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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 기도해 줘, 나 암이래

Joyfule 2024. 8. 5. 07:06



엄상익 변호사 - 기도해 줘, 나 암이래

 

 

어제는 어린시절부터 평생 우정을 나누어 오던 동네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했다.

“야 상익아 기도해 줘. 나 암이래. 의사가 수술을 하래.”

그의 목소리에는 갑자기 앞에 높은 벽을 맞이한 것 같은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십오년 전 나도 그랬었다. 속에 암덩이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앞이 캄캄했었다. 그리고 세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의사도 가족도 세상 그 누구도 나의 참담한 내면을 모르는 것 같았다. 친구도 비슷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내가 옆에 있어 줄께”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컹하는 걸 느꼈다. 주변의 친구들이 가을낙엽 떨어지듯 저세상으로 가고 있다.

그들의 죽음을 보면 내 삶의 일부가 조각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다.


그와  동네에서 열네살부터 나이 칠십인 지금까지 추억을 공유해 왔다.

오십 칠년 전 서울의 변두리이던 신설동에서 동네 아이들 몇 명이 모여서 같이 과외 공부를 했었다.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건설회사 사장인 부잣집 아들이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먹을 과자와 함께 보온병에 하얀 우유를 담아왔다. 그때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 친구는 둘이서 똑같이 나누어 먹자고 제의하면서 그때마다 내게 우유와 과자를 주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넉넉한 마음이 고마웠다.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아버지가 동네의원을 하는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과외공부를 하는 도중에 그 아이는 링거병에 담겨있는 맛있게 보이는 빨간 액체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먹고 싶어하는 걸 보면서도 홀짝홀짝 혼자 마셨다. 섭섭한 생각이 들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이 넉넉한 사람도 있고 바늘끝같이 좁은 존재도 있기마련이었다. 우리는 그때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다니는 학교는 달랐지만 변두리 동네독서실에서 고등학교 시절도 같이 공부했다.

대학 여름방학 그는 건설공사장에 나가 철근을 나르고 청소를 하는 잡역부를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장남인 그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지 않고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년 후 그는 오류동의 길가에서 주유소를 시작했다. 직접 기름총을 들고 들어오는 차마다 직접 기름을 넣어주었다. 비오는 날도 우산을 쓰고 변두리 동네를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고 돌아다니며 자기의 주유소에 보일러 기름을 주문하시면 배달해 드리겠다고 했다. 당시 많지 않은 주유소를 한다고 하면 그 자체로 벌써 부자였다. 종업원들을 두고 사장이라고 화려한 사무실에 큰 책상을 놓고 과시하던 풍조였다. 저녁때 수금이나 해서 룸쌀롱에서 놀던 사장들도 많았다. 그는 철저히 검소하고 부지런했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이상으로 부자가 되는 게 목표인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곡괭이자루 하나를 가지고 올라와 노동자로 시작해서 부자가 됐다고 했다.

그는 사업가 기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내게 당구에서 스리큐션이 보이듯 부동산이 보이고 증권이 보인다고 했다. 제조공장을 인수해 운영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그에게는 내리막이 없어 보였다. 그는 대재벌 회장에 비해 피라미 같은 자신의 주제를 잘 안다고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는 오십대 초에 아버지를 능가하는 부자가 됐다. 서울지역에 큰 빌딩들도 소유했다. 그는 가끔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부자라는 소문이 나니까 동창들이 수시로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여러 모임에서 자기만 보면 돈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교시절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의 얼굴에서 질투와 시기 그리고 미움과 굴욕감이 들여다보인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공갈과 협박 그리고 유혹에 시달리리는 것 같았다. 수시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당하기도 했다. 부자는 바람이 멎을 날이 없는 것 같았다. 이년 전 그가 내가 있는 실버타운에 찾아와 자고 갔다. 내가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을 때 그도 옆에서 가지고 온 노트북을 펼치고 증권시세의 변동을 알려주는 그래프를 보고 있었다. 강남의 증권지점장이 인사를 하러와서 자기가 큰 손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말해주는 주식을 내가 단 한주도 안 산다고 뭐라고 하곤 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성경을 보고 그를 위해 기도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노인이 되니까 마음이 약해지는 모양이다. 내가 암수술을 하기 전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을 경험해 봤다. 내 속에 손가락만한 암덩어리 한개가 있으면 어떤 빌딩도 거액의 재산도 어떤 지위도 명예도 의미가 없다. 나는 그때 중한 징역형을 선고받은 범죄인에게 차라리 네가 부럽다고 했다. 세상이 영원한 지옥이라고 해도 살고 싶었다. 죽음이 무서웠었다. 나는 그의 암울한 마음을 알 것 같다.

아침 기도를 마친 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말이지 지금부터 수술을 받을 때까지 내가 시킬 일이 있어. 무조건 해.”

“뭔데?”

“공책들을 사서 그 위에 성경 속의 시편 23장을 한글자 한글자 몰입하면서 또박 또박 수술을 하는 날까지 써.”

“알았어. 내가 어려서부터 언제 네 말에 토를 다는 거 봤어? 시키는 대로 당장 실행할께.”

“그래, 수술실 정해지면 메시지로 보내. 옆에서 기도할께”

“고마워, 친구”

이제 하늘에 계신 그분이 니고데모처럼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