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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인가?

Joyfule 2018. 4. 12. 11:06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인가?  

 

교회에 와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바로 믿음이다. 그러나 믿음처럼 제대로 분별할 수 없는 단어도 없다. 믿음이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만물보다 더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으며,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람의 마음은 이미 죄로 인해 변질되고 부패되었기에 우리의 마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미혹의 영은 사람의 머리를 타고앉아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을 제대로 점검하려면, 자신의 생각이나 확신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야한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의 위인들이 지녔던 믿음을 토대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얻을 수가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16)

 

1. 믿음의 위인들은 불가능한 것을 믿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11:1) ‘실상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휘포스타시스인데, 이 단어의 뜻은 확신이나 보장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증거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에렉코스인데, 이 단어도 증거나 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믿음은 바라마지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냥 믿음으로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간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미리 예견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구절(11:6)을 살펴보자. 이의 헬라어 원문은 아뒤나톤 유아레스테사이, 영어로 It is impossible to please(him)이다.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그동안 지식과 경험을 근거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위인들을 여정을 따라가 보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실존을 믿고, 그분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였다. 하나님은 아버지 집과 친척과 고향을 떠나 자신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목적지를 정해주고 떠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무작정 떠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국가의 치안이 없었던 씨족국가였다. 그래서 씨족들이 서로 모여 살면서 재산과 생명을 지키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홀홀단신으로 안전울타리를 쳐주던 씨족을 떠나서 타지를 여행한다는 것은, 재산과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게 불 보듯 환한 일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믿고 떠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죽을 때까지 가야할 장소를 말해주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는 사건은 외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대한 반응이었다. 아브라함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 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 경악할 명령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즉각 순종하였다. 그 이유는 그가 아들을 다시 살리실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아니,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실 거라고? 만약 당신 같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처럼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즉각 실행에 옮겼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지켜보시고, 그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내려주셨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12:29~31)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

그래서 당신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불가능한 것을 믿고 계신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먹을 양식과 거주할 집 등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이런 염려와 걱정을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구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믿음으로 살고 계신가? 아니면 하루 종일 돈을 버는 일에 시간을 들이고 돈을 쌓아두는 일에 골몰하고 계신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좋지 못하며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겨우 남아있는 일자리도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하지만 보수는 형편없이 적은 일자리뿐이다. 그래서 당신이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벌어서 쌓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일생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누울 때까지 돈을 버는 일에 투자하고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허드렛일을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삶에 필요한 생계비를 넉넉하게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믿음이 없기에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것이다. 교회는 다니지만 벌수 있을 때 악착같이 벌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한 생각은 불가능한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5:16)

 

당신의 고질병과 불치병 그리고 각종 질병을 위해 기도를 해보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을 기미조차 없기에, 효험하다는 약과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서 헤매고 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죄다 질병을 치유 받았고 장애가 회복되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치유의 능력이 없다. 왜 그런지 아는가? 당신은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시는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인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다. 불가능한 것을 믿는 사람이 바로 믿음이며, 이런 믿음의 소유자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당신이 기도했을 때 확신을 갖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내려오지 않자, 의심이 생기고 조바심이 나고 확신에 균열이 생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기도하자마자 즉각 응답이 온다면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믿음은 오랫동안 변치 않는 인내를 요구한다. 요셉은 지하감옥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기도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기다렸다. 그런데 당신은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하며 참고 기도하였는가? 의심하고 조급해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종교적인 신앙행위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러므로 불가능한 것을 믿는 믿음을 견고하게 지켜라. 응답이 내려올 때를 조급하게 채근하며 기다리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주실 것을 믿고 느긋하게 기다려라.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다.

 

2. 믿음의 위인들은 박해와 불이익을 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1:33~40)

 

요한의 형제 야고보사도는 제대로 된 사역을 해보지도 못하고 헤롯의 칼날에 일찍 죽임을 당하였다. 고향과 재산과 가족까지 버리고 예수를 믿은 초대교회 교인들 중 상당수는 도망치다가 잡혀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가 순교를 당하였다. 12사도도 거의 끔찍한 죽음으로 이 땅을 떠나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이 땅에서는 춥고 배고프고 헐벗은 삶을 이어가다가 끝내 처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신이 예수를 믿은 이유는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이 땅에서 잘되고 부자가 되며 성공하는 등의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고 싶어서가 아닌가? 물론 이런 투의 말로 전도하는 게 우리네 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온갖 고난과 핍박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에게 선한 것을 주시고 형통하게 해주시며, 병을 낫게 해주시며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면서, 피치 못하게 맞닥뜨리는 고난과 박해까지 면제해주시지는 않는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셨으며, 제자를 자처하는 우리도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면서 당해야 하는 온갖 고난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아는가? 우리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즐거움을 누리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피조물일 뿐이다. 우리가 사는 유일한 목적은, 주인이시자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무익한 종일뿐이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은 세속적인 축복과 육체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 예수를 믿고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고 불이익을 당하거나 비난과 핍박을 당할 상황이 생기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크리스천임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들린 선물만을 기대하고 교회에 나온 이들이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자신을 왕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이 관심이나 갖겠는가?

 

3. 믿음의 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4,25)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왕이시며 선한 주인이시라는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자신은 무능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종의 신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선한 주인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자신이 결코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도 선한 주인을 철썩 같이 믿고 그 명령에 올곧이 순종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당신의 주인이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나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도,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이라면 선하다는 것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한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생각조차 없다. 또한 자신에게 덕담이나 격려, 위로와 축복을 해주는 목회자들을 설교를 즐겨듣고 그런 교회에 출석하지만, 죄를 지적하고 부족한 성품을 들추어내며 지옥을 선포하는 목회자들을 쫓아내거나 이들을 회피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선한 주인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이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 일에만 순종하고 실행에 옮길 뿐이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0:17,18)

 

예수님은 세상에서 오직 선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는 육체를 지닌 사람들은 선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성경은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미 죄로 변질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선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한 주인이라고 믿는다면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그게 바로 자기 부인이다. 자기 부인이란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자신의 선호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지 않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선하고 여기며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태도이다. 왜냐면 세상에 오직 하나님만이 선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이나 성취하고 싶은 것들은 죄다 쓸모없거나 악한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생각을 포맷하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깨닫고 삶에 적용하거나,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쫓아 살아야 할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은 자신에게 최고의 인생을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선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음의 위인들은 불가능한 것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어떤 박해와 불이익을 회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이 선한 주인이라는 것을 믿고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몽땅 건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죄다 천사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서 천국에 들어가 찬란한 면류관을 쓰고 엄청난 상급의 수혜자가 되었으며, 이 땅에서도 평안하고 기쁘게 살면서 하나님이 요긴하게 사용하시는 도구의 삶을 영위했다. 그러므로 당신의 믿음이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는 기적과 이적을 불러일으키며,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자신과 이웃의 삶에 있어야할 필요들이 넉넉하게 채워지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의 삶을 살고 계신지 찬찬히 살펴보시라. 아니라면 여전히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없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며, 성령께서 당신에게 들어오셔서 그런 믿음을 가슴에 새겨주시기를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란다. 믿음이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래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는 응답이 당신의 영혼과 삶에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천국의 문이 시시각각으로 닫히는 종말의 때에 살고 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