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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름다운 이별

Joyfule 2024. 5. 22. 21:5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아름다운 이별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주례가 독특한 말을 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함께 집에 들어왔을 때 신랑은 현관에서 아내의 신발을 돌려놓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리 없는 아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의미했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카톡으로 이런 부고를 알려왔다.​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네. 정말 비통한 마음이 드네’​

그의 아내와는 부부 동반으로 여러 번 만나 식사를 했었다.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하던 부인이었다. 그 부인은 음식점에서 같이 음식을 먹을 때도 에어컨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식은땀을 흘렸다. 그 부인은 자신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보내는 것 같았다. 그 부부관계는 아내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

아내가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나를 받쳐주던 속의 내장들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을까.​

삼십여년전의 일이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영안실 벽 아래의 긴 나무 의자에 그 선배가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서른 여덟살의 아내가 일곱살짜리 딸을 남기고 암으로 저세상으로 갔다고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맨날 바쁘다는 핑계로 술 먹고 밤에 늦게 들어간 게 그렇게 후회될 수 없어. 몇 백년을 함께 살 줄 알고 옷 한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게 정말 가슴에 맺혀.”​

그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강하게 들어와 꽂혔었다. 그 날 밤 나는 집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예쁜 옷 사 줄께 같이가자”라고 했었다. 그런 일도 때를 놓치면 안될 것 같았다.​

예쁘고 착한 아내를 둔 친구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영어에 능통했다. 미국의 큰 회사에 입사해서 임원까지 올라간 재원이었다. 그 부부와 만날 때면 친구는 더러 아내에게 퉁박을 주는 모습이었다. 좀 권위주의적이라고 할까. 그의 아내는 남편의 모든 투정을 소리 없이 받아주는 모습이었다. 그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저세상으로 건너갔다. 그 친구는 중심을 잃은 것 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은둔하듯 아파트에 틀어박혀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의 아내가 떠나간 자리가 큰 것 같았다.​

실버타운에 있어 보면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남자노인들과 노부부가 함께 황혼을 지내는 경우가 반반쯤 되는 것 같다. ​
혼자 살다가 실버타운으로 들어온 칠십대 중반의 남자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강릉 바닷가 아파트를 얻어 혼자 몇년 살았죠. 밥하고 청소하는 것 보다 더 힘든 건 남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일이었어요. 밥과 반찬을 하다보면 음식이 남아요. 아까운 걸 버릴수도 없고 먹어 치워야 하는데 며칠 동안 그것만 먹고 있으면 괴로워요. 늙은 내 뱃속이 음식물 쓰레기통도 아니고. 그래서 실버타운으로 왔어요.”​

내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점들이었다. 더러 아내가 그런 말을 했는데 건성으로 흘려넘겼었다. 그런 것들이 주부들이 겪는 고통인 줄을 몰랐다. 몇년 전 아내가 더 이상 싱크대 앞에 서기 싫다고 내게 선언할 때 그 이면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를 포함해서 여러 명의 친구들이 아내들이 모든 걸 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넥타이 하나 양말하나도 아내 없으면 결정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그런 경우 아내가 저세상으로 가 버리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상한 남편이 모든 일을 처리해 주는 경우였다. 마지막까지 좋은 남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쌍의 부부중 함께 있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텔레비젼을 보는 경우가 여섯쌍 정도라고 한다. 함께 있어도 말없이 가만히 있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사랑의 색이 세월에 바랜 경우같다.

변호사로 이혼 상담을 하다보면 서로 싫어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증오로 변하면 그 이유가 생긴다. 늙은 남편에게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했다. 끼니를 챙겨주는 것도 더 이상 정신적으로 얽매이는 것도 싫다고 했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남편이 되려면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일상의 일을 나누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실버타운에서 보면 여러형태의 노부부들 모습을 본다.

 

허리가 꼬부라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부부가 있다. 경미한 치매가 온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모습이 눈물겨울 때가 있다. 파란 잔디밭 위의 그네 벤치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햇볕을 즐기는 구십대 남편과 팔십대 부인도 있다. 젊어서의 사랑이 불타서 재가 되는 것이라면 나이 먹은 노인의 사랑은 얼음이 서서히 녹아 물이되어 서로 섞이는 게 아닐까. 험한 인생길을 함께 걸어온 부부들이 한 잔의 커피를 나누면서 즐거웠던 일, 흐뭇했던 일들을 되새기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런 대화가 있을 때 적막한 실버타운의 창문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스산하지만은 않다. 노년의 부부들이 파도치는 바닷가를 산책하고 음악이 있는 레스트랑에서 커피향에 젖기도 한다. 바람소리와 갈매기가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빨간 해당화의 아름다움과 향기도 즐긴다. 오늘 참석했던 결혼식은 부부의 첫걸음이다. 그들에게 다음에 그 마지막의 아름다운 이별의 준비들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