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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강도범과의 대화

Joyfule 2023. 7. 12. 01:51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강도범과의 대화



칠십대 말쯤의 여인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깡마른 몸에 얼굴에는 병색이 돌고 있었다.

“이제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아들이 보고 싶어요. 우리 아들은 스물 세살에 감옥에 갔는데 벌써 마흔살이예요. 앞으로도 십년세월을 징역 살아야 한대요. 우리 아들한테 좀 가 봐 주세요. 강도로 검사님 댁에 들어간 탓에 그때 사건을 맡아 주려는 변호사가 한 명도 없었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신문 일면에 톱기사로 나왔던 강도사건이 떠올랐다. 본때를 보이기 위해 최고형이 선고되는 사건이었다. 나는 그 늙은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뚜껑이 덮인 깊은 우물의 암흑 속에 있을 때 누군가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보아 주는 자체만으로도 빛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거대한 바위산의 협곡 바닥에 상자곽 같은 건물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우중충한 회색에 세월의 얼룩들이 묻어 있었다. 그 건물들은 세상을 거부하는 듯 사방이 두꺼운 벽이었다. 높은 담 아래 붙은 작은 철문을 통해 어둠의 세계로 들어갔다. 철컹하며 둔중한 금속음을 내는 철창을 몇 개 통과해 교도소 깊숙이 있는 한 방으로 갔다. 천정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는 형광등이 있을 뿐 한낮인데도 어둠침침했다. 삼십분정도 기다리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깊은 우물 속에 혼자 앉아있는 적막감이라고 할까. 그가 나타났다. 쌍거풀 진 커다란 눈이 선량해 보였다. 내가 본 범죄인들의 인상은 세상의 인식과는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살인범들의 경우도 하얀 얼굴에 짙고 검은 눈썹을 가진 미남들이 많았다. 손들은 예술가처럼 길고 가늘었다.

“얼굴을 보니까 강도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네요?”

내가 그렇게 첫마디를 꺼냈다. 편견을 없애고 거리를 줄이기 위한 말이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악랄한 강도입니다. 검사님 댁을 털기 전에도 전과가 있었죠. 그 시절에는 솔직히 죄의식조차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저 동물적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는 건 그 당연한 결과죠.”

그는 인생의 페이지를 되돌려 반추하면서 정확하게 재해석 했다. 쉽지 않은 말이었다. 강도가 자기를 강도라고 하면 그건 내면이 변했다는 증거였다.

“긴 세월을 감옥 안에서 어떻게 살아왔어요?”

그 안에서도 여러가지의 삶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평생을 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날뛰었죠. 자살을 하려고도 했고 교도관들에게 시비도 걸고 난동을 부렸어요. 나 자신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었죠.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이상한 강도범을 보게 됐어요. 나와 비슷하게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는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거예요.”

“어떻게요?”

“나는 악마가 되어 있는데 그 사람은 천사인 거예요. 항상 밝고 명랑한 겁니다. 게다가 책들을 밤늦게까지 읽고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는 거예요. 그 친구에게 묘하게 끌리더라구요. 한번은 운동시간에 그가 나를 보고 긴 시간을 견뎌내려면 책을 읽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를 흉내내서 세계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태어나서 처음하는 독서였는데 그게 머리에 들어왔겠습니까? 뭔가 뭔지 혼란스러웠죠. 성경을 읽어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남자는 나보고 무턱대고 계속 읽어보라고 했어요. 독한 마음을 먹고 시키는대로 해 봤죠. 책 속에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들을 읽다보니 차츰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어요. 그때 그 사람이 내게 또 한마디 하더라구요.”

“무슨 말을?”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내가 강도짓을 한 피해자들의 입장을 한번 쯤 생각 해 보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 보는 건 어떠냐는 거였어요. 같은 강도범에 같이 중형을 선고받은 비슷한 처지니까 반발하는 감정은 일어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 친구말대로 내가 강도를 한 사람들을 떠올려봤죠. 제일먼저 떠오르는 게 해장국집 아주머니였어요. 해장국을 팔아서 대학에 합격한 딸의 등록금을 장롱 속에 뒀는데 내가 그 돈을 털었죠. 그 딸이 대학을 못갔을 생각을 하니까 정말 나는 나쁜 놈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검사집옆에 있는 전봇대를 타고 안으로 들어갈때도 마음이 착잡했죠. 걸리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같이 들어간 친구가 그 검사에게 칼을 들이대면서 우리가 강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대면서 그걸 아느냐고 소리쳤죠. 우리가 법정의 검사가 되고 그 검사가 죄인역을 맡은 셈이죠. 그 검사는 젊은 사람들이 오죽하면 이런 일을 하겠느냐며 우리를 달랬어요. 그리고 조용히 나가주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었더라면 하고 나중에야 후회를 했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오기와 반항으로 살았어요. 나의 불행을 세상 탓으로 돌렸죠. 얼마 전에 세계사 열 다섯권 짜리를 다 읽었어요. 그런데 역사책을 보니까 예전에는 나 같은 놈들은 재판도 없이 목을 잘라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아놨더라구요. 그나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문명화된 세상 덕인 것 같아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십자가 옆에서 같이 처형된 두명의 강도범이 떠올랐다. 한명은 저주를 했고 다른 한명은 참회를 했다. 참회를 한 강도는 그날로 낙원으로 갔다. 그가 싱긋 웃으면서 덧붙였다.

“어려서부터 공부 안하고 일만 저질렀죠. 그렇지만 뒤늦게라도 이 안에서 중고등학교 대학검정고시까지 해냈어요. 게다가 미장, 양재같은 자격증도 땄어요. 너는 안될 놈이라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이제는 인정받고 싶어요.”

아쉬운 마음을 품고 감옥 문을 나왔다. 그리고 이십오년 가량의 세월이 흘렀다. 그도 석방이 되어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