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예지 (仁義禮智) - 애도를 흠모로
옛날 어느 마을에 효서이 지극한 중년의 아들이 있어 늙으신 아버지를 잃고
크게 상심한 나머지 식음까지 전폐하며 매일 애도만 하는 것이었다.
이도 모자란 아들은 마당에 석탑까지 세워 애를 태우니
몸은 나날이 수척해져 가기만 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아들의 근심 또한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아는 아들이었는지라
감히 나서서 말리지도 못했다.
아들은 드디어 한가지 대책을 생각해 냈다.
그는 며칠전 죽은 소의 무덤을 찾아가 그 앞에 풀을 갖다 놓고는
무덤을 향하여 어서 일어나 그것을 먹으라고 소리쳤다.
이상하게 생각한 마을 사람이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다.
"지금 당신 아들이 죽은 소의 무덤에 풀을 갖다놓고는,
어서 일어나 먹으라고 소리칩니다.
아무래도 아들이 이상합니다."
아버지는 이말을 듣고 급히 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얘야 이 소는 죽은지 여러날이 지났는데, 어떻게 일어나서 풀을 먹는단 말이냐?"
그러자 아들은 얼굴에 슬픈빛을 가득히 담고 말했다.
"아버지 제가 이렇게 슬퍼하는데도 소가 다시 살아나지 않나요?"
그제야 아버지는 아들이 왜 이러는지 알게 되었다.
"오, 내아들이 내게 깨우침을 주는구나.
그래,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너의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겠다.
그러니 그만 일어나거라."
아무리 효성이 지극하다 해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불효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오는 애통함이야 말로 표현하기 어렵겠지만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판단력의 결핍인 것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산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슬픔을 그치고 산 사람을 위해 두배로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바라는 것으로서 참다운 효도가 되는 것이다.
감정을 자제하여 그 슬픈 애도(죽음을 슬퍼함)에서 벗어나
그것을 흠모(마음속 깊이 사모함)로 바꿀 줄 아는 지혜야말로,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우리 국민들이 배워야 할 또 하나의 합리주의인 것이다.
<천안 교차로, 황 필상,1996,8,5.>
교훈
1)죽음이라는 것은
그 어떤 노력에도 돌이킬 수 없는 사람의 한계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2)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3)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할 것을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