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내가 만들어 파는 것
골드코스트에서 잡화가게를 하는 영감이 있었다. 뒤늦게 이민을 가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상인에게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자기가 파는 물건에 대한 사랑이죠. 내가 물건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겠어요? 저는 새벽부터 틈만 나면 물건들을 하나하나 먼지 한 점 없게 닦고 돌보았어요.”
그 말을 들으니까 어린 시절 동네 가게 앞에 차곡차곡 포개어 올려져 있던 홍시가 떠올랐다. 밤이면 알전구의 빛을 반사하면서 더욱 반들거렸다. 먹음직 스러운 모습의 뒤에는 상인의 애정어린 손길이 있었던 것 같다.
자기가 취급하는 물건에 대한 애정을 묘사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건전지를 만들어 파는 제조업자의 얘기였다. 불량이 발생하자 그는 문제의 건전지를 스무개가량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는 밤새도록 그놈들을 응시했다. 새벽 무렵 그는 그 놈들을 껴안고 갑자기 집안의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그는 불량이 났던 건전지들을 가지고 작업장으로 나갔다. 그는 공원에게 자기가 가지고 갔던 불량건전지들을 다시 테스트하게 했다. 모두 정상이었다. 그는 공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저녁부터 이놈들이 왜 아플까 밤새 살펴봤지. 그랬더니 새벽녘에 이놈들이 나에게 ‘저희들을 좀 따뜻하게 해주세요’라고 말을하는 거야. 그래서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가 따뜻하게 해 줬지. 자기가 만드는 자식같은 물건이라면 매섭게 눈싸움도 하고 또 어루만져주기도 하면 슬며시 말을 걸어오는 법이야. 자기가 취급하는 물건을 가슴에 안고 잘 정도로 애정만 가진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어.”
일본의 기업가 마쯔시다의 성공철학이었다. 일이 인생이고 참된 지식은 현장의 일에서 얻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열다섯살 무렵부터 어울려 놀던 동네 친구가 있다. 가난했던 그는 빵을 만드는 것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내게 우리들이 어려서 종로의 고려당 ‘앙꼬빵’을 먹으면 그 맛이 환상이었는데 요즈음은 왜 그렇지를 않은거야?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앙꼬기술자 밑에서 일했던 부모세대까지 이어졌던 기술이 대가 끊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앙꼬’장인에게 사정사정하고 돈까지 주면서 그 기술을 간신히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매일 제과점 문을 닫은 후부터 새벽까지 ‘앙꼬’를 만들곤 했다. 어느새 그는 일본의 전통 기술을 능가하는 깊은 맛을 내는 ‘앙꼬’를 개발했다. 일본 ‘앙꼬’는 너무 달아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제과점으로도 성공한 그는 칠십이 넘은 지금 나이에 삼천평의 정원과 오백평의 넓은 매장을 가진 대형 제과점을 서울 외곽에 만들었다. 그는 일하는 게 행복이라고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건전지도 만들고 빵도 만든다. 그리고 잡화를 팔기도 한다. 변호사인 나는 법률서비스 외에 무엇을 만든다고 할 수 있을까. 버터빵 곰보빵등 여러종류의 빵이 있듯이 나는 사십년 가까이 변론문, 의견서, 준비서면등 여러 종류의 제품을 만들어 왔다.
대학 일학년 때 친구 아버지의 법률사무소를 갔던 적이 있었다. 그곳 책상 위에 ‘소장’이라는 제목의 법률 서류가 놓여있었다. 호기심에 들추어 보았다. 복잡한 교통사고가 깔끔하게 압축되어 두 장의 종이 위에 타이핑이 되어 있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간단명료한 글이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피냄새도 나고 구겨진 차도 보이는 것 같았다.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란 이런 법률문서를 제조해서 상품으로 파는 직업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변호사가 됐다. 판사들에게 현실의 재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기록이었다. 그 기록의 상당 부분은 변호사가 제조하는 글이었다. 나는 법률을 거푸집으로 해서 그 안에 사건과 인생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같은 사건이라도 검사의 시선과 변호사의 눈은 관점이 달랐다. 검사가 수평 수직의 기하학적 구조로 범죄를 구성하면 변호사는 다른 면을 그려내야 하는 임무였다. 외롭고 슬픈 저녁풍경도 있어야 하고 절박한 순간의 아픔도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오랫동안 실무에서 전해져 내려온 서술의 틀이 있었다. 그 원형은 일제강점기까지 올라갔다. 나는 그 틀을 깨고 싶었다. 일본식 문장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지 않았고 감성도 막혀 있었다. 뼈와 뼈의 부딪침 같았다.
변론 속에 시나 수필 소설을 섞어보기도 했다. 철학과 감성과 사상이 담긴 나만의 오리지널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도 인생의 황혼이 깊어지고 있다. 후배 변호사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보수만을 생각하면 변론의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일이 본질이고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여길 때 하나님이 슬쩍 주인이 되어 펜을 쥔 나의 손을 잡아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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