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나는 킹제임스성경이 미국표준역본(ASV)과 다른 헬라어 원문에서 번역되었음을 지적한다. 킹제임스성경은 '표준원문'에서 번역되었다. 이것은 '다수필사본'(Majority Text)이라고 불렸다.
'표준원문'(Textus Receptus) 또는 '수용원문'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엘지버 형제들이 쓴 책들에서 비롯되었다. 에라스무스, 로버트 스테파누스, 베자와 엘지버 형제들은 모두 뛰어난 학자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헬라어 신약성경의 "표준원문"은 그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Donale T. Clark이 쓴 Bible Version Manual을 참조하시오.) 이 헬라어 원문은 현존하는 다수 필사본과 일치한다.
학문의 전당
성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곳은 안티옥과 시리아였다.
벌콥은 알렉산드리아의 학교는 플라톤 철학과 영지주의를 포함한 인기 있는 철학의 영향아래 있었다고 지적한다. 자연스럽게 철학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기 시작하며 성경의 풍유적 해석방법을 도입했다. 이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은 클레멘트이며 그의 제자가 오리겐이다. 이 두사람은 성경을 풍유적(allegorical) 해석만이 진정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수장으로서 클레멘트를 계승한 사람은 오리겐이었다. 유명했던 그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오리겐도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기로 결심했다. ( UN Stand 백과사전. 뉴욕: 17권 P6346 참조하시오.)
(그림. P9)
그는 그리스도가 피조된 존재요, 혼은 선재(先在)를 주장했으며 성경의 풍유적 해석방법을 확립한 창시자이다.
오리겐은 헥사플라(Hexapla)라고 하는 6란 성경을 편집했다. 6개의 각 부분은 성경의 서로 다른 역본을 가지고 있다. 헥사플라는 오리겐이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성경 구절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헥사플라는 ASV, NIV, New ASV와 같은 현대의 많은 역본들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A. 오리겐이 원문을 변개시키다.
오리겐은 그리스 철학과 종교를 혼합하여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교리들을 담고 있는 성경 원문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서기 312년, 콘스탄틴은 로마의 황제가 되어서 제국의 수많은 서로 다른 종교를 하나로 통합할 목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한다. 그는 전쟁에 나가서 하늘에 떠 있는 십자가를 본 뒤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위 콘스탄틴의 믿음의 고백 후에 그가 취한 첫 번째 명령은 가능한 한 많은 종교들의 관점을 골고루 수용할 수 있는 성경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콘스탄틴은 교회와 국가를 '로마 카톨릭 교회' 안으로 일치시켰다.
오리겐의 제자중의 한 명이었던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으로부터 50권의 성경을 복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유세비우스는 제 5란을 편집해서 50권의 복사본을 콘스탄틴에게 바쳤다. 우리는 이 필사본들 중에 2권이 로마로 가는 길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을 안다. ( 이 두사본이 바로 그 유명한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이다.) 카톨릭 교회의 본산이 바로 로마임을 볼 때 콘스탄틴은 바로 교회와 국가를 함께 관장하고 있었다. 사본이 거기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또다른 많은 증거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는 70인역(Septuagint)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흔히들 LXX라고 쓴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B.C250년 경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70명의 유대인들이 헬라어로 번역했다는 주장 때문이다. 하지만 오리겐(185-254 A.D)보다 먼저 그런 사본을 만들어 낸 사람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사실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70인역은 오리겐의 헥사플라 제 5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은 헥사플라의 제 5란과 일치하는 점이 많고, 두 사본이 유세비우스의 생애에 씌어진 것 또한 이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지만, 학자들은 70인역이 영감 받은 성경이라고 생각하고 오리겐이 걸었던 그 땅위에 입을 맞추며 경배하고 있다. ASV와 RSV의 번역을 위해 사용된 헬라어 원문은 필사본 계열들 가운데서 오리겐을 따른 계열에서 나온 것이다. 이 헬라어 원문은 로마의 원문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ASV 성경으로 요한복음 9:38절을 펼쳐보면 난외주가 있을 것이다. 그 난외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된 존재라고 믿었던 오리겐의 신학이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서 3:25를 다시 한번 찾아보자. 킹제임스성경에는 '...그 넷째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과 같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ASV는 '...그 넷째의 모습은 신들의 아들(a son of gods) 과 같도다'라고 되어 있다. 's'와 'g'를 각각 소문자로 바꿈으로써 예수님이 우상이거나 마귀라고 가르치고 있다. 오리겐의 신학은 감추어 질 수 없다. 이와 똑같은 교리는 일명 신세계역본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요한복음 1:1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명심하라!
