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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떤 경우에도 만족

Joyfule 2024. 6. 4. 21:3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떤 경우에도 만족

 

나는 고시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 명이 누우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는 면적이었다. 가난의 상징으로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생활을 할 때 나는 불편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조금 과장한다면 자유를 느끼는 나의 편한 보금자리였다. 거기서 듣는 라디오드라마는 나의 영혼이 드넓은 시공간을 날아다니게 했다. 상자 같은 좁은 공간인 걸 의식하지 못했다.​

신혼생활을 신촌역 부근의 산동네 쪽방에서 했다. 스폰지 요를 깔고 부부가 나란히 누우면 남는 공간이 손바닥 하나 정도 됐을까. 베니어로 댄 방 문옆의 간이부엌에는 석유풍로와 플라스틱 그릇 몇 개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칠십고개를 넘긴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난했던 그때였던 것 같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종일 소설을 읽었다. 배가 출출해지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자잘한 기름방울이 떠있는 짭쪼롬한 라면 국물은 서민들 삶의 질감이라고 할까. ​

가난 시대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나는 가난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까. 그 속에서 나는 즐거움이 많았다. 영화를 두 편씩 상영하는 삼류극장도 짜장면을 파는 변두리 허름한 중국집도 어둠 컴컴한 만화와 소설 대본집도 내게는 낙원이었다. ​

내가 가난을 의식하지 못했다면 부자들은 부자인 걸 의식했을까. 변호사를 하면서 이름난 부자 노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백년전통을 가진 부자였다. 일제강점기에 재벌을 이루었고 해방후 지금까지도 그 부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집안이었다. 경주 최부자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의 명문가이기도 했다. 재벌가의 회장인 그 노인에게 부자인 걸 의식했었느냐고 물었다.​

“일제강점기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나를 조선 제일 부자의 아들이라고 소개 하더라구. 그때 처음으로 내가 부잣집 아들인 걸 자각했지. 우리 집은 성북동에 대지 삼천평이었어. 그 안에 손님 접대용 서양식 집도 있고 한옥도 있었어. 잔디정원이 있었고 그 아래는 색색의 꽃이 만발한 꽃밭도 있었어. 우리집 자가용은 미국에서 수입한 뷰익이 있었어. 아버지가 정원에 농구대를 만들어 줘서 형제들이 농구 게임을 하곤 했지. 그때 내 취미는 승마와 촬영이었어. 아침 저녁 말을 타고 종로에서 돈화문을 돌아다녔지. 일본 백화점에서 구입해 온 촬영기로 경성 일대를 찍고 다녔어. 별 생각없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 아버지와 친했던 금광부자 최창학씨를 더러 봤는데 미국에서 수입한 인터컨티넨탈 링컨차에 방탄유리를 하고 타고 다니더라구. 내가 중학교때 아버지는 나한테 일찍 농장을 상속해 줬어.”​

“그 시절 우리 할아버지는 만주 유랑 농민이고 소작인인데 그때 가지고 있던 농장의 일년 소출이 얼마나 됐어요?”​

내가 부자 노인에게 물었다.​

“내 기억으로는 삼십만석일걸. 소작인들이 나보고 학생 지주 영감이라고 불렀지.” ​

그 노인에게 부(富)란 그저 익숙한 환경일 뿐 행복의 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

내가 자라던 시대는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기도 한 것 같다. 우리 집안은 가난에 너무 익숙했다. 잘살아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작은 집에서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형제들까지 아이들과 함께 방마다 오골 거리며 살았다. 둥근 소반 가운데 강된장 한그릇 놓고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그런 속에서 친척들이 연초에 함께 순대를 해서 나누어 먹으면 만족하고 행복했다. 부자들을 부러워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내 옆에는 가난을 이겨내고 부자가 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수천억 부자가 된 친구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있다.

그는 나에게 자기 집이 물지게를 지고 산동네 판자집으로 오르던 걸 사람들이 모른다고 했다. 나와 친한 전 대한변협회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밥도 잘 사고 책도 수시로 선물한다. 부자가 되어 돈을 아끼지 않고 잘쓴다. 그는 내게 자기도 성남의 빈민촌에서 물지게를 졌다고 말했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고 부를 누릴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배가 부르거나 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