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죄수에게 배운 정의
사십대중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변호사가 칠십대변호사인 내게 글을 보냈다. 그가 중학교 시절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 나온 나의 글을 보고 변호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겪은 일과 살아가면서 느낀 감상을 적은 작가로 인정해 주기도 했다. 감사한 글이다. 그는 열린 눈과 좋은 품성을 가진 변호사가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은 사십년 가까운 경험자로서 전문직인 변호사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변호사로서 무엇을 해 왔는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도 돌이켜 보고 싶다. 몇년 전 대형로펌에 갓 들어간 젊은 변호사의 희망을 들은 적이있다. 그는 고급 빌라와 좋은 외제차. 골프와 고급 와인을 마시는 화려한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잘먹고 자유롭게 잘살고 싶어서 전문직을 택하는 것이다. 앵무새같이 외치는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공허한 관념일지도 모른다.
그 젊은 변호사의 꿈대로 된 성공한 원로 변호사를 만났었다. 그는 사법연수원을 최고 성적으로 나오고 일류로펌에 들어가 수십년 일한 파트너 변호사였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급 맨션에서 기사를 둔 고급 승용차를 두고 삽니다. 여러개의 골프 회원권과 VIP 클럽의 회원권을 가지고 있죠. 노년을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예금과 부동산이 있고 틈틈이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어요. 겨울에는 하와이에서 지냅니다.”
변호사의 또 다른 성공의 모습은 국회의원이나 장관 그리고 대통령이었다. 같은 변호사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계급이 있었다. 대법관부터 시작해서 전관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했다.
내가 처음 법률사무소를 열었을 때였다. 찾아오는 의뢰인이 없는 사무실은 적막했다. 그런 걸 파리를 날린다고도 표현했다. 어느 날 점심때 뒤에 있는 검사장출신 변호사의 방으로 갔을 때였다. 그가 이런 자랑을 했다.
“오전에 후배 검사에게 전화를 해서 한 건 간단히 처리했지. 칠천 만원을 받았어.”
당시 서울 강남의 아파트도 사천만원 정도면 살 때였다.
대단한 높은 가격이었다.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그런 고액을 주고 거래를 할까 의문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내용증명 서류 한 장을 써주고 만원을 벌었다.
그 무렵 판사 출신 변호사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내게 이런 자랑을 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와 독대를 했지. 내가 맡은 지역구에 아성을 쌓으라고 하면서 칠십억원을 지원하신다고 하더라구. 이 금뱃지가 뭔지 알아? 이게 로마로 가는 길이야.”
그는 대통령을 꿈꾸고 있었다. 나는 돈과 지위가 그렇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부자였던 적도 없고 어떤 지위에 있었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돈맛을 몰라서 그래라고 하는 선배도 있고 금뱃지도 달아보면 알아하고 깔보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삼십년 징역을 사는 죄수를 만나면서 인식의 대 전환을 맞이하게 됐다. 고아출신으로 거지 생활을 하고 수없는 절도를 한 그 죄수는 나를 보자마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변호사는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위해 일을 한다고 법에 적혀 있는데 그 사회정의라는 게 뭡니까? 엄청 돈 받아 쳐 먹고 있는 놈들 법에서 빼주는 걸 인권옹호라고도 하더구만. 그건 그렇고 사회정의가 뭐라고 생각해요?”
그는 득도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엉터리 변호사라 사회정의라는 게 뭔지 몰라요. 그게 뭐죠?”
나는 순간 그가 본능적으로 정의의 본질을 깨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나의 정의는 관념이고 추상이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정의와 공평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는다. 나는 침묵하면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옥 안에서 나 같은 놈이 국가권력에 고문당하고 억울하게 맞아 죽어 매장되어 있다고 한번 가정해 보세요. 우리 같은 인간쓰레기들은 맞아 죽어도 세상은 아무 관심이 없죠. 떠들어도 세상은 죄인놈이 별 헛소리를 다 한다고 일축할 거구요. 여기는 언론도 들어올 수 없는 성역이예요. 변호사들만 접근이 가능한 곳이죠. 그렇다면 변호사가 그런 억울함을 글로라도 써서 세상에 알려주는 게 변호사의 사회정의 의무는 아닐까요? 변호사 글을 써서 고발해 주면 죄인들이 하는 것 보다 그 격이 다르잖아?”
그날 나는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크게 깨달았다. 법정은 쇠로 만든 상자같았다. 수많은 고문을 목격하고 법정에서 폭로해도 판사들은 외면했다. 사건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판사에게 알려도 믿지 않았다. 나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넘어 세상과 역사를 위한 진실의 전달자도 되기로 결심했다. 이미 그런 일을 해온 선배들이 많았다. 선배인 조영래변호사는 청계천 공장에서 일하던 피복공 전태일의 분신을 책으로 써서 세상에 알렸다. 한승헌 변호사도 법정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불의를 글로 써서 고발하고 감옥생활을 겪기도 했다. 나도 그런 선배들 같이 되기로 결심 했었다. 돈도 중요하고 세상적인 지위도 부럽지만 그건 또 다른 하늘이 주는 소명 같았다. 그런 사명을 다한 선배변호사들이 저 세상으로 건너가고 이제는 내가 나이먹은 축에 속하게 됐다. 오늘 나의 글을 보고 변호사가 됐다는 후배를 보니 동지를 만난 듯 반갑다. 그의 건투를 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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