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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은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

Joyfule 2020. 2. 19. 13:36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갤러리


좋은 것은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


예전에 감옥에 있던 원로소설가 정을병 씨는 변호사인 내가 접견을 갔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방 안에 참 고약한 놈이 있어요. 위아래도 없고 성격이 과격해서 주먹을 휘두르죠. 그런데 이 친구가 어느 날 감방복도를 지나가다가 배고픈 사람을 보더니 주머니 속에 있던 빵조각을 꺼내 그 사람에 입에 쳐 박고 지나가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선(善)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라는 구별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들 미워하는 폭력범의 깊은 속에 감추어진 좋은 면을 예리한 시각을 가진 소설가가 발견한 것이다. 우리들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람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눈다. 아직도 뇌리에 각인된 내 경험도 있다. 십 오년 전 쯤 패키지여행으로 터키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여러 명이 함께 탄 버스 안에 아주 거슬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말도 함부로 하고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했다. 남의 일에 간섭도 많이 하고 한마디로 건방지게 보이는 존재였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는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보면서 말도 섞지 않으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경계하면서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여행이 중반을 넘은 어느 날 오전이었다. 지친 사람들이 호텔에서 나와 무거운 트렁크들을 버스 짐칸 옆에 내팽개치고 버스에 올라 좋은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둘렀다. 뒤늦게 버스에 오르던 순간 나는 버스 짐칸 안에 한 남자가 앉아 단체여행객들의 육중한 트렁크들을 정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의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외국인 운전기사 혼자서 그 많은 짐들을 안에 넣고 정리하기는 힘든 작업이었다. 

‘사람의 선입견이라는 게 이렇게 틀릴 수도 있구나’

나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짐칸 안에 있는 그에게 나의 손을 내밀면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잘 못 봤습니다. 좋은 분인걸 모르고 오해했었습니다.”

그는 나를 보면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씩 웃었다. 겉으로 안보이던 그의 선한 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계속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했을 것이다. 평생 변호사라는 직업을 해 왔다. 사람의 나쁜 면을 보는 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신문에 한 줄의 비평기사라도 나면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돌을 들고 던진다. 거기에 역류하면 그 역시 미움과 배척을 받는 세상이다. 그런 속에서 좋은 면을 발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나쁜 면은 그 표면에 금방 나타나기 때문에 누구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것은 속에 깊이 파묻혀 있기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만이 볼 수 있다.’

변호사란 직업 덕에 깊이 파묻혀 있는 좋은 것들을 종종 보기도 했다. 탈주범으로 유명했던 신창원이란 인물을 변호할 때 그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비가 쏟아지는 밤중에 쫓기던 그가 어느 다가구 주택의 열린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원을 다닌다는 여성이 혼자 있었다. 그 여성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같은 탈주범을 안심시키면서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된장찌개를 끓여서 밥상을 차려 주었다. 얼음보다 찬 세상에서 도망다니던 탈주범의 마음에 감동이 왔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멀리 세워둔 차의 트렁크 안에 현찰이 가득 든 가방이 있었다. 청담동 부잣집에 들어가 턴 돈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에 다니는 지금까지 안 해 본 알바가 거의 없어요. 내 소원은 한번 돈방석에 앉아 보는 거예요.”

지방에서 올라온 그녀는 고학생이었다. 그는 잠시 밖으로 나가 세워두었던 차의 트렁크에서 현찰이 가득 든 가방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돈이 있어요. 받아요.”

그녀가 아무 말 없이 그 돈 가방을 받더니 안에서 돈뭉치를 하나하나 꺼내 방바닥에 놓았다. 그녀는 돈뭉치로 방석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올라앉았다. 그걸 본 그는 속으로 그곳을 당분간 은신처로 삼으면 될 것 같다고 계산했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더니 쌓였던 돈다발을 다시 하나씩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그녀는 돈 가방을 탈주범에게 주면서 말했다.

“돈방석에 앉아 봤으니까 이제 됐어요. 이 돈 도로 가져가세요. 그리고 아저씨 이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마세요.”

탈주범은 당황했다. 

“그래도 얼마는 밥을 먹은 값을 치르고 싶은데......”

탈주범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됐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이라고 해서 그런 거예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가난한 집 구석에 천사는 있었다. 좋은 것들은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