사로 임명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7월 22일 선교회부터 허락을 받았다.
때마침 알렌은 미국을 시찰하고 귀국하는 민영익일행을 만나게 되어,
알렌은 그들을 통하여 한국의 사정을 더 잘알게 되었으며 한국선교를 위한 결심을 완전히 굳혔다.
알렌의 한국행을 위해 많이 애쓴 사람은 몰렌돌프이다.
몰렌돌프는 한국정부에 알렌을 소개하였고
그 이후에도 알렌의 선교 활동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알렌은 1884년 9월 20일 제물포에 도착 상륙하였다.
그는 미국 공사관의 공의라는 신분으로 일하게되었고
영국, 중국, 일본 영사관의 공의도 겸하게 되었다.
그는 몰렌돌프의 호의에 보답하려는 뜻에서 제물포 세관의 촉탁의사 직도 겸임하였다
알렌은 의사의 일만해도 바쁜 시간이었지만 한국어의 학습을 위해 열심이었으며
매일 기도와 예배드리는 일을 규칙적으로 시행하여 신앙 생활에 아주 충실하였다.
이와같이 알렌은 선교가 아직 정식으로 허락되지 않은 한국에 와서
선교사업을 의료업무로 시작하였으며,
그는 한국에 주재하는 최초의 선교사로서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의료선교사 알렌
알렌은 의료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복음전파의 기회를 포착하고자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교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일련의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이 곧 유명한 갑신정변이다.
알렌의 선교사업 전개를 위하여 그의 위치를 유리하게 이끈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1884년 12월 4일의 갑신정변을 말한다.
개화파의 주요인물인 박영효, 김옥균,서광범,홍영식 등은
신흥국가 일본의 새 문물을 도입하여 고루한 종래의 제도를 고쳐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혁신적 기운으로 꽉차 있었다.
그러나 그들앞에는 보수세력이 도사리고 있어 혁신을 방해함으로 일이 진척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이를 일거에 제거하여 성사를 기하고자 일으킨 것이 갑신정변이었다.
거사는 우정국 낙성식의 축하연을 이용하여 요로 대관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자객을 통해 대상을 살해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날밤 연회가 무르익어갈 무렵 [불이야]하는 소리에 장내가 수라장이 되었다.
민비의조카인 보수 세력의 거두 민영익은 몸에 7군데나 칼을 맞고 쓰러졌다.
그는 동맥이 끊기는 중상을 입어 출혈이 심하여 생명이 위독하게 되었다.
장안에서 유명하다는 한의들을 14명이나 불려들여 출혈을 막으려 했으나 효과를 보지못하였다.
알렌이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하고 있는 모습
몰렌돌프는 민영익을 자기 공관으로 옮긴 후 알렌을 불러 응급수술을 하게 하였다.
알렌은 밤을 새가며 수술을 하여 바늘질한 상처만도 27 여곳의 중상이었으나
일단 출혈을 막는데 성공하였다.
알렌은 계속하여 3개월동안을 민영익의 옆을 떠나지 아니하였고 정성을 다해 치료하여
그의 생명을 구하는데 성공하였다.
갑신정변 직후 시국은 너무나 불안하여
신변의 위험을 느낀 외국인들은 모두가 인천으로 피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알렌은 환자 남아 있으면서
[나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며또 갈 수 있다하여도 가지않겠다]라는 비장한 말과 함께
사생결단하고 치료에 임하였던 것이다.
만약 그의 의술이 실패하게 된다면 조정의 원망과 불평이 닥쳐 올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민영익은 빨리 회복되었다.
이에 대한 보상은 과연 놀라웠다.
민영익은 알렌 의사에게 일금 10만량을 감사의 예물로 전달하였으며,
서양 의술의 탁월함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완전히 인정받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궁중의 신임은 한결같이 알렌에게 집중되었으며
마침내 그는 국왕의 시의가 되었다.
게다가 고종이 알렌에게 태극일등훈장을 수여하였다.
알렌 의사의 가슴속에는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달하려는 생각으로 꽉차 있었다.
그는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국왕에게 병원 설립의 허가를 요청하여 가납되었다.
한국 정부는 한성 북쪽에 있는 홍영식의 저택을 하사하였고
이름도 광혜원( Widespriad Relidf House)이라고 지어주었다.
당시 광혜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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