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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모퉁이를 돌아가는 청년

Joyfule 2023. 6. 29. 14:26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모퉁이를 돌아가는 청년



지하철이 사람들을 토해놓고 떠났다. 사람들의 물결이 쓸려가 버린 후의 텅 빈 플랫폼에 육십대 중반쯤의 시각장애 여성이 서 있었다. 백팩을 한 말끔한 복장에 손에는 가느다란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발을 떼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어설펐다. 그녀는 어둠의 세상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평생을 암흑에 익숙한 사람들은 걷는데도 다른 촉이 생겼는지 숙련성을 가지고 있었다.

태어날 때 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암흑이란 존재를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보여져야 하는 체험의 빛은 그들에게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한 발짝을 제대로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녀가 주위에 대고 소리쳤다.

“이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두세살짜리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었다. 알려준다고 해도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플랫폼을 따라 끝까지 한참을 걸어야 하고 장애물인 계단도 있었다.

“그냥 계속 직진해요.”

벽 아래 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여인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시각장애 여인은 앞쪽으로 가려고 더듬거렸다. 그렇지만 한 발자국이 십센티도 안되어 보였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깨끗한 새 옷에 깔끔한 백팩을 메고 나온 그녀를 보면서 나는 혹시 그녀가 마지막 행진을 하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다석 류영모선생의 글에 ‘마지막 행진’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이들고 더 이상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용감하게 마지막 행진을 하라고 했다. 노인은 체력이 약하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어렵지 않게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길을 가다가 쓰러져 죽으면 그곳이 인생의 목적지라는 것이다. 앞을 못 보고 그렇다고 길을 더듬을 흰 지팡이에도 익숙하지 못한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몰랐을 리가 없다. 나는 자리에 못 박힌 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그녀를 관찰했다. 그때였다. 또다른 구석에서 그녀를 계속 쳐다보는 젊은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더부룩한 머리에 퉁퉁한 몸을 가진 삼십대 초쯤의 남자였다. 그가 자리에서 맴도는 시각장애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자기의 팔에 얹어놓았다. 나는 잠시 후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오랫만에 법정에 갔다 오다가 교대역에서 본 광경이었다.

인생에서 노년에 빛을 잃고 암흑으로 떨어지는 게 어떻게 그 시각장애 여성뿐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법정에서 변론을 해 주는 칠십대 말의 노인은 암에 걸렸다. 치료를 위해 가지고 있던 유일한 바닷가 땅을 팔았다. 매수인은 먼저 등기를 이전해 달라고 했다. 그래야 대출을 얻어 잔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노인은 그 말을 믿고 찾아온 법무사직원에게 도장을 건네주었다.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얼마 후 노인이 등기부등본을 떼보니까 전혀 모르는 사채업자가 자기의 땅에 근저당을 설정한 것이다. 사채를 얻은 일도 없었다. 매수인은 바닷가 전원주택 분양공고를 하고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사채업자는 경매신청을 해서 그 땅의 소유권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그렇게 눈뜨고 코를 베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나는 아직도 사채업자와 매수인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중이었다. 수사기관은 짙은 범죄혐의에도 불구하고 한 발자국도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 노인은 무조건 나를 찾아와 하나님이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맡은 사건이었다. 변호사란 암흑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허우적대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같이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는 일이었다. 평생 그들의 분노에 감염되기도 하고 연민 피로가 심하게 쌓이기도 했다. 이제는 쉬고 싶어 바닷가 실버타운에 갔다. 거기서 글을 쓰면서 황혼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법정에 다시 끌려 나왔다. 나의 마지막 사건으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든다. 시각장애 여인의 손을 자기의 팔에 올리고 걸어가는 청년이 누굴까. 모퉁이를 돌아가는 그가 바로 예수가 아닐까.