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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갤러리 - 사회적 부활

Joyfule 2020. 2. 14. 03:02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갤러리


사회적 부활


서초동에 모여 있는 이웃 법률사무소 주인들의 소식이 간간이 전해진다. 일이 없어도 아직 여력이 남아있는 노인 변호사들은 사무실에 출근한다. 우연히 모습을 엿보면 텅 빈 방의 책상 앞에 묵직한 바위같이 앉아 있다. 그 앞에는 상담을 하러 온 사람도 없다. 공허한 방에라도 그렇게 앉아있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지내는 사람 중에는 법원장이나 검사장을 지낸 고위직들이 많다. 평생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조심하면서 살던 버릇 탓인지 변신을 해서 사람들과 막 어울리는 게 내키지 않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 와서 신문이라도 들고 앉아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이웃의 법률사무소에 출근하던 나이 먹은 변호사가 사무실 문을 닫았다. 그 다음 그의 행보는 일주일에 세 번은 국립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하루는 서예를 하고 하루는 골프를 치는 스케줄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그가 죽었다. 주위의 동료 변호사들은 명랑하고 조크를 잘하는 분이라 오래 살 줄 알았다고 아쉬워했다. 나이를 먹었어도 오랜 재판 경험과 법률 지식이 축적된 사람들이 많은 데 세상에서 용도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법조계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십여 년전 박원순 변호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요새 정년퇴직한 분들을 사회적으로 재활용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어요. 정년퇴직한 교사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할아버지가 되어 유치원에 가게 했어요. 아이들의 정서나 교육상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얼마 전 신문사에서 삼십년 동안 일하고 주필로 퇴직한 분을 일꾼으로 모셨어요. 그 분을 보면서 삼십년의 경험과 노하우가 얼마나 귀중한지 새삼 깨달았어요. 주필이었던 그 분도 평생 글을 쓰던 분인데 얼마나 귀한 재주입니까? 그런 어르신들이 사회에 많이 깔려있는데 정부에서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답답해요. 정년퇴직한 분들을 보면 연금보다 아직 일을 하기를 원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퇴직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법원 앞의 변호사 빌딩얘기를 들으면 적막한 빌딩의 복도마다 바둑돌소리만 허공에 물결을 일으킨다고 한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사오십대에 임대를 해서 칠십대인 지금까지 자기 사무실에 머무르고 있다. 사무실의 책장이나 의자와 함께 변호사도 붙박이 물건처럼 되어 버렸다고 자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가만히 보면 엄청난 법률지식과 재판경험이 두뇌에 축적되어 있는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이다. 관념이나 이론을 벗어나 현실의 애환과 눈물들도 이제는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법원과 검찰에서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빌리려고 들면 그들은 비를 만난 식물처럼 되살아 날 것 같다. 좀 더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청이나 법원의 민원실의 자원봉사자가 되어 법률서류를 만들어 주는 봉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나이를 먹고 이삼년전 잠시 거리의 변호사 역할을 해 본 적이 있다. 노숙자 비슷한 허름한 옷을 입고 탑골공원 뒷골목의 노인들이 모이는 곳에 가 봤다. 인도의 경계석에 걸터앉아 그들의 애환을 들어보았다. 수긍하는 얼굴로 그들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 자체만 해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큰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그 분이 준 작은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활발하게 재활용됐으면 좋겠다. 그게 사회적 부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