B.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A.D. 400년에 교황은 제롬에게 콘스탄틴의 성경(유세비우스로부터 받은 성경을 말함)과 가장 비슷한 라틴어 성경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제롬은 성실과 열정으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했다. 제롬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원문비평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로서 유세비우스가 세운 카이사랴 있는 도서관에서 그들의 저작들을 모두 섭렵했다. 제롬이 만든 성경은 로마 교황청의 성경이 되었고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교회사는 이 사건을 목도하고 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콘스탄틴이 오리겐의 헥사플라 5란에서 성경을 50권 복사하도록 명령한지 겨우 80년이 지났음을 명심하라.
나는 이 시점에서 제롬의 시대보다 앞서 라틴어 역본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시리아 안티옥에서 출간된 '구 라틴 벌게이트'(Old Latin Vulgate)라고 알려져 있다. 이 성경은 그리스어 성경에서 번역되었으며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시드니 콜렛이 쓴 "All about the Bible"의 28페이지를 참고하시오.) 구 라틴 역본은 영국의 첫 번째 성경이 되었다. 이 성경이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와 헷갈려서는 안된다. 구라틴 역본은 2세기에 출간되었으며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4세기에 나온 것이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구라틴 역본의 개정판이다.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의 그리이스어 원문을 전수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드니 콜렛(Sidney Collet)은 그의 저서 "All about the Bible"pp 27-28 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은 바티칸사본이라고 지적한다. 이 사본은 1481년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도서관에서 이상하게 발견되었다. 시내사본이라고 알려진 사본은 티쉔돌프에 의해 성 캐더린 수도원의 쓰레기 통에서 1844년에 발견되었다. 콜렛은 말하기를 1859년 러시아 황제의 영향으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로부터 이 사본이 건져냈다고 말한다.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번역본들을 읽어보면 성경의 여백에 난외주가 있다. 이 난외주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두사본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콜렛은 계속해서 티쉔돌프는 바티칸사본(Vaticanus)과 시내사본(Alep)은 콘스탄틴 대제가 유세비우스에게 명하여 만든 50권의 복사본이라고 믿었으며 시기는 A.D 331년 경이었음을 지적한다.
C.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신약성경
D.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원문
나는 여기서 이 주제에 관해 길게 다루지는 않겠다. 다른 많은 책들에서 이 문제에 관해 씌어진 훌륭한 내용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원문의 개요정도를 다루고자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킹제임스성경의 신약은 '다수 필사본'(Majority Text)인 '표준원문'(Textus Receptus)에서 번역되었다. 이 원문은0로마를 경유하거나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다.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 =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 아래, 초기 필사본의 변개의 위협을 물리친 참된 원문이다. 다수 필사본은 5세기까지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성도들과 모든 교회에서 사용된 유일한 성경이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소수 필사본을 버리거나 화분의 받침대 정도로 사용했다. 다수필사본은 계속 필사에 필사를 거듭해서 비잔틴 제국 시대(452-1453)에는 모든 사람이 사용하게 되어 일명 '비잔틴 원문'이란 말이 나왔다. 오늘날 이 사본들을 '표준원문' 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최초의 헬라어 필사본은 A.D100년 이전에 완성되었지만 곧 소실되었다. 그 사본들은 초기 성도들의 지속적인 사용에 의해 다 낡아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48번이나 약속하셨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도가니에서 일곱번 단련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시편 12:6-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40:8
"주께서 너무 어려워 못할 일이 있겠느냐?" 창18:14a
성경이 필사될 때 변개된 사본들도 같이 필사되고 있었다. '가장 오래되고 원문에 가까운 사본에는 이 단어가 없고, 이 절이 없고, 이 문장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성경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성경 여백에다 늘 난외주를 달아 놓는 것도 볼 수 있다. 오래된 것이라고 가장 좋은 것이 아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고 정확하게 반영되었음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