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들에게 행복을 물었다

Joyfule 2024. 6. 3. 22:50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노인들에게 행복을 물었다

 

나는 식판에 밥과 국을 담아 실버타운 식당 구석의 노인 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끼어들었다.

익숙한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여성노인도 있었다.​

“오늘 행복하셨습니까?”​

내가 인사를 겸해서 물었다.​

“그냥 하루하루 재미도 의미도 없이 견뎌 나갈 뿐입니다.”​

혼자 우울하게 사는 칠십대 중반의 남자 노인이 대답했다.​

부부가 함께 실버타운에 왔는데 아내가 먼저 죽고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분이었다.

배우자가 죽으면 남편이 강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옆에 있는 다른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태극기 부대에 있어요. 저는 문재인과 이재명이 구속되지 않는 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혼자사는 그 노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방의 벽에 붙여놓고 우상으로 삼은 노인이었다.

묵호지역의 김밥집 남자가 태극기 부대 지역대장이라고 했다.

집합명령이 떨어지면 버스를 대절해서 광화문광장으로 간다고 했다.

무엇이 그들을 정치에 몰입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대부분 착하고 단순한 사람이었다.

내 옆에 있는 여성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

“저는 행복해요. 매일 바닷가에 나가 산책을 해요. 푸른 바다위로 바람이 불고 파도가 물보라를 날리면서 해변으로 밀려오는 걸 보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예요. 그런 광경을 보면서 걷는다는 게 너무 감사하죠. 내 평생에 이렇게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이 있을 줄 몰랐어요. 젊어서는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할 때가 많았죠. 저는 이 근처 야산에 가서 야생 산국화를 따다가 말려 차로 만들고 있어요. 그걸 이웃에게 나누어줄 때 행복해요. 노년에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즐겁게 지내는 자체가 행복입니다.”​

똑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지내면서도 행복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것 같았다. 또 다른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바닷가 한적한 소도시로 온게 정말 좋아요. 콘크리트 숲에 밀도 짙은 서울에서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어요. 거리에 꽉찬 차들과 지하철역의 파도 같은 사람들의 물결을 보면 항상 쫒기고 등을 떠밀리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바쁠일이 없는 데도 불안한 거예요. 그런데 한적한 소도시에 와서 살면서 여유를 찾았어요. 얼마나 편하고 좋아요.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아마 이런 소도시에 적응하지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복잡한 아파트에 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거예요.” ​

또 다른 노인이 끼어들어 이런 질문을 했다.​

“행복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인데 구체적으로 뭘해야 행복할까요? 현실적 행복의 비법은 뭘까요?”​

그 질문에 붙어있는 옆 식탁에 앉아있던 교수 출신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세요. 인내와 열정을 가지고 할 장기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순간순간 그런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의식 자체가 행복감을 준다고 봅니다. 일상의 루틴을 정해 매일 규칙적으로 따르는 것도 좋습니다. 시간 관리가 행복 관리니까요. 그리고 행복은 관계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나 좋아하는 친구나 애인과 같이 있으면 행복하잖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에너지를 받으세요. 불행한 사람 옆에 있으면 불행해 진답니다.” ​

인간은 스스로 구원도 받고 저주도 받는 것 같다. 같은 시공간을 살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시간을 살리는 사람도 있고 죽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행복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걸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

불행해져야 행복을 깨닫기도 한다. 젊은 시절은 이 세상에서 커지는 게 행복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지난 밤 꿈에 검사로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선배가 나타났다. 그는 능력도 대단하고 꿈도 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암이라는 지뢰를 밟았다. 그와 같이 고깃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가 집게로 숯불 위의 석쇠에서 노릇노릇 구워져 가는 소고기 조각을 뒤집으면서 말했었다.​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하고 같은 식탁에 앉아 이렇게 같이 고기를 먹고 얘기하는 게 행복이었는데 왜 그걸 모르고 출세하려고 아둥 바둥했을까? 내가 검사 뼈다귀를 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말이야. 행복이란 단순한 건데”​

나도 행복을 찾아 헤매어 다녔다. 낮도 밤도 가리지 않고 쉬지도 않고 그 행복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행복은 항상 미래에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예전에 그렇게 행복의 무지개가 떠 있을 것으로 꿈꾸었던 미래였다. 그 미래였던 현재는 무지개가 없다. 나는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내가 찾아다니고 있던 그 행복은 나 자신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행복은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그 분 앞에서 깨끗